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에 왜 임금지침서가 필요하지? 이발사들이 노조를 만들려나?"

올해 4월 전남 영암의 한 이발소에서 한국노총이 발간한 '2011년 임금지침서'를 보내 달라는 요구가 들어와 한국노총 간부들을 흥분케 했습니다. 혹 '노조를 만들려 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을 낳기에 충분했기 때문이지요.

이발사들이 노조를 만들려 했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주문자는 전남지역 한 경찰서의 정보과 형사 A씨로 밝혀졌습니다. A씨는 "이용득 집행부 출범 뒤 합리적인 한국노총이 강성으로 변한 이유를 알고 싶어 임금지침서를 주문했다"고 말했는데요. 이발소는 A씨의 처가에서 운영하던 곳이라고 하네요. 정말 황당하죠?

올해도 <매일노동뉴스> 이러쿵저러쿵(쿵쿵)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습니다. 노동계 비화나 핵심을 치르는 풍자, 각종 행사를 진행하다 일어난 웃기거나 웃지 못할 일들이 쿵쿵에 고스란히 담겼기 때문인데요. 올해 쿵쿵에 비쳤던 노동계 풍경은 어땠을까요. 자, 그럼 지금부터 알아볼까요, 뿌잉뿌잉~.

양대 노총 위원장들의 에피소드

사람 이야기부터 해 봅시다. 말이 나온 김에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어떤 에피소드로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했는지 살펴볼까요.

이 위원장의 완벽주의와 집요함은 예전부터 유명했는데요. 올해 또 한 번 빛을 발했다고 합니다. 한국노총은 4월6일 전국단위노조 대표자대회를 열었는데요. 이 위원장이 행사 하루 전날인 5일 오후 늦게 "프로그램이 밋밋하다"고 지적하면서 한바탕 난리가 났습니다. 간부들이 눈물을 머금고 밤샘노동을 하면서 프로그램을 전부 새로 만들었다고 하네요.

이 위원장은 노조법 재개정 투쟁 연설을 담은 동영상을 장시간에 걸쳐 제작한 후 불과 1시간 만에 "녹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재촬영을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재촬영은 그 후 며칠 뒤 하루 온종일 진행됐는데요. 촬영을 마친 이 위원장 왈 "에이, 그래도 마음에 안 들어!"

부산 출신인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롯데자이언츠 광팬입니다. 지난해 2월 취임 초기 <매일노동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노총 위원장이 안 됐으면 야구감독 했을 것"이라는 말까지 남겼는데요. 그런 그가 만 1년 만인 올해 2월 "롯데자이언츠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철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스포츠신문 1면을 장식할 만한 엄청난 소식이 겨우(?) 쿵쿵에 실렸네요. 롯데그룹의 노조탄압이 배경으로 작용했죠.

그럼에도 이 위원장은 "솔직히 말해 (지지 철회) 고통도 상당하다"는 심정을 밝혔는데요. 그 후 롯데자이언츠 광팬인 혹자는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철회해도 이보다는 덜 충격적일 것"이라고 평했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김 위원장은 올해 11월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서울시장 선거는 이겼다고도 졌다고도 할 수 없다"고 말하자,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 주는 남자)을 자처하면서 "애매한 것을 정해 드리겠다"며 "한나라당은 졌다"고 일침을 날렸습니다.

아, 곁다리지만 야구 이야기 하나만 더 하고 가죠. 한국노총 사무총국 간부들로 구성된 야구단 '그냥해'가 결성 후 7연패를 기록한 뒤에야 첫 승의 감동을 맛봤다는 소식도 있네요. 그런데 이게 웬걸. 상대팀이 경기에 나오지 않아 거둔 '몰수승'이었답니다. 그래도 상대편이 낸 승리수당만큼은 끝까지 챙기는 꼼꼼함을 보였다네요.

이소선 어머니와 정광훈 의장, 우리 곁을 떠난 이들

올해 우리 곁을 떠나신 이소선 어머니 이야기는 너무 많습니다. 단결투쟁가 등을 만든 김호철씨가 '비정규직 피눈물 남겨 두고, 배고픈 아들 곁으로 쌀밥 지어 떠나십니까'라는 내용의 추모곡을 바쳐 눈길을 끌었죠. 민중가수 박준씨가 불러 더 애틋했습니다. 당시 크레인 농성 중이던 김진숙씨는 어머니 영정이 부산 한진중공업에 도착하자 "마지막 가시는 길마저 싸우는 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해 이 먼 곳까지 오셨냐"고 울먹였습니다.

올해 우리 곁을 떠난 중요한 또 한 분, 고 정광훈 진보연대 상임고문.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재임시 재기 발랄하고 위트 넘치는 연설로 유명했죠. 'DOWN DOWN WTO, DOWN DOWN FTA'와 'OUR WORD IS OUR WEAPON' 등을 발음 그대로 한 글자씩 또박또박, 구수한 사투리 억양으로 읊던 그의 모습을 보고 웃지 않는 이가 없었는데요. 정부가 전교조와 공무원조를 '빨갱이'로 몰자 "전교조가 빨간 수박을 먹고 씨를 뱉으면 '참교육'이 열리고, 공무원노조가 그리하면 '부패척결'이 열린다"는 생전 어록이 쿵쿵을 통해 또 한 번 전해졌습니다.

마이클 무어도 춤추게 한 보건의료노조

재미없나요? 슬픈 소식이 많군요. 빅카드 꺼냅니다. 보건의료노조가 직접 작사·작곡한 '업다운 송'이 K-POP 열풍에 합류했다고 합니다. 노조는 올해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국간호사노조 총회에서 '일하는 사람이 늘면 환자에 대한 사랑도 커진다'는 내용의 '업다운 송'을 깜찍한 율동과 함께 선보였는데요. 참석자들이 즉석에서 이를 따라 하면서 거대한 춤판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식코'를 만든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가 거구를 이끌고 율동을 따라 해 폭소를 자아냈다고 하네요. 이 열기는 총회 내내 이어져 노래파일과 율동복을 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고 합니다.

배우 유오성씨도 등장했네요. 유오성씨는 한국마사회 출신 한국노총 간부를 만나기 위해 9월 한국노총 사무실을 깜짝 방문했습니다. 경마와 기수를 소재로 한 영화 '챔프'를 찍다 이 간부와 인연을 맺었다고 하네요. 그날 한국노총 사무총국 여성 동지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상상에 맡기던지.

<매일노동뉴스>와 친분이 많지 않은 어버이연합 할아버지들도 쿵쿵만은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희망버스를 반대하러 부산에 내려왔다가 홀로 남겨진 어버이연합 소속 한 할아버지를 희망버스가 태워서 서울까지 모셔다 드렸다는 소식이 있네요. "할아버지, 노여움 푸세요"라는 제목의 쿵쿵입니다. 또 다른 할아버지는 부산에 내려가면서 6·25 전쟁에 빗대 "낙동강 전선으로 파병된 기분"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금융노조의 때아닌 색깔논쟁 … 파란색이 좋은 건가요?

올해 8월에는 금융노조에서 때 아닌 색깔논쟁이 벌어졌군요. 당시 금융노조가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는데요. 피켓 바탕색이 마침 '빨간색'이었다고 합니다. 이를 본 종로경찰서 관계자 왈 "빨간색은 높으신 분들이 불편해하시는데…." 금융노조, 높으신 분들을 위해 피켓을 '파란색'으로 바꿔야 할지 잠시 고민에 빠졌다고 합니다.

공공장소 화장실에 가면 늘 마지막 칸은 청소노동자들의 소지품이 놓인 창고로 쓰이곤 하는데요. 청소노동자를 지지했던 이화여대 한 학생의 외침이 마음을 울렸다고 하네요. "총장님, 화장실 마지막 칸과 총장실을 한 번 바꿔 보실래요?" 일일체험 같은 건가요?

초임삭감 세대의 슬픈 자화상. "소개팅에서도 초임삭감 직원은 서자"라는 한 은행원의 고백이 막 은행에 입사한 젊은 청춘남녀들의 가슴을 후볐다고 합니다. 또 '축구공과 초콜릿 복근을 향한 욕구'를 가진 남자와 '친구들과의 수다, 다이어트의 고통과 쇼핑의 달콤함'을 가진 여자. 이렇게 다른 남녀가 어디서 만나나요? 민주노총 주최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만난다는 대회 참가 캠페인 '남녀생활탐구' 이야기도 연예소식이라면 연예소식일까요.

할 이야기는 아직 많은데, 지면이 없네요. 세계노동절(5·1절) 이야기로 끝을 맺을까 합니다. 올해 노동절 서울 여의도광장에는 한국노총 추산 13만명의 조합원이 모였습니다. 산별연맹마다 명당을 차지하기 위한 자리싸움이 살벌할 만큼 치열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살벌했던지 한국노총은 자리조정을 위해 애쓴 간부들에게 하루씩 포상휴가까지 줬다는 후문입니다.

"화장실 때문에 노동절 집회 못 가겠다"


생리현상 해결도 문제였습니다. 참석자 다수가 남성이다 보니 남성용 화장실 앞에는 일(1)자, 제트(Z)자, 유(U)자 등 다양한 형태의 기다란 줄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 줄이 100미터가 넘는 곳도 있어 광장 곳곳에서 정체현상이 빚어졌다고 하네요.

반면 민주노총 노동절 행사에는 '아줌마' 노동자들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주요 이슈 중 하나가 최저임금이라서 청소·간병·요양 노동자 등 중년 아줌마들의 집회 참석이 돋보였다고 하네요.

주봉희도 떴습니다. 주봉희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노동절 행사 때마다 파격적인 분장을 한 채 등장해 항상 눈길을 끌었는데요. 최근 뜸하다가 올해 노동절 때는 거적 같은 두루마기를 마치 봉이 김선달처럼 둘러 입고 빨간 물감으로 피눈물을 흘리는 분장을 해, 노동자의 고통을 형상화했다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주봉희님.

양대 노총 노동절 행사로 전세버스비가 치솟았다는 소식도 있네요. 5월은 행락철인 데다, 1일이 마침 일요일이라 전세버스 수요가 많았답니다. 양대 노총 조합원들까지 전세버스를 구하다 보니, 비용이 치솟는 것을 넘어 버스 자체를 구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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