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로 일하는 김아무개(60)씨는 4년 전 다리 관절에 이상이 생겨 수술을 받은 끝에 5급 장애인이 됐다. 김씨는 아파트 주민들이 주차하거나 차를 몰고 나갈 때 무거운 차를 밀어 옮기는 일을 자주한다. 그가 일하는 아파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중 한 곳이지만 지하주차장이 없어 주차공간이 늘 부족하다.

김씨는 차를 미는 일 때문에 관절에 이상이 생겼다고 생각하고 산재신청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그는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산재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절룩거리는 다리만큼이나 그를 괴롭히는 것은 수면장애다. 24시간 동안 일을 하고 새벽 5시에 퇴근해 집에서 아침식사를 한 뒤 눈을 감아보지만, 선잠 끝에 서너 시간 뒤에 일어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경비와 보일러 관리 등 아파트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수면장애나 근골격계질환·직무스트레스 등의 증상을 호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업무상 손상이나 질병을 치료하지 않는 비율이 높았고, 치료를 해도 자비를 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6일 한국노총에 따르면 최근 25개 아파트 현장의 노동자 86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아파트관리 업무 종사자의 작업환경 실태조사’ 결과 노동자의 53.2%가 잠을 깊게 들지 못하거나 과도한 수면상태에 빠지는 수면장애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야간근무를 시작한 뒤 새롭게 수면장애가 나타난다"는 응답이 53.7%에 달했다. 23.7%의 노동자들은 야간근무 관련 수면장애가 한 달 이상 지속된다고 답했다. 근골격계질환 증상을 호소한 노동자 비율도 비슷했다. 노동자의 절반(50.0%)은 허리·어깨·목 등의 부위에서 근골격계 증상이 있다고 답했다.

직무스트레스를 받는 비율도 높았다. 노동자의 50.1%는 (일자리를 잃거나 회사가 도산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직무불안정성에 따른 스트레스가 매우 높다"고 응답했다.

일하다가 다치거나 업무 때문에 병을 얻어도 치료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설문조사에 응한 노동자들 중 업무상 손상이나 업무상 질병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각각 27.7%와 14.2%였다. 하지만 이들 중 치료를 받지 않았다고 답한 노동자들이 각각 35%와 37.6%나 됐다.

치료를 받았다고 답한 노동자들 중 업무상 손상 경험자의 45.5%, 업무상질병 경험자의 49.5%가 산재나 공상·건강보험 처리를 하지 못하고 자기 돈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노총은 “이번 실태조사 결과 아파트 노동자들이 근무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휴식시간이 사업장별로 매일 4~8시간 존재하는데도 경비초소 외에 휴게실이 갖춰진 곳은 거의 없었고, 휴식시간에 쉴 수 있는 경우도 드물었다”며 “과로와 관련한 질환이 발생해도 근로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해 산재로 인정받기 힘든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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