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건의료노조와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10일 오후 서울 영등포 노조 사무실에서 공동으로 ‘무상의료 시대, 한국 의료의 길을 찾는다'라는 주제로 워크숍을 개최했다.

무상의료 실현을 위해 의료공급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김용익 서울대 의대 교수는 10일 오후 서울 영등포 보건의료노조 사무실에서 열린 ‘무상의료 시대, 한국 의료의 길을 찾는다' 워크숍에 참석해 “현재의 의료공급체계가 유지되는 한 수도권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이 심화돼 무상의료 정책 실현은 불가능하다”며 “무상의료를 실현하려면 왜곡된 의료공급체계를 개편해 공공의료를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날 워크숍은 보건의료노조와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공동 주최했다.

◇병원은 과잉공급, 의료인력은 부족=김 교수는 보건의료 공급체계의 핵심 문제로 수요에 비해 병원이 과잉공급되고 있는 점을 꼽았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병상은 지난 2000년 공급이 수요를 추월하기 시작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병상수가 증가하는 유일한 국가다. 현재 병상 가동률은 57%에 불과하다. 2001년 이후 증가한 병상을 살펴보면 약 80%가 평균 120병상 내외의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발생했다. 즉 환자들이 찾지 않는 영세 중소형 병상이 불필요하게 늘어난 것이다.

이 같은 현상 뒤에는 한국의 열악한 공공의료가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의 공공의료 비중은 8.4%에 불과하다. 공공의료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선진국과 달리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현상이다. 절대 다수가 민간병원이다 보니 병원들은 수익을 내기 위해 무한경쟁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인력을 줄이는 대신 수익을 내는 각종 고가장비 등 시설에 투자한다. 건강보험 비급여로 제공되는 각종 첨단 고가장비가 OECD 평균의 2배 이상 사용되는 이유다. 이로 인해 1차·2차·3차 병원들이 가진 고유의 의료기능은 없어지고, 지방과 서울 간 병원 격차가 심화되는 것이다.

◇병원 간 과당경쟁 국민 건강권 침해=김 교수는 이 같은 과당경쟁이 결국 국민의 건강권 침해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병원은 건강증진과 질병관리 서비스 대신 쉽게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사후적 치료에 치중하고 있다. 인건비를 줄이다 보니 의료인력이 부족해 의료의 질도 떨어진다.

김 교수는 "병원의 과잉진료 유도로 환자들은 과도한 치료와 불필요한 약물복용으로 인해 건강권과 인권을 침해받게 된다"며 "급속한 고령화 시대를 맞아 고령자들의 질병을 관리하는 건강증진·질병관리로 의료서비스를 전환하지 않으면 앞으로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금의 의료공급체계를 유지하는 상황에서는 무상의료 정책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수도권지역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집중 현상이 심화돼 현 체계를 더 왜곡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병원 줄이고 공공의료 확충해야"=과당경쟁을 해소하고 의료시장을 안정화하려면 과잉된 공급병상을 해소해야 한다. 이를 위해 김 교수는 △300병상 미만 신규병원 신설 금지 △300병상 이상 병원 지역 병상총량제 시행 △한시적 민간병상 명퇴제 등을 제안했다.

그는 "의료체계 개편의 가장 큰 원칙은 손해를 보는 사람이 없어야 하는 것으로 병원이 구조조정되는 과정에서 정부가 민간병원을 매입하고 사업주들이 투자한 금액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매입한 병원을 공공사회복지시설이나 보건소 등으로 사용해 공공의료를 확충하는 기반으로 활용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지역거점병원이나 건강증진·질병관리 기능을 수행하는 등 공공보건의료 역할을 하는 병원에 예산을 지원해 10%도 안 되는 공공의료를 확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무상의료 실현 정책의 핵심인 '건강보험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 주장과 관련해서는 "현행 건강보험 수가를 현실화시켜야 한다"며 "병원이 건강보험 수가에 해당하는 의료행위를 해도 이윤이 남는 수준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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