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체 선이 보이지 않는다. 그 선이란, 미래를 꾸려 나가기 위한 진로의 궤도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진보 대통합의 의의가 확정된 지 이미 오래인데 그 실천은 여전히 어렵다. 아리랑 고개가 이렇게 고단할까 싶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사이의 의견합치는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다.
이래 가지고 두 당의 미래도 가늠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 되고 있다. 국민들의 관심도 여기에 있지 않다. 국민들의 관심은 오히려 대선후보로서의 문재인에게 모아지고 있다. 진보정당의 통합은 이런 조건에서 지지부진함까지 겹쳐 화제의 대상도 되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 할 것인가.

날이 갈수록 노동자들의 상황은 열악해지고 청년세대의 현실은 궁지에 몰린 형편이다. 서민들의 삶도 팍팍해지고 있는데 진보정치는 가동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는 것은 그냥 흐르는 것이 아니다. 이러면서 누군가의 힘은 강해지고 누군가의 힘은 약해진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약해지는 쪽이 진보정치라는 점이다.

더 신랄하게 말하자면 이런 식으로는 진보정치에 대한 기대보다는 환멸과 염증이 늘어날 판이다. 동지를 잃고 지지세력을 놓치고 있다. 그 끝은 어디일까.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끼는 그 쓸슬한 정경을 되풀이해도 되는 것인가. 누가 뭐래도 나는 이 길을 간다는 결의에 찬 모습에서 출발해 온 우리가, 이제는 ‘홀로 남아도 좋다’를 계속할 것인가.

진보정치는 누구에게 책임을 져야 하는가. 바로 이 나라 민중 아닌가. 그런데도 여전히 진보정당, 또는 세력의 입지가 우선이 되는 정치라면 그러한 정치세력의 미래는 희망이 없다. 자신의 조직적 기득권이 아니라 민중의 현실을 먼저 앞세우는 쪽이 당연히 국민들의 지지를 받게 돼 있다. 이걸 외면하면 국민들이 이들을 외면하는 것은 너무도 정당하다.

더 졸아들고 망해야 진보정치는 새로울 수 있을 것인가. 아직도 정신차릴 만한 상황이 아닌가. 이런 식으로 어디까지 밀고나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이 사람도 놓치고 저 사람도 놓치고 하면서 누구랑 하겠다는 것일까. 시기도, 사람도, 의지도 다 약해지고 실종된 뒤에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논쟁은 계속할 수 있는 거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 놓고 할 수 있는 게 어디 있는가. 있는 여건에서 해 나가는 것 아닌가. 힘을 모을 수 있는 지점에서 힘을 모으고, 방향을 잡아 나갈 수 있는 지점에서 잡아 보고 가다가 아니다 싶으면 또 논의해서 길을 모색하고, 그러면 되는 것 아닌가.

처음부터 무슨 꽉 짜인 프로그램을 가동하지 못하면 세상이 끝날 것처럼 여기는 것은 우스운 일 아닌가. 애초에 잘하지 않으면 계속 고생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너무 그러면 숨 막힌다. 가다가 힘들면 쉬어가면 되고, 가다가 의견이 틀리면 서로 토론해 보면 되고 가다가 이 방향이 아니다 싶으면 방위를 또 잘 찾아서 가면 되는 거 아닌가.

이렇게들 여유가 없고, 이렇게들 국민적 현실에 둔감해서 무슨 정치를 할 수 있겠는가. 스스로 있는 쪽박도 깨고 나면 길바닥에 나 앉는 것은 시간 문제다. 이 답답한 현실을 돌파하지 못하면 더 큰 일은 아예 글렀다. 절박하지 않은 모양이다. 이렇게 하고서도 국민들의 관심과 표를 얻을 수 있다고 여기는가.

맹성이 촉구된다. 처음부터 무슨 완벽주의자인 양 다 정돈해 놓고 가자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세상에 그럴 수 있는 일은 없다. 다만 있는 조건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 시대에 넘을 수 있는 언덕을 넘는 것 정도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제대로 된 욕심을 부렸으면 좋겠다. 엉뚱한 욕심의 덫에 걸리지 말고.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