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2012년에는 세계 58개국에서 선거가 진행된다.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호주·인도·한국 등 이른바 G20 국가들 대부분이 선거다.

글로벌 선거의 쟁점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경제위기 과정에서 벌어진 빈부격차, 사회안전망의 해체, 금융자본의 경제 수탈, 정부 재정적자 등에 대한 해결방안이다. 2008년 이전까지만 해도 이런 의제들은 개방·규제개혁·금융시장 확대와 같은 신자유주의 의제들에 밀려 전혀 이슈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세계경제를 대공황에 버금가는 위기로 내몬 신자유주의에 대해 보수정당들마저 비판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2년 글로벌 선거를 통해 포스트 신자유주의 체제의 방향을 점쳐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포스트 신자유주의 체제를 예비하는 현상으로 지난해부터 복지가 사회적 핵심 쟁점이 됐고, 지난 15년간 정권에 상관없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해 온 한나라당·민주당에 대한 광범위한 불신이 정치인 안철수로 표현됐다.

2012년은 선거와 동시에 두 번째 세계 경제위기가 발발할 가능성이 점쳐지는 위기의 해다. 현재 유럽 재정위기는 이제 유럽 은행위기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인데, 유로존의 구조적 모순과 유럽 은행들의 거대한 부실규모로 인해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사실 유럽 은행위기가 세계 경제위기의 진짜 핵심이라는 이야기는 2009년 초에 제기됐다. 피터슨 국제연구소의 존슨 박사는 2년 반 전 국제 경제콘퍼런스에서 미국 금융위기는 기축통화를 보유한 미국의 특수한 국제적 지위와 거대한 경제규모로 그럭저럭 해결 가능하지만 유럽 은행들은 문제가 발생할 경우 통화정책·재정정책으로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유럽 각국 대형 은행들은 국가총생산의 최대 7배, 적어도 국가총생산과 같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이들 은행들은 통화 발행에 제약이 있는 유럽중앙은행(ECB)이 구제할 수도, 그렇다고 은행보다 규모가 작은 정부가 구제할 수도 없다. 남부유럽 국가들의 신용 문제가 유로존 전체의 신용 문제로 확산되며 최근 벨기에 2위 은행인 덱시아가 파산했고, 프랑스 주요 은행들이 심각한 재무위기를 겪고 있으며, 영국 1위 은행인 스코틀랜드왕립은행에 대한 두 번째 구제금융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은 이러한 예측이 현실화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유럽 금융위기는 한국에도 직접적 영향을 줄 것이다. 한국 증권시장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자본 중 40% 가량이 유럽계다. 레버리지(차입 투자) 비율이 높은 이들 금융자본은 본국에서 신용경색이 발생하면 처분 가능한 모든 자산을 시급하게 팔아 채무를 갚아야 한다. 모든 금융시장이 개방돼 있고, 적절한 규제책이 없는 한국은 세계에서 증시와 환율시장 변동성이 가장 큰 나라다. 2009년 초와 같이 한국 증권시장이 크게 출렁일 가능성이 크고, 대대적인 원화 투매로 환율이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신자유주의 이후 체제에 대한 정치적 합의수준이 낮은 조건에서 높은 강도의 경제위기가 발발한다면 사태는 2009년 이상으로 혼란하게 진행될 수 있다. 최근 복지논쟁에서도 노동의제가 주변화돼 있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노동 없는 복지정책과 노동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경제위기 대책이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개혁세력과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세력 사이에서 합의될 가능성이 크다. 98년 외환위기 이후와 2008년 세계경제위기 이후 상황에서 정권은 달랐지만 결국 위기의 모든 희생을 짊어진 것은 노동이었다.

따라서 정치적 변화와 경제적 위기가 함께 도래할 가능성이 큰 2012년, 노동운동은 정당의 뒤꽁무니를 쫓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제를 중심으로 자신의 정치적 공간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에 주력해야 한다. 내년 예상되는 구체적 노동쟁점에 대해 구체적 투쟁전략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조업 사업장에서는 수출물량 감소로 구조조정이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다시 진행될 것이고, 초국적 기업은 외환거래, 본사로의 적자수출, 고배당과 로열티 지불 등을 통해 자본 유출을 시도하거나 여의치 않을 경우 기업을 매각할 것이다. 공공서비스부문에서는 청년실업 해소랍시고 임금 차별을 전제한 신입사원 채용을 확대하고, 기존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임금 동결을 확대할 것이며, 정부는 상시업무 파견업종 확대, 단시간 근로 확대 등 노동시장에 대한 추가 유연화 조치에 나설 것이다. 또한 정부는 지난 2년 동안 해 왔던 것과 같이 타임오프,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를 무기로 정부 정책에 반대할 여지가 있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강한 압박에 나설 것이다.

물론 이런 쟁점들은 새로운 것이 전혀 아니다. 이미 수년간 싸워 왔던 쟁점들이다. 문제는 내년에 이 모든 문제들을 민주노총과 산별연맹들이 얼마만큼 집중력 있게 사회적 의제로 만들고, 진정성 있게 투쟁해 나갈 것인가에 있다. 최근 총연맹과 산별노조의 주요 회의에서 내년 투쟁계획 논의는 제쳐 두고 정치방침 관련한 논의만 되고 있다고 하는데, 내년 정세에서 노동을 중심으로 사회의제를 만들어 내는 계획 없이 무슨 정치방침이 있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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