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지난 8일 현대차 조합원이 사측의 막무가내 현장통제에 항거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부분파업을 진행했고, 사측은 3일 만에 공장혁신팀 해체, 사건관련자 처벌 등 노조의 요구를 수용했다.

이번 사태는 강성노조라 일컫는 현대차에서조차 노동자들의 현장권력이 얼마나 무너져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줬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며 민주노조는 작업장에 대의원·현장위원 등을 통해 현장권력을 확보해 나갔다. 하지만 98년 IMF 구조조정을 거치고, 2000년대 사측의 다양한 현장통제 방안들이 관철되며 노조는 작업장에서의 권리를 상당부분 상실했다. 현대차가 이 정도이니 중소기업 노조의 상황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현장에서 권력을 빼앗긴 노동자들은 다시 관리자들에게 인격적 모독, 시간외 노동, 성희롱을 당하기 시작했고 단체교섭을 통해 형식적으로 확보된 권리는 작업장의 ‘법보다 가까운 주먹’ 앞에서 무력화되기 일쑤였다. 2012년 한국의 노동현장은 상당 부분 87년 이전 상황으로 되돌아가 있다.

이런 와중에 고용노동부의 완성차 근로감독을 계기로 주간연속 2교대제가 다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현대·기아차 사측은 고용노동부에 편성효율 향상, 특근시 생산성 강화, 공장 간 물량이동 유연화와 전환배치 확대 등을 ‘장시간 근로 대책’이라고 내놓았다. 현대·기아차 사측은 장시간 노동의 이유가 노동자들이 정취시간에 작업장에서 빈둥대며 일하다가 수당을 받기 위해 초과근로를 일부러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작업장에서 관리자들이 더욱 엄격하게 노동시간과 생산량에 대해 관리를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나마 어렵사리 현장권력을 유지시켜 주던 잔업특근, UPH에 관한 대의원 권한마저 빼앗겠다는 것이다. 자본의 너무나 뻔한 속내다.

문제는 노동계 내부에조차 이러한 사측의 계획에 일부 동조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것이다. 장시간 노동을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니 자본과의 타협을 위해 노동강도 상승은 일부 수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다. 기업 경쟁력을 위해 생산량을 줄일 수는 없고, 임금 보전이 된다면 추가 고용은 노무비용 상승으로 이어지니, 답은 노동강도를 높여 줄어든 3시간분의 생산량을 맞추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실의 제약 속에 노동과 자본이 거래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현실론’이 사실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자동차산업의 장기간에 걸친 축적 전략을 들여다보면 노동시간과 노동강도의 거래는 중장기적으로 노동의 손해로밖에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잠시 객관적으로 본 자동차산업의 ‘현실’을 살펴보자. 노동자운동연구소에서 OECD 산업분석 데이터(STAN DB)와 한국은행 기업경영분석 데이터를 바탕으로 주요국 자동차산업의 장기 축적 추이를 분석해 봤다. 교대제 변경과 같이 장기간에 걸쳐 영향을 주는 변화는 단기간의 경기 변동에 따른 손익 변화보다는 장기 변화의 핵심 변수인 고정자본(기계설비 등) 변화를 보는 것이 적당하다.

한국 자동차산업은 98년 이전과 이후로 분명하게 구별되는데, 98년 이전에는 대규모 설비투자가, 98년 이후에는 소규모 설비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모습이 나타난다. 80년대 후반부터 현대·대우·기아차 등은 일본 따라잡기를 하겠다면서 대규모 자동화설비를 들여왔다. 정주영·김우중 등 재벌 오너들은 대규모 해외차입까지 하며 공장증설과 자동화에 열을 올렸다. 이 시기는 자동차산업 기계설비가 연평균 26%씩 고도성장했고, 노동생산성은 연평균 20%씩 성장했으며, 고용은 연평균 3%씩 늘어났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황금기였다. 그리고 87년 투쟁을 통해 형성된 현장권력이 현장통제를 억누르며 노동강도 강화를 막아 내던 시기였다. 노동생산성은 노동강도 강화가 아니라 기계화·자동화로 이뤄졌다. 산업적 확장세였기 때문에 자동화에도 불구하고 고용이 줄어들지는 않았고, 오히려 늘어났다.

98년 이후에는 상황이 변화했다. 2010년까지 11년간 기계설비(고정자본)는 연 7% 성장으로 급락했다. 하지만 노동생산성은 연 8% 성장하며 기계설비 증가분보다 더 크게 성장했다. 바로 현장통제를 통해 노동강도 상승으로 노동생산성을 올려 왔다는 것이다. 98년 이전이 자본지출에 의한 성장기였다면 98년 이후는 바로 노동지출에 의한 성장기였다는 의미다. 생산량은 매년 느는데 설비는 노후해 너무 힘들다는 현대차 조합원의 이야기는 객관적으로 사실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성장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한국 자동차산업이 15년간 이렇게 성장해 온 상황에서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노동강도를 높인다는 것은 두 가지 점에서 치명적이다.

첫째 현장투쟁에 부딪혀 어렵사리 올리던 노동강도를 노동이 합의까지 해 준다면 현대·기아차 사측은 더욱 설비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노동은 더욱 노후한 설비 속에 자신의 몸을 마모시켜 출혈적 생산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시간 단축분보다 더 큰 정신과 육체의 손실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일부 타협론자들이 잘 인용하는 폭스바겐의 90년대 타협도 이런 식의 노동강도 상승을 용인한 것은 아니었다. 독일 자동차산업의 노동생산성은 1991년부터 2000년까지 매년 1%씩 하락했다. 설비투자는 연 0.3%씩 증가했다. 사실상 폭스바겐의 협약은 결과적으로 노동시간단축과 노동강도 완화를 동시에 추구해 고용 유지를 달성한 것이었다. 한국에서 추진하는 것은 90년대 폭스바겐의 사례에도 맞지 않는다.

둘째 현장권력이 무너지면서 노동시간과 임금 모두 장기적으로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노동강도 강화는 미시적 통제를 필요로 하며 사측의 현장통제력이 급상승할 수밖에 없다. 현장권력을 잃었을 경우 우리가 이미 예전에도 겪었듯이 유무형의 방식으로 노동시간과 임금조건이 악화된다.

현대차지부가 유지해 온 주간연속 2교대제와 관련한 3무정책(노동강도·임금·고용조건 하락 없는 교대제 개편)은 정세적으로, 현실적으로도 여전히 유효하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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