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근로복지공단이 직장 내 성희롱이 유발한 우울장애를 업무상재해로 인정했다. 제조업 사업장에서 발생한 성희롱 관련 정신질환을 산재로 본 최초의 결정이다. 추후 유사 사건 피해자의 보상 신청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건 처리 매뉴얼 도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산재를 인정받은 주인공은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박아무개(46)씨다. 박씨는 직장 상사로부터 지속적인 성희롱에 시달려온 사실을 폭로했다가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해고당했다. 성희롱과 해고라는 이중고를 겪게 된 박씨는 우울장애와 수면장애에 시달리다 근로복지공단 천안지사에 산재신청을 냈다.

그 뒤 박씨는 천안지사를 방문해 사실관계 조사를 받았다. 주로 회사측으로부터 받은 고통과 그에 따른 질환에 대한 내용이었다. 조사는 공개적으로 이뤄졌고, 담당 조사관은 “이미 다 알고 있으니 말하라”, “성희롱 언사를 재현하라”며 수치심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과정에서 2차 가해로 볼만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 일이 있은 후 노동단체와 여성단체가 천안지청을 항의방문했고, 박씨에 대한 추가 조사는 독립된 공간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공단을 찾은 일반인들이 이 같은 혜택을 받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경찰이나 검찰처럼 공단도 성희롱 피해자 보호를 위한 지침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권동희 공인노무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는 “성희롱 피해자들은 도떼기 시장 같은 공단 사무실에서 공개 조사를 받는다는 자체로 심리적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이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고, 이를 체계화할 매뉴얼 마련은 당연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공단의 입장은 다르다. 굳이 별도의 지침을 둘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박씨 사건을 다룬 공단 천안지사의 한 관계자는 “공단은 성희롱 여부를 판단하는 기관이 아니라, 성희롱이 유발한 질병이 업무상재해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기관”이라며 “업무상 질병을 판단하기 위한 데이터는 충분히 확보돼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