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월부터 시작된 세계적인 주가폭락 사태가 유럽과 미국에서 이어지는 재정위기와 경기침체 우려로 인해 좀처럼 진정세를 찾지 못하고 추락과 횡보를 반복하고 있다. 여기에 프랑스 등 유럽 주요 국가의 신용등급 하락 우려와 재정위기 국가들의 국채를 다량 보유한 은행들의 부실우려까지 겹치면서 추가적인 상황악화 위험성까지 내재하고 있다. 8월26일 미국 연준의 잭슨홀 콘퍼런스에서 벤 버냉키 의장이 내놓을 해법을 기다리고 있지만 기대는 크지 않다.

그 가운데 현재의 국면이 실질적으로 위기국면으로 가고 있는가 아니면 일시적인 충격인가 하는 진단이 엇갈리고 있다. 초기에는 일시적 혼란이나 충격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이번 위기는 대부분 잘 알려진 위기라서 불확실성이 높지 않다는 점, 과거 거품의 붕괴 과정과는 양상이 다르다는 점,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역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은 심리적인 충격이 해소되면 안정을 찾을 것이라는 점, 미국과 유럽 정치권의 위기 수습 대응능력에 대한 일종의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장기화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 등이 작용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가면서 실물지표들이 확인될수록 더블딥(이중침체) 가능성을 더 크게 전망하게 되고, 이에 반비례해 명확한 대응책이 부재하다는 판단이 나오면서 상황은 바뀐다. 오히려 급격한 거품 붕괴 같은 연속적인 충격은 보이지 않더라도 사태가 매우 장기화할 수 있다는 쪽으로 무게가 실리기 시작한다.

“미국과 유럽이 6~12개월 안에 더블딥에 빠질 수 있다”(모건스탠리), “리세션 위험이 명백히 높아졌다”(JP 모건), “새벽이 오려면 아직도 멀었다”(메릴린치)는 등 미국 투자은행들의 전망도 빠르게 비관적인 쪽으로 기울고 있는 중이다.

물론 기술적으로는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해야만 경기침체로 인정하고 있고, 현재는 여전히 낮지만 플러스 성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부터 경기하강 추세가 분명하게 감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올해 하반기부터는 미국을 중심으로 양적 완화나 경기부양 정책이 대부분 종료되고 있어 민간부문의 자생력만으로 경제성장 동력을 유지할 수 있겠는지 하는 점이 충분히 검토돼야 한다. 또한 두 거대 경제권인 북미와 유로권이 서로 악영향을 주면서 경기침체를 부채질 할 경우 예상보다 빠르게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는 점도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 핌코 설립자인 빌 그로스는 아예 “미국 경제는 경기회복을 위한 자생적인 능력을 잃었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중요한 논쟁은 바로 현재 위기가 과연 ‘재정위기’냐 하는 점이다. 처음에는 언론매체에서 보도되는 재정위기라는 점을 일반적으로 수용하는 듯했지만 재정위기가 균형재정 추구로 이어지고 긴축으로 귀결되는 조짐을 보이면서 이에 대한 강한 비판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로버트 라이시 미국 전 노동부장관이나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의 마크 웨이스브롯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견해에 따르면 그리스나 포르투갈 등 일부 나라들을 제외하면 미국을 포함해 실질적으로 재정위기에 접어든 나라들은 없다는 것이다. 웨이스브롯에 의하면 아직 미국의 정부 부채에 대한 이자지급 비율은 GDP 대비 1.4%에 불과하다는 것이고, 만약 미국 국가채무가 문제가 된다면 미국이 발행하는 국채가 시장에서 그렇게 활발하게 유통될 리가 없다는 것이다.

요점은 국가부채를 GDP로 나눈 비중이 미국과 이탈리아·프랑스 등에서 100% 전후를 오가고 있는데, 긴축을 통해 부채규모(분자) 자체를 당장 줄일 수도 있지만 이는 동시에 성장률(분모)도 함께 떨어져 결국 부채비율은 줄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긴축으로 부채규모를 줄이기보다는 실물경제를 살려서 성장률을 제고함으로써 부채의 상환능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긴축이 아니라 경기부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여경훈 연구원 역시 1980년대와 비교해 국가부채 비율이 20% 정도 더 늘어난 것이 사실이지만, 당시에 비해 지금은 국채 이자율이 2%에 불과하기 때문에 정부지출 대비 이자 지급비중이 오히려 과거에 비해 절반 수준인 5.7%로 떨어졌다고 주장한다. 이자 상환부담에 비춰 봤을 때 재정적자가 심각하다고 볼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현재 위기를 재정위기로 진단하는 것은 “재정위기의 지속 불가능성을 정치적으로 확산해 실제 재정위기가 초래되면 복지지출 삭감을 선택이 아닌 유일한 해법으로 강제하려는 신자유주의자들의 부활 전략”이라고 비판한다.

한국에서도 동일한 비판이 적용된다. 현재 정부부채 비율이 40%도 안 되는 상황에서 균형재정이나 과잉 복지지출을 강변하는 정부의 논리도 위의 비판에 정확히 들어맞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재정우려에 앞서 실물경기가 침체되고 성장이 멈추는 것을 먼저 고민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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