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는 안정적이지만 속으로는 문제가 많다”

장광핑 중화전국총공회 서기처 서기는 현재 중국의 노사관계를 한 마디로 이렇게 표현했다.

최근 한국에서 공정사회, 공생발전이 주요 의제라면 중국에서는 조화로운 노사관계가 중요한 화두다.

지난해 글로벌 기업인 폭스콘·혼다에서 잇단 파업을 경험한 중국은 올해 3월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12차 5개년계획'을 확정하면서 '조화로운 노사관계 구축' 조항을 별도로 만들었다.

모든 기업에서 노조를 결성하고, 모든 사업장에서 노사 간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것과 매년 최저임금을 13% 인상하겠다는 내용이 여기에 포함됐다. 2016년까지 앞으로 5년간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위한 토대를 닦겠다는 중국 정부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성장에서 분배로 눈 돌린 중국

노사발전재단 국제노동협력센터(센터장 김성진)와 중국 총공회는 지난달 31일 간쑤성 란저우시에 있는 양광호텔에서 '한중 노동관계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두 나라의 노동전문가들은 급변하는 경제구조 속에 노사관계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안지엔화 총공회 정책연구실 처장은 "현재 중국 노사관계는 전반적으로 안정적이지만 금융위기 이후 산업 구조조정 속도가 빨라지면서 매우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올해 2월 악의적인 임금체불을 범죄로 규정하는 형법 개정안을 공표했다. 노동계약법, 취업촉진법, 노동쟁의중재법, 사회보험법의 뒤를 잇는 노사관계 변화의 징조로 꼽히고 있다.

중국 역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노동집약적이고 수출기업 중심의 중소기업들이 심각한 경영난에 직면했다. 임금을 체불하거나 삭감하고, 노동자를 해고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노사 간 갈등도 증폭됐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노사분규에 화들짝 놀란 중국 정부는 정책의 초점을 성장에서 분배로 옮겼다.

2005~2010년 연평균 10.1%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중국은 올해 경제성장률의 목표를 7%로 낮춰 잡았다. 그동안 성장의 과실을 노동자와 최대한 나누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중국은 지난해 30개 성의 최저임금 기준을 상향조정했는데 평균 인상률이 24%에 이르고 있다.

이 기간 중소도시 민영기업 취업자의 평균 임금도 14.1% 인상됐다. 안지엔화 처장은 "과속 성장세를 둔화시켜 노사분쟁을 줄이고 노사관계를 전반적으로 안정시키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노조 결성, 단체교섭의 의무화

중국에서 ‘조화로운 노사관계’는 의료·교육 등 사회보장 시스템의 구축과 함께 총공회 강화로 집약된다. 일례로 모든 기업에서 노조를 결성하고 단체협상을 진행하는 것은 현재 중국 사회의 주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다.

안 처장은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중국에서는 110만개 기업에서 임금·단체협약을 체결했는데, 이는 유노조 사업장의 33.9%에 해당하는 수치”라며 “총공회는 2013년까지 노조가 있는 기업 가운데 80% 이상에서 임·단협을 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파업이 발생한 광둥 난하이 혼다자동차 부품공장에서 노사 간 단체협상 시스템을 마련됐다. 올 들어 네 차례 교섭을 벌인 결과 임금인상액은 2009년 500위안화 수준에서 올해 611위안화로 상향조정 됐다. 이에 노사관계도 안정되는 효과를 거뒀다.

그는 이어 “단체협상과 분쟁조정제도를 통해 노사 간 분쟁이 사회적 문제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며 “노동자 임금수준은 노사 간 협상으로 결정되도록 함으로써 노동자와 기업이 발전적 동반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별 노사협상뿐만 아니라 지역별·산업별 단체교섭도 중국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올해 4월 우한시 요식업 노사는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10개 주요 직종의 임금수준을 정하는 임단협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4만개 요식업체에서 일하는 45만명의 노동자들은 평균 9%에 이르는 임금인상이 이뤄졌다. 저장성에서는 사출성형·제화·선박건조 등 7개 업종에서 산별교섭을 벌여 협약을 체결했다.

한·중 노사정, 양극화 해결 위해 협력해야

이날 모인 한·중의 노사정 관계자들은 협력적 노사관계를 통해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노동시장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 했다.

이상현 한국노총 전략기획처 국장은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기업에서 구조조정이 상시화 되면서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졌다"며 "분배에서 고용유지로 노동계의 관심이 변하면서 노사관계 패러다임도 전환기를 맞게 됐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그동안 한국에서 분배중심의 전투적 노동운동과 사측의 비용감축 위주의 노동배제적 경영전략, 정부의 관료적 사고로 대립적 노사관계가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노사정 파트너십에 기초한 지역 고용거버넌스 체제로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에서도 노동자의 경영참여 확대와 노사정 삼자 합의시스템 마련이 사회적 갈등 해결의 열쇠로 떠오르고 있다.

장호창 간쑤성 총공회 벌률보장부 부장은 “2008년 금융위기 발생 직후 간쑤성의 노사정은 ‘기업의 무감원·무감봉 약속 활동’을 펼쳐 교대무급 휴직제를 실시하고 직업훈련을 강화하는 노력을 펼쳤다”면서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도 간쑤성 노사정 3자는 오는 2013년까지 3년간의 임단협 행동계획을 마련해 불평등한 임금수준을 높이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한국의 노사협의회와 유사한 성격의 노동자대표회의제도를 도입해 기업에서 경영상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반드시 사전동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노동자의 이사회 참여, 감사권 강화 같은 조치도 이뤄졌다.

김판중 한국경총 고용정책팀장은 한국의 노사정 협력 사례를 소개했다. 김 팀장은 “한국노총과 경총이 2004년 체결한 일자리 만들기 협약을 통해 설립한 재취업지원센터(현재 노사발전재단 산하)는 구직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6개월 이내 전직지원 성공률이 40~50%에 이르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2004~2006년간 장기분규 사업장인 하이닉스-매그나칩과 관련해 충북에서 지역 노사정협의체 구성한 사례 △사양산업인 섬유산업에서 전직 지원을 하는 대구 노사정 협력시스템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은 최근 지니계수가 0.5에 가까운 소득불평등 문제를 겪고 있고, 한국은 정규-비정규 노동자 간, 대-중소기업간의 격차로 심각한 양극화 현상을 겪고 있다”며 “한국과 중국,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 3국의 경제가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만큼 세 나라 노사정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성진 센터장은 “이번 세미나를 통해 한·중 양국의 경제구조는 다르지만 노사관계는 비슷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데 공감했다”며 “앞으로 더 활발한 교류를 통해 협력관계를 만들어 가자”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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