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3개월 만이다. 30여년을 꾸준히 찾았다. "나 하던 데가 좋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버선에 고무신 차림이었다. 티눈 때문에 아프다고 하니 손녀가 사 왔단다. 자식 손주 자랑이 그때부터 길었다. 여든여덟, 할머니는 곱게 늙었다. 꼭 39년이라고. 21살 때 안순자씨는 서울 마포에 미용실을 열었다. 당돌하고 꿈 많던 아가씨는 오랜 단골 뒷자리 앉아 같이 늙었다. 볼품없다며 할머니 뒤로 자꾸 숨었다. 다녀간 사람 누구, 저이들 기억을 술술 풀었다. 가위질 말고는 바쁠 것도 없어 그 사연이 또 하염없이 길었다. 멀리 안암동에서 찾아온 단골이 맞장구를 척척. 추임새도 빼먹지 않아 이야기는 판소리마냥 흘렀다. 낡은 액자, 흐릿한 거울, 먼지 낀 장식까지 애틋한 사연 저마다 지녀 버릴 것 하나 없었다. 떠나려니 먹먹하다고 했다. 주인장은 재개발이 반갑지 않았다. 아파트라던데, 여윳돈 4억원이 그에겐 없었다. 빌릴 곳도 없었다. 먼저 쫓겨난 단골이 한숨을 쉬었고 서걱서걱 가위질 소리만 미용실에 남았다. 적막도 잠시. 누구는 대기업에서 돈을 많이 받았다더라, 강남에서 비싼 월세 내고 산다더라, 또 뭐라더라 말이 돌았다. 집 샀다는 대통령 아들 얘기도 잠깐, "누구든 그저 살림 잘 챙기는 사람이 돼야지"라고 여든여덟 할머니는 말했다. 맞장구 추임새 쩍쩍 붙어 선거얘기가 또 판소리처럼 흘렀다. 늦은 오후, 서울 마포구 용강동 진 미용실 풍경이다. 커트는 5천원, 파마는 3만원이다. 단골은 파마 5천원을 깎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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