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5천억원가량의 글로비스 주식을 그룹 사회공헌재단인 해비치사회공헌문화재단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과 보수언론들은 이번 기부가 개인 기부금액 중 사상 최대이며, 한국 기부문화를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시킬 것이라고 찬사를 쏟아냈다.

하지만 과연 정몽구 회장의 주식증여가 이렇게까지 찬사를 받을 일일까. 아니다.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첫째, 도적의 셈법. 정몽구 회장의 주식증여는 열을 뺏어 둘을 내놓던 도적이, 열둘을 뺏어 셋을 내놓은 것과 비슷하다. 당장 지난 겨울 세상에 알려진 현대차의 비정규직 임금 착복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다.

현대차는 정규직으로 일했어야 할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해 매년 천억원 이상의 임금을 착복했다. 비정규직이 급격하게 늘어난 2000년대부터 계산해도 1조원이 넘는 돈이다. 1조원을 노동자들로부터 빼앗아 5천억원을 내놓은 것을 두고 기부라 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하청기업에 대한 부당거래, 내부거래를 통한 비자금 조성, 정부의 각종 세제혜택, 비상장 주식을 이용한 다양한 차익획득 등 정몽구 일가가 각종 수단을 통해 수탈한 돈까지 감안하면 5천억원은 그야말로 새 발의 피만큼도 되지 않는다.

둘째, ‘야바위’ 기부. 정몽구 회장이 주식증여로 실제 지출한 돈은 없다. 정몽구 회장이 기부한 것은 글로비스 주식 2천250만주다. 이걸 시가로 계산하니까 5천억원 기부라고 하는 건데, 그야말로 눈속임이다.

정몽구 회장의 지분이 18%에서 11%로 낮아졌다고 하는데, 이번 증여는 7% 지분이 정몽구 회장이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계열사로 이동한 것일 뿐이다. 정몽구 11.1%, 정몽헌 31.9%, 현대차 4.8% 등으로 여전히 그룹 경영권 확보에 문제가 없고, 여기에 해비치재단 8.4%까지 합하면 지분은 54%로 정몽구 일가의 글로비스 지분에 사실상 변동이 없다.

재벌들이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그것을 팔아 돈을 만들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런 점에서 정몽구 회장에게는 어떠한 변화도 발생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해비치재단은 이 주식을 팔아 공헌기금을 만들 것이라고 하는데 언제 어떻게 팔겠다는 것인지 계획이 없다. 주식시장 전문가들은 증여세를 피하기 위해 3년간은 지분매각이 없을 것이고 전망하고 있다. 그러면 3년 후에는 주식을 팔아서 기금을 마련할까. 아주 일부만, 그것도 경영권 방어에 문제가 없는 선에서만 조금씩 매각할 것이다.

해비치재단의 사업영역을 봐도 사실 재단이 그렇게 사회기여를 위해 많은 돈을 쓸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해비치재단은 지난해 교통사고 유자녀 지원에 30억원, 예술전공학생 지원에 2억5천만원, 소외지역 문화예술교육 지원에 6억3천만원, 문화바우처 사업에 1억5천만원을 사용했다. 해비치재단은 교통사고 유자녀 지원 정도를 제외하면 사실상 규모가 매우 작은 사업들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5천억원 상당의 주식 중 극히 일부만 매각해 사업자금을 마련할 것이 뻔하다. 더군다나 재단의 이사진은 경총 회장·계열사 임원·김&장 변호사·금융지주회사 회장 등으로 꾸려져 있어 이들이 과연 진정성 있는 사회기여 사업을 할 것인지도 의문이다. 재단으로의 주식 증여는 생색은 생색대로 내면서 재단을 주식보유 창고로 쓰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셋째, 장물(贓物) 기부. 글로비스는 성장 자체가 정씨 일가의 각종 부당행위로 얼룩져 있는 기업이다. 정몽구 회장이 기부를 약속한 계기도 글로비스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이었다. 2001년 설립된 글로비스는 현대차그룹의 물류 전체를 독점하면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비자금이 조성됐고, 당시 비상장기업이었던 글로비스의 주식을 대부분 소유하고 있던 정씨 일가는 2004년 주식배당과 2005년 주식분할, 그리고 2006년 증자와 주식상장을 통해 1조원가량의 차익을 얻었다. 그리고 정몽구 일가가 물류회사 하나 만들어 그룹 내 물량 몰아주기를 통해 얻은 이익은 매년 100억원 이상의 배당수익까지 감안하면 그 이상이다.

그룹 내 물량 몰아주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주식 일부를 진짜 기부도 아니고 주식증여로 계열 재단에 넘긴 것을 가지고 생색을 내는 정몽구 회장의 작태는 칭찬의 대상이 아니라 규탄의 대상이어야 한다.

정몽구 회장이 이번에 기부로 포장된 주식 기여를 단행한 이유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현대차 사측이 각종 노동탄압으로 악화시킨 반 현대차 여론을 무마해보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하지만 그 실내용을 들여다보면 다시 한 번 시민들을 기만하는 작태에 다름 아니다.

정몽구 회장이 조금이라도 사회에 기여를 하고 싶다면 주식증여 같은 ‘쇼’는 그만두고 현대차 사내하청노동자들의 정규직화와 지금도 현장에서 각종 노동탄압이 자행되고 있는 유성기업 사태를 우선 해결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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