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온다. 그죠?”
개콘(개그콘서트)에서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는 ‘여당당’ 대표의 오프닝 멘트가 아니다. 요즘 공공부문과 금융노동자들 심정이 딱 이렇다.

지난 2009년 정부는 “공기업은 고용도 안정돼 있고 임금도 높아 인재들이 몰린다” 는 황당한 이유를 들이대며 신입직원들의 초임을 대폭 삭감했다. 그랬던 정부가, 이제 현장의 갈등이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선배직원들의 임금을 깎아 신입직원들의 임금 차별을 메우자고 한다. 그것도 초임호봉 수준은 현재에 고정시킨 채 3~5년 후에는 기존 직원들 급여에 편입되도록 한다는 기발하고 친절한(?) 방법까지 제시하면서….

기억하겠지만 2009년 금융위기를 기회로 정부가 초임삭감을 밀어붙일 당시 노동계는 강력히 반발했었다. “법적 정당성 여부를 떠나 한 조직 내에 차별적인 두 개의 임금 테이블이 존재할 때 그 조직이 온전히 유지될 수 있겠는가. 제발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생각 좀 해보라”며 양심에 호소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당시 여당의 정책위의장(현 대통령 실장)도 “이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한시적으로 하는 것이 맞겠다. 긴급히 당정협의를 열어 조정하겠다”며 “너무 단기 실적을 내려는 사람들이 문제”라고까지 했었다(2009년 4월9일 한국노총과의 고위급 정책협의회).

그러나 정부는 멈추지 않았다. 경영계약 등으로 목줄을 잡고 기관장들을 몰아붙였다. 기관장들은 노조를 피해 회사 밖에서 이사회를 열고 취업규칙 변경안을 통과 시켰다.
국정철학이 ‘비즈니스프렌들리’인 대통령이 약속한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노조가 없는 나라’이고 ‘인건비가 한없이 싼 나라’다.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정부는 전임자임금 금지를 통한 노조 무력화와 사회 전체의 임금수준 낮추기를 시도한 것이다. 다만 임금을 일시에 낮출 경우 부딪힐 반발을 고려해 신입직원부터 시작해 기존직원으로, 공공부문에서 민간으로 확산시켜 나가려 한 것이다.

지난 16일 한국노총 위원장 등과의 면담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런 말을 했다. “임금 이원화로 인한 현장 갈등이 더 증폭되기 전에 임금차별을 해소시켜야 한다는 데는 동의 한다. 그러나 금융·공공부문의 임금이 생산성이나 민간부문에 비해 높으니 조정이 필요다고 보는 것은 별개이다.” 결국 신입직원이 문제가 아니라 전체적인 임금 하향평준화가 본시 목적이었음을 실토한 것이다.

이어 19일 정부(기재부)는 갑자기 공공부문이 민간부문에 비해 임금수준이 1.53배나 높다는 발표를 했다. 누가 봐도 노동계의 거센 임금차별 해소 요구에 대한 물타기다. 임금수준을 결정하는 변수는 실로 다양하다. 관련 산업의 임금수준 뿐만 아니라 노동시장의 수요공급 상황·근속연수·학력·숙련도·노사관계·고용형태·재화와 서비스의 성격·시장상황·기업의 역사성 등….

그래서 업종·근속연수·학력 등이 정확히 일치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회사의 인원 규모별 임금비교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더구나 공공부문과 민간부분의 경우는 그 사업내용과 성격부터가 달라서 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정부는 임금비교로는 전혀 현실성이 없는 단순한 산업분류와 300인을 기준으로 그 이상 사업장과 그 이하 사업장으로 구분해 ‘규모별 평균임금 수준’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정부의 의도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모든 국민의 임금수준이 인원규모에 따라 동일해야 한다는 논리인가. ‘동일임금 동일노동’은 들어봤어도 ‘동일인원 동일임금’은 처음 들어보는 소리다. 자녀들 대학등록금이 한 학기 1천만원을 육박하고 아파트 전세가 1년이면 수천만원씩 뛰는 나라다. 그럼에도 연간 3천만~4천만원에 모든 국민들의 평균임금을 맞추자는 소리라면, 어느 위원장 말대로 “차라리 공산주의를 하자”고 해라.

정부 스스로 인정하듯이 초임삭감 정책은 현장의 갈등과 분노만 양산한 채 실패했다. 사회 전체의 임금수준을 낮추기 위해 공공·금융부문 노동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시도는 당장 중단돼야 한다. 한국은 관치국가도 아니고 공산국가도 아니고 법치국가다. 그리고 당신들이 그렇게도 신봉해 마지않는 시장경제 국가다. 임금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노사 당사자가 결정하도록 돼 있다. 무엇보다 국민들 소득수준을 끌어내려 삶의 질을 하향평균화하는 것을 정책이랍시고 들고 다니는 대통령과 정부는 지구촌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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