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애플 CEO 스티브잡스에 대한 추모 기사가 지난 주 신문지상을 덮었다. 어려웠던 어린 시절부터, 애플 컴퓨터를 만들어 젊은 나이에 이룬 성공, 회사에서 쫓겨났지만 다시 재기해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새로운 IT 시장을 만들어 낸 재기 신화까지 그 이야기도 다채로웠다. 자동차 산업으로 대표되는 20세기 자본주의의 아이콘이 포드였다면 IT 산업으로 대표되는 21세기 자본주의의 아이콘은 잡스다.

하지만 애플이 대표하는 21세기 자본주의는 잡스가 진행하는 신제품 프레젠테이션만큼 화려하지도 않고,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상징하는 것처럼 그렇게 새롭지도 않다.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을 보며 꿈을 키워왔던 수많은 소프트웨어 개발 노동자들은 지금도 서울디지털단지에서 70년대 공돌이·공순이라고 불리던 노동자들과 그리 다르지 않은 노동조건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들 젊은 노동자들 상당수는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으며, 초과근로수당도 주말특근수당도 받지 못한다. 파견업체를 통해 이 회사, 저 회사를 떠돌아다니는 노동자들도 상당수다. 잡스가 보여준 화려한 꿈을 쫓으며 오늘의 고된 노동을 견뎌내지만 사실 극소수의 소프트웨어 개발 노동자들만이 안정적 지위를 획득한다. 한국의 스티브잡스라는 안철수씨는 젊은이들의 도전과 창업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100개의 벤처 기업 중 성공하는 기업은 1개도 되지 않는다.

사실 그의 애플은 혁신과 창조의 낙원이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들의 피눈물로 채운 저수지 위에 세워진 황금낙원이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애플의 모든 제품은 폭스콘이라는 대만계 기업이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다. 폭스콘은 중국에서 30만명이 넘는 노동자를 고용해 노예노동에 가까운 노동강도와 저임금으로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폭스콘의 공장은 12시간 맞교대로 돌아가며, 공장 밖 외출은 한 달에 한 번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 심지어 노무관리 차원에서 군사훈련까지 한다. 관리자들은 대부분이 중국 인민군 출신 장교들이다.

삼성전자는 애플의 가장 큰 부품 공급자 중 하나다. 삼성이 공급하는 것은 메모리 반도체다. 이 반도체를 만드는 한국의 생산직 노동자들은 삼성의 은폐 속에 숫자도 알 수 없을 만큼 암으로 죽어나갔다. 마구잡이 잔업과 특근으로 자살하는 노동자도 부지기수다. 삼성전자는 이러한 노동강도를 불평 없이 감내하게 하기 위해 생산직 노동자들을 주로 고등학교를 갓 마친 20대 초반의 여성들로 충원한다. 하지만 이들 젊은 여성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기 위해 4년 내외만 일을 한다. 그 이상은 몸이 버텨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삼성전자에 납품을 하는 한국의 하청업체들은 안산·구미·구로 등에서 중년의 여성노동자들을 고용해 최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통해 이 공급 사슬의 밑바닥을 구성하고 있다.

아이폰·아이패드와 같은 전자 제품들은 제품 주기가 매우 짧고, 수천 개의 부품이 적시에 공급돼야 하며, 비슷한 제품이 시장이 많기 때문에 가격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이 때문에 상당히 빠른 물류시스템과 물류비용 관리가 중요하다. 아이폰 새 제품이 나올 때마다 중국에서 전 세계로 제품이 공급돼야 하고, 각국에서 매장으로 다시 배달돼야 한다. 이 과정은 운송 노동자들이 담당하는데, 이들 노동자들은 전 산업에서 가장 긴 노동시간과 가장 적은 임금을 받는다. 삼성전자 기흥 공장에서 하루에 수차례 인천공항으로 화물을 운송하는 화물 노동자들은 기름값, 톨게이트비용을 제외하면 손에 쥐는 돈이 거의 없다. 그래서 이들 노동자들은 거의 목숨을 내걸고 하루에 12시간 이상 운전을 해야만 한다. 시급으로 환산하면 최저임금은 고사하고 2천원 남짓한 임금이다. 인천공항에 들어온 아이폰을 주요 매장에 공급하는 화물노동자 역시 마찬가지다. 저운임을 장시간 운전으로 보충하기 위해 과속을 해야만 하고, 화물차가 과잉상태인 화물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과적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러다 사고가 나면 모두 화물 노동자가 책임져야 한다. 매년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화물노동자가 부지기수고, 도로에서 졸음운전 과속운전으로 죽어나가는 노동자가 한해 150명이 넘는다.

이것이 화려한 애플의 뒷 세계다. 신제품 발표회 장에서 감탄 속에 나오는 애플 신모델의 생산과정이다. 스티브 잡스가 노동자의 피로 얼룩진 자본가가 아니라 혁신과 창조의 아이콘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70년대 중후반부터 미국 내 모든 생산 공장을 해외로 이전해 애플을 바라보는 시민들 눈앞에서 착취의 현장을 치워버렸기 때문이다. 그 모든 착취와 수탈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눈앞에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스티브 잡스에 대한 쏟아지는 언론과 젊은이들의 추도사에 대해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세상이 모르게 죽어간, 그리고 지금도 발암물질과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생산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한 번쯤은 생각해 봤으면 한다. 이게 바로 21세기 애플의 자본주의라는 것을 생각해 봤으면 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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