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지난 22일 한미자유무역협정 날치기 통과를 보면서 15년 전 노동법 날치기를 떠올리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1996년 김영삼 정부와 신한국당은 야당과 노동계가 반대하던 노동법 개정안을 크리스마스 다음 날인 12월 26일 새벽 6시 비공개로 단독 처리했었다. 신한국당이 날치기 처리한 노동법은 정리해고제, 변형근로시간제, 파견근로제 등 현재까지 문제가 되고 있는 핵심적인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모두 담고 있었다. 민주노총은 즉각 총파업에 돌입했고, 야당과 시민단체들도 모두 거리로 나섰다. 하지만 뜨거웠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자 야당(국민회의)은 국면을 전환하며 정리해고제 시행 2년 유예, 변형근로시간 허용 범위 축소 정도로 협상을 마무리했다.

노동법 날치기 정세가 정리되자 외환위기설이 신문지상을 뒤덮기 시작했다. 외환부채는 천정부지로 치솟는데 정부 외환보유고는 바닥이 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름에는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 대부분에서 외환위기가 발발했고, 가을이 되자 한국 외환위기는 기정사실이 되었다. 9월이 지나면서 쟁점은 한국 정부의 구제금융 신청 시기로 좁혀졌다. 그리고 마침내 11월 21일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1997년 한국 외환위기의 핵심 원인은 김영삼 정부가 막무가내로 추진한 금융 규제 해제와 시장개방이었다. 김영삼 정부는 취임과 동시에 임기 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을 선언했고, 미국이 가입 조건으로 제시한 시장 규제 철폐를 달성하기 위해 온힘을 다했다. 1993년에 발표된 ‘3단계 금융자율화 및 시장개방계획’은 1997년까지 모든 금융 시장 규제를 없애는 것을 목표로 했다. 외국인 주식투자 한도를 획기적으로 줄였고, 채권시장을 개방했으며, 재벌들의 해외차입과 관련한 규제도 대폭 완화했다.

미국 정부는 정례적으로 한미 금융정책협의회를 개최하며 한국 정부를 더욱 압박했다. 보수신문인 동아일보마저 당시 상황을 “한국은행이 미국 재무부 지점인가?”라며 비꼬기도 했다.

1996년 겨울의 노동법 날치기는 이러한 규제 철폐, 시장 개방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정부는 겉으로는 여전히 불법 상태에 있었던 민주노총, 교사 공무원 노조 등을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에 맞춰 인정하겠다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속내는 외국기업들과 한국 재벌들이 요구했던 해고 규제, 노동시간 규제, 파견 규제를 없애는 것이었다. 3단계 금융자율화 계획으로 금융시장 규제를 완화하고, 세계무역기구(WTO) 참여로 상품시장을 개방하고, 노동법 개정으로 노동시장 규제를 철폐하여, 자본시장-상품시장-노동시장 모든 부분에서 자본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결과는 참담한 것이었다. 1997년 초국적 투기 자본이 주도한 아시아 금융위기에 한국은 속수무책이었고, 결국 국가부도 사태로 마무리되었다. 이후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로, 비정규직 증가로 생존권의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하지만 재벌들은 구제금융을 통해 그동안 부담이 되었던 부채를 모두 털어버리고 규제가 철폐된 시장에서 크게 성장했다. 외환위기 이후 현재까지 30대 재벌들은 자산은 4배, 매출은 5배, 순이익은 12배 넘게 커졌다. 초국적 기업들은 헐값에 나온 기업들을 인수합병하며 십 수년 간 배당, 자산 재매각, 임원 급여 등으로 투자금의 열 배가 넘는 돈을 본국으로 가져갔다.

이명박 정부의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은 김영삼 정부가 추진했던 그것과 똑같다. 이명박 정부는 취임 때부터 기업 성장 중심, 규제 철폐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밝혔고, 지난 4년간 이 기조는 철저히 지켜졌다. 김영삼 정부가 ‘세계화’라는 슬로건으로 OECD 가입과 그에 따른 규제 철폐를 원했다면, 이명박 정부는 747성장이라는 슬로건으로 미국과의 경제통합과 그에 따른 더 많은 시장화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IMF 구조조정 이후에도 여전히 일부 남아있던 공공영역을 시장화하고 자본의 소유권이 제한되어 있던 의료시장 등에서 소유권을 더 완벽하게 지켜주려 하는 것이다. 또한 법 규제로 제약되던 자본의 활동을 투자자 국가소송제도(ISD) 조항을 통해, 이제 자본도 국가를 자신의 이해 관점에 따라 제소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려는 것이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의 꿈이 결국 국가부도에 이은 민중 생존권 파탄을 가져왔듯이 이명박 정부의 꿈 역시 참담한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지금 세계 경제는 국지적 위기였던 97년 동남아시아 금융 위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유럽과 미국 경제 위기 상황이고, 자본은 97년보다 수 십 배 커진 규모로 세계를 이동하고 있다. 김영삼 정부는 투기자본 이동으로 외환위기가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던 97년 3월에도 오히려 금융시장 개방을 더 확대하는 정책을 시행했었다. 이명박 정부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듯이 더 큰 개방이 한국을 구원할 것이라는 신념 때문이었다.

더 많은 자본 이동과 더 많은 공공영역 규제 철폐를 요구하는 한미자유무역협정과 그것을 추진하는 이명박 정부의 신념은 무서울 만큼 97년 상황을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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