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2일로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 심판을 기치로 야권과 노동·시민사회가 뭉쳐 총공세에 나서는 모양새다. 특히 올해는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노동자를 둘러싼 정치지형 변화가 거세다. 노동계는 통합진보당·민주통합당·진보신당을 중심으로 각자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올해 총선·대선 과정에서 노동계의 ‘3인3색’ 정치실험은 성공할 것인가.

“배타적 지지방침 머리 아파”

민주노총은 지난 10여년간 지켜 온 정치방침에 위협을 받고 있다. 4년 전 분당사태 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다. 통합진보당이 꽤나 괴로운 고민거리를 던졌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를 받았던 민주노동당과 노무현 정신 계승을 표방한 국민참여당, 그리고 진보신당 탈당파인 새진보통합연대로 구성된 통합진보당이 지난달 5일 출범했다.

통합진보당은 출범 뒤 숨 가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급하게 추진된 통합이다 보니 조직 정비와 총선후보 선출까지 할 일이 태산이다. 통합진보당의 얼굴인 이정희·유시민·심상정 공동대표는 통합을 안착시키기 위해 거의 매일 지역 시·도당 창당식과 정치콘서트, 현장방문에 나서면서 전국을 돌아다닌다. 총선 예비후보들은 각 지역구에서 통합진보당을 앞세우며 선거운동에 여념이 없다.

통합진보당에 노동이 없다?

그런데 통합진보당은 출범하는 과정에서 논란에 휩싸였다. 옛 민주노동당의 모태가 됐던 민주노총이 정작 통합 과정에서 거의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열과 기존 진보정치 문화와 이질적인 국민참여당의 가세로 노동현장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오는 31일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정치방침을 결정한다. 집행부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안을 내놓은 상태다. 그러나 반대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와 활동가 1천500여명이 “3자 통합당(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안은 즉각 철회돼야 한다”며 “부결운동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부결운동에 동참한 차수련 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국민참여당이 함께하는 통합진보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다”며 “배타적 지지방침이 통과돼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박문진 전 노조위원장과 함께 지난달 27일 유지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을 찾아 이 같은 뜻을 전달했다.

반면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같은날 민주노총을 방문한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단에게 “진보정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방침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통합진보당에 노동자 중심성이 부재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강령의 후퇴(사회주의 이상과 원칙→진보적 민주주의→보편적 복지)와 민주노총 대의기구 할당(기존 25%) 폐기 등이 지적되고 있다. 한편으로 민주노총은 정치방침 결정이 늦어지면서 총선을 앞두고 후보선정 등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이영희 민주노총 정치위원장은 지난달 28일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원회에 참석해 지역구 총선후보 경선일정을 늦춰 달라고 요구하기까지 했다.

쥐기엔 너무 뜨거운 민주통합당?

한국노총도 초유의 정치실험을 하고 있다. 한국노총이 기존 정치권과 같이 창당 과정에 직접 뛰어든 예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 16일 민주당·시민통합당·한국노총이 뭉쳐 출범한 민주통합당은 현재 지도부 경선을 진행하면서 통합 특수효과를 누리고 있는 중이다. 지난달 26일 예비경선을 통해 한명숙·문성근·김부겸 후보 등 9명의 본경선 진출자를 가려냈다.

이달 15일 진행되는 본경선에서는 대의원 현장투표 30%와 당원·시민 투표 70%를 합산한다. 지난달 29일 현재 시민 선거인단 13만4천3781명이 모집됐다. 접수 나흘 만의 기록이다. 많게는 하루에 5만여명이 신청했다. 민주통합당은 "애초 목표한 30만명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다"며 흥행을 장담하고 있다.

예비경선과는 달리 본경선에는 한국노총이 참여한다. 대의원 2천명(전체 대의원의 9.5%)을 배정받은 한국노총은 당원·시민투표에 조합원 최소 10만명을 참여시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이러한 정치실험을 통해 민주통합당 지도부 진출과 총선 당선은 물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 등 노동정책을 당의 전면에 적극 반영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한국노총의 앞길엔 신작로만 펼쳐져 있는 건 아니다. 지난달 8일 한국노총 임시대의원대회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한 통합 반대세력이 존재한다. 한국노총의 핵심조직인 금융노조도 민주통합당의 농협법 개정과 론스타 국정조사 관련 입장 선회에 반발하고 있다.

진보신당, 그리고 안철수의 시민정치

노동자 정치세력화 차원에서 또 다른 길도 있다.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을 거부하고 독자노선을 걷고 있다. 노회찬·심상정·조승수 전 대표 탈당에 따른 지도부 공백을 홍세화 대표 선출로 메우고 총선을 준비하고 있다.

진보신당에는 통합진보당으로 가지 않은 노동자 세력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주요 선거구인 창원과 거제 등에서 후보를 출마시킬 예정이다. 권영길 통합진보당 의원의 지역구인 창원을에서는 김창근 전 금속노조 위원장이 진보신당 후보로 나선다.

진보신당은 민주노총을 향해 배타적 지지방침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홍세화 대표는 지난달 14일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을 만나 “우리 당원 중 민주노총 조합원이 많고 앞으로 민주노총과의 연대는 당연히 자리 잡혀야 할 일”이라며 “통합진보당이 건설된 상황에서 기존의 배타적 지지방침은 재검토돼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와 함께 올해 총선과 대선에서 안철수와 박원순으로 대변되는 시민정치의 힘이 다시 한 번 발휘될지 주목된다. ‘안철수 현상’은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확인되듯 좀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최근 헌법재판소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이용한 선거운동을 금지한 공직선거법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리면서 시민의 선거참여 공간이 더욱 넓어졌다.

여야, 총선 D-100일 “돌격 앞으로”

4·11 총선은 2일 현재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여야 각 당은 지난달 13일 예비후보 등록을 기점으로 사실상 총선 체제로 전환된 상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현재 전국 예비후보자는 245개 선거구에서 980명이 등록했다. 평균 4대 1의 경쟁률이다.

더구나 이번 총선은 8개월 뒤 대선의 전초전이란 점에서 여야는 양보할 수 없는 치열한 전투를 치러야 한다. 야권은 통합을 각각 마무리했다. 민주통합당은 지도부 경선에 나섰고, 통합진보당은 총선후보 선출일정을 확정했다.

한나라당은 박근혜 전 대표를 앞세운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킨 뒤 쇄신작업을 벌이고 있다. 한나라당 비대위가 쇄신과 공천혁명에 성공한다면 야권으로서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진다. 더구나 야권은 험난한 후보단일화 과정을 남겨 두고 있다.

 
현재 정당별 지지율을 살펴보면 한나라당은 약보합세, 민주통합당은 상승세, 통합진보당은 하락세, 진보신당은 현상유지로 확인된다.<그래프 참조>

통합진보당 지지율 뒷심 발휘 못해

통합진보당의 초반 성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뒷심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출범 뒤 첫 여론조사(리얼미터, 지난해 12월5~9일)에서 10.3%로 테이프를 끊은 뒤 그 다음주(10.2%)까지 여세를 몰아갔다. 하지만 민주통합당이 출범한 뒤 12월19~23일 조사에서는 4.1%포인트 하락한 6.1%로 떨어졌다. 반면 같은 주에 민주통합당은 30.9%를 기록해 그 전 주의 옛 민주당 지지율에 비해 8.7%포인트 상승했다. 한나라당 지지율과 비교하면 불과 0.3%포인트 차이다. 진보신당은 줄곧 1%대에 머물러 있다.

한겨레와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지난달 26~2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한나라당 28.8%, 민주통합당 24.1%, 통합진보당 3.1%, 진보신당 1.9%로 나타났다. 그만큼 정당 지지율 등락은 불안정하다. '안철수 현상'이 미치는 영향에 따라 출렁일 것으로 보인다.

통합진보당 관계자는 “워낙 급하게 통합을 추진하다 보니 홍보·조직 등 실무적으로 준비가 안 된 게 많다”며 “당조직을 정비해 중앙과 지역에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면 통합진보당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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