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운동
연구소 연구실장

8월 말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가 현장에 복귀했다. 그러나 투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현재 사측은 조직활성화 창출 과정이라는 말도 안 되는 교육을 복귀 조합원을 대상으로 실시하며 민주노조 와해공작을 계속하고 있고, 지회는 단체협약 위반인 사측의 일방적 교육을 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사측은 교육 불참 조합원들에 대해 징계 협박을 계속하고 있다. 경주 발레오만도에서도 노조 탄압을 목적으로 비슷한 내용의 교육과 징계가 이어진 바 있었다.

지회의 현장복귀 이후 유성기업 투쟁이 잊히고 있지만 사실 유성기업 투쟁은 한국 노동운동에서 이대로 놓아 버려서는 안 되는 사안이다. 심야노동 철폐라는 쟁점도 그러하고, 현대자동차 자본의 부품사 노사관계 개입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특히 후자의 경우 재벌 중심 경제체제가 강화될수록 한국 노동운동의 목을 죄어 올 쟁점이다. 예전부터 재벌 대기업의 부품사 노사관계 개입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반노조 정책, 재벌대기업 중심 정책을 노골적으로 펴고 있는 이명박 정부 들어 이러한 양상은 심각한 수준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정부는 재벌 대기업을 위협할 수 있는 하청기업 노조를 공권력을 동원해 무력화하고, 재벌대기업은 하청기업 노무관리에 직접 개입해 노조탄압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재벌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가 심화되는 상황에 따라 노사관계 역시 기존 대기업노조에 대한 관리에서 더욱 확장되는 형태다.

이명박 정부에서 관계 당국과 사용자의 집중적 탄압을 받은 경주 발레오만도지회·대구 상신브레이크지회·충남 유성기업지회 등은 모두 현대·기아차의 1차 부품사이자 자동차 부품기업이 밀집해 있는 산업단지의 핵심 노조들이었다. 파업 유도와 직장 폐쇄, 대규모 징계 해고, 핵심 간부에 대한 구속·수배, 어용노조 설립이라는 노조탄압 방식 역시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현대차의 직접적 개입 정황 역시 공통적으로 발견됐다. 유성기업에서는 직장폐쇄에서부터 전문 노무컨설팅 선정까지 상세하게 지시한 현대차 노무팀의 개입 문서가 발견됐고, 심지어 충청남도가 중재한 노사교섭에 아예 현대차 노무팀이 동참하기까지 했다. 발레오만도 역시 파업 이전부터 사측이 현대차와 파업이 벌어질 것을 가정해, 부품 공급계획을 수립하는 등 사실상 공동으로 노조탄압 시나리오를 수립했다.

현대차가 공격적으로 주요 하청기업의 노사관계에 깊숙이 개입하고 정부가 이를 후방에서 지원하는 형태의 노조탄압은 2000년대 이후 현대차 생산방식의 변화에 따라 하청기업 노사관계 관리가 현대차에게 더욱 중요해지는 상황과 관계돼 있다.

현대차는 2000년대부터 부품공급의 시간과 순서까지도 통제하며 재고를 최소화하는 직서열(JIT) 방식의 생산을 확대해 왔다. 도요타의 적시생산을 더욱 확대한 방식으로 현대차는 이를 타 자동차 업체에 대한 강한 경쟁력 우위요소로 밝히고 있다. 그런데 현대차 입장에서 문제는 라인이 공장 밖으로 확장됐다고 볼 수 있는 직서열 생산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청기업에 대한 안정적 노무관리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강한 현장장악력과 초기업적 노동운동 전망을 가지고 있는 금속노조 1차 부품사 기업지회들에 대한 통제가 필요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여러 방식을 통해 현대차는 1차 부품사들의 임금·단체협상까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었는데, 최근 몇 년간 금속노조 지역지부 핵심 사업장에서 벌어진 노조와해 공작은 이명박 정부의 노동배제적 노사관계 정책을 배경으로 현대차의 하청기업 노사관계 개입이 극단적으로 확대된 결과라 할 것이다. 이러한 결과 최근에는 금속노조의 노동당국은 과천이 아니라 현대차 본사가 있는 양재동에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됐다.

이번 금속노조 선거에 단독출마한 후보조가 중요한 정책공약 중 하나로 재벌사의 지배·개입 대응력 강화를 내걸었다. 금속노조는 먼 곳에서 답을 찾을 필요 없이 지금 현장에서 치열하게 진행 중인 유성기업 투쟁을 다시 산별 차원의 투쟁으로 확대해 나가는 것에서부터 답을 찾아야 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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