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노동운동의 영향력이 점차 축소되고 있고, 80년대까지만 해도 맹위를 떨쳤던 ‘춘투’의 영향력은 지난 20년간 매우 미미해졌다는 분석이다.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동연구원 대회의실에서 열린 ‘세계화와 일본의 기업별 노동조합’ 세미나에서 주제발표를 맡은 우종원 일본 사이타마대학 교수는 “일본의 기업별노조들이 소위 ‘종업원 주권’에 집착하면서 자신들의 기반인 현장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기업별노조 키운 '종업원 주권'



우 교수에 따르면 재벌 오너의 입김이 기업 내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갖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 다수의 기업은 종업원을 ‘경영에 대한 발언권이 강한 이해 당사자’로 인식하고 있다. 경영자 스스로도 고객 다음으로 종업원을 주요 이해관계자로 인정하고 있다. ‘종업권 주권’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업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해당 기업 노조의 발언권을 높여주고 있다.

일본의 기업별노조들은 전후 민주화투쟁을 거치며 ‘신분 철폐’를 강력히 요구했다.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간 격차를 줄여달라는 요구였다. 이때 일본의 기업들은 블루칼라 계층의 일부를 떼어내 새로운 신분(Single Status)을 부여했다. 기업 내 종사자는 ‘화이트칼라-Single Status-블루칼라’로 분리됐고, Single Status는 노동자의 능력개발과 경영참가를 촉진해 일본의 고도성장을 견인했다. 당시 일본의 기업별노조들은 이 같은 노동자 계급의 분화를 수용했다. 스스로가 Single Status였기 때문이다.

Single Status는 종업원 주권의 토대가 됐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블루칼라 내 비정규직의 비율이 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소득 양극화가 심화됐지만, Single Status만큼은 막강한 발언력을 토대로 사업장 내 기득권을 넓혀 왔다. 90년대 이후 노조는 단체교섭보다 노사협의에 주력했다.

이는 노조의 실리주의 경향과 함께 우경화를 심화시켰다. 일본의 노조들은 ‘지속적으로 이익이 나는 성장’(주요 자동차 업체 A사)이나 ‘영업력 강화, 기업의 재도약’(백화점 B사)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의 경총이나 전경련과 흡사한 일본경제단체연합회는 이미 지난 2003년 “노조가 임금인상 요구를 내걸고 사회적 횡단화를 의도해 싸운다는 의미의 ‘춘투’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엇박자 내는 일본의 노동운동



이런 가운데 일본의 내셔널센터인 렌고와 기업별노조 사이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렌고는 2000년대 후반 ‘전 노동자의 연대와 사회적 공정’을 조직적 목표로 설정하고, 기업별노조에 “동일 직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균등대우가 연대를 낳는다”고 권고해 왔다. 하지만 기업별노조들은 뚜렷한 대응은 내놓지 않았다. 기업별노조의 무관심 속에 일본의 노동계는 결국 비정규직에 대한 적극적인 조직화 보다는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비정규직 처우 개선 쪽에 운동의 초점을 맞춘 상황이다.

우 교수는 “일본의 기업은 모회사의 규모를 줄이고 자회사와 관계사를 늘리는 방식으로 비용을 삭감하며 세계화에 대응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사회적 양극화를 초래했다”며 “기업통치의 한 축을 담당한 기업별노조는 이러한 기업의 행동을 용인하고, 비정규직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종업권 주권을 토대로 형성된 노조의 기득권이 스스로의 존재 기반인 현장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우 교수는 “오늘날 일본의 기업별노조가 비정규직 문제나 차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단 노조 스스로 종업원 주권이 노조에 독이 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변화의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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