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80년 KT에 시외교환업무직으로 입사한 김아무개(여·56)씨. 그는 줄곧 서울에서 근무하다 93년 연고지인 수원으로 발령을 신청했다. 이때부터 114 안내업무를 맡은 김씨는 근무 2년째가 됐을 때 어깨와 목이 저려 오기 시작했다. 유명하다는 병원과 한의원은 다 찾아다녔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그의 병명은 컴퓨터단말기증후군(VDT 증후군)이었다. 산업재해로 인정받아 1년 동안 요양치료를 하고 회사에 복귀한 김씨는 잇따라 새로운 업무로 발령이 났다.

2002년부터는 해마다 명예퇴직을 요구받았다. 2008년 KT에서 VOC(Voice of Customer) 업무가 분사될 당시 김씨는 20일 동안 아침저녁으로 퇴사 요구를 받았다. 결국 김씨는 3년 동안 고용을 보장받고 임금의 70%를 지급받는 조건으로 KT 계열사인 KTis로 전적했다. 그러나 KT는 올해 다시 VOC 업무를 회수했다. 그는 “업무가 다시 KT에 회수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며 “일을 배워서 잘 처리해 왔는데, 이제 와서 업무가 없어졌으니 나가라고 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2. 정아무개(남·53)씨는 86년 KT에 입사했다. 근무 23년째였던 2008년 KT가 IT본부를 분사했다. 정씨는 KT 본사에 잔류해도 좋다는 얘기를 듣고 잔류를 희망했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했다. 팀장이었던 그는 보직과 업무를 빼앗겼다. 회의에 들어가면 망신을 당하기 일쑤였고 밤 12시 넘어 집에 들어간 후 비상호출을 받아 다시 회사에 나오는 일도 있었다. IT분야에서만 15년을 근무하면서 나름 전문가라고 자부했던 그는 급기야 다른 동료들과 함께 현업으로 발령났다. 23년 동안 사무직 업무를 하던 정씨는 전화기를 수리하거나 전주를 세우고 뽑는 일을 했다.

그제서야 그는 자신이 ‘C-Player'(퇴출 대상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관리자들은 아침·점심·퇴근 전까지 하루 세 차례 그를 불러 면담했다. 퇴사하지 않으면 원거리 발령을 낼 수 있다고 했다. 김씨는 “가장 힘든 것은 직장 내 왕따였다”고 털어놓았다. 현장일을 모르는 김씨를 도와주는 직원은 다음달 회의에서 상사에게 지적을 당했다. 그러다 정씨는 2008년 10월 KT 계열사인 KTis로 전적했다. 전적 당시 정씨는 회사로부터 “열심히 일하면 신분은 계속 보장된다”고 들었다. 하지만 3년 후 KT는 해당업무를 회수해 갔다. KTis에서도 팀장을 맡고 있는 그는 “팀원들에게도 공공연하게 열심히 일하면 고용이 보장된다고 하니 열심히 해 보자고 얘기했다”며 “이제 와서 통보도 없이 KT가 일순간에 업무를 가져가면서 나가라고 하니 억울하다”고 말했다.


2008년 계열사로의 전적을 조건으로 KT에서 명예퇴직했던 노동자들이 3년 만에 다시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당시 고충처리업무(VOC)를 계열사로 분사했던 KT가 올해 해당 업무를 다시 회수해 갔기 때문이다. 또다시 실직위기에 놓인 노동자들은 노조를 결성했다.

‘KT계열사 위장된 정리해고 철회와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지원대책위원회’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정동영 민주당 의원·홍영표 민주당 의원은 15일 오전 서울 을지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KT 계열사(KTis·KTcs) 노동자 노동인권 실태발표·증언대회’를 개최했다.


다시 재현되는 퇴출의 악몽

2008년과 2009년에 걸쳐 KT에서 명예퇴직한 인원은 500여명이다. 이들은 2008년 9월부터 2009년 6월까지 1년에 걸쳐 3개월 단위로 순차적으로 퇴사했다. 정규직이었던 이들은 3년 고용보장과 KT 재직 당시 임금의 70%를 보장받는 조건으로 계열사인 (주)케이에스콜·(주)코스앤씨·(주)한국콜센터·(주)티엠월드로 전적했다. 2009년 (주)케이에스콜과 (주)코스앤씨는 KTis로 (주)한국콜센터와 (주)티엠월드는 KTcs로 통합됐다.

KTis와 KTcs는 올해 6월 근로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전적 노동자들에게 사직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KT 계열사 노동자 25명을 상대로 사직종용 실태를 조사한 김성호 공인노무사(성동근로자복지센터)는 “2008년 전적 당시 근로계약서를 보면 (주)코스엔씨의 경우 근로계약기간이 3년이 아닌 ‘퇴직시까지’로 돼 있다”며 “근로계약 당시 이미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에 따르면 3년의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은 그 자체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사직 거부하면 콜센터·원거리 발령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은 노동자들은 콜센터업무로 발령이 났거나 교육을 받고 있다. 일부 노동자들은 원거리발령을 받아 통근시간이 왕복 3시간30분에서 최대 6시간인 직원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성호 노무사는 “인터뷰 증언자들은 회사 관리자들이 본인들에게 비인격적인 처우를 거리낌 없이 행하고 있다며 마치 KT에서 명예퇴직할 당시의 상황이 재현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실태조사에 응한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다음과 같은 증언이 이어졌다.

“가족들 앞에서 자신감이 없어졌다. KT에서 한 번, 여기서 또 한 번, 두 번이나 이런 일을 겪다 보니 매사에 의욕도 없다. 자녀 대학교 등록금에 결혼자금까지 신경 써야 하는 나이에 가장으로서 가슴을 펼 수가 없다.”


점심시간 1시간도 보장 안 된다?

KTis와 KTcs에는 114 안내와 KT 100번 고객센터 상담원 노동자들이 근무하고 있다. 두 계열사로 전적한 KT 노동자들이 사직을 거부하면서 발령을 받은 바로 그 업무다. 최근 사직을 거부해 콜센터 상담원 교육을 수료했다는 전해남 희망연대노조 케이티씨에스지부장은 “3년 동안 상담원들과 같은 회사에 소속돼 있으면서도 상담원들의 노동조건이 그렇게 열악한지 모르고 있었다”며 “딸만 셋 가진 부모로서 여성 상담원들을 보는 것이 가슴 아프다”고 안타까워했다.

최은실 공인노무사(노동과 삶)가 이날 발표한 ‘KT 계열사 KTis 100번 콜 상담원들의 노동인권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동자들에게 1시간의 점심시간이 보장된 것은 불과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의 경우 한 달 평균 4~5회는 점심시간을 20분만 제공한 것으로 조사됐고, 1주일에 3일 정도는 점심시간이 40분에 불과했다. 당일의 점심시간 길이와 제공시간은 센터장이 판단해서 구두로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동강도도 강했다. 1일 콜 목표량으로 110콜을 채우지 못할 경우 사유서를 제출하거나, 몸이 아파 조퇴하려면 42콜 이상을 처리해야 하는 등 부당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최 노무사는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이직률이 매우 높게 나타났다”며 “신규상담사의 60% 이상이 100번 센터에 배치된 뒤 6개월 이내에 퇴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전했다.

이종탁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콜상담업무가 분사·외주화되면서 값싼 노동력으로 잠깐 쓰는 것으로 잘못 인식되고 있다”며 “고객서비스 측면에서라도 질 낮은 일자리로 고착화시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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