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야속했지만 그저 바라볼 뿐. 정문 철창은 굳게 닫혔다. 두어 마디 욕 섞어 소리도 쳐 봤지만 공장으로 돌아가는 그 걸음 붙들진 못했다. 언젠가 형님이었고 아우였고 친구였지만 처지는 갈렸다. 이해가 달랐다. 빨간 머리띠 묶고 사람들 집회를 열었고 천막을 쳤다. 공장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다. 작업복 입은 사람들 그 너머 집회를 가졌고, 공장을 지키자고 외쳤다. 외부세력 물러가라 선창에 물러가라 복창했다. 웃음 가득한 일터 만들자 결의했다. 달리 갈 곳은 없어 빛바랜 노조 조끼 입고 사람들 정문 앞을 맴돌았다. 그 사이 텐트 몇 동이 뚝딱 담 아래 봉분처럼 솟았다. 하나 둘 셋 넷…. 사람들은 꼬박 열아홉을 세었다. 뇌출혈이며 심근경색, 연탄가스 자살 따위 설명이 영정 아래 달렸다. 빼곡했다. 안팎이 없었고 너나없었다. 오랜 떠돌이 생활, 유목의 상처가 깊었다. 돌고 돌아 유민의 땅, 그곳은 평택시 칠괴동 어느 자동차 공장 앞. 못 박아 매어도 된바람에 펄럭, 텐트 몇 동이 위태로이 솟았다. 달리 머물 곳도 없어 제집인 양 사람들 맴돌았다. 또 한철 전쟁 같은 유목을 각오했다. 야속했지만 그저 거기 오래 버틸 뿐이다. 지난밤 휘 떠난 버스 막차를 좇진 않았다.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새벽서리 맞아 가며 버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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