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사행성 게임장 업주 등과 통화한 사실을 자진신고하라는 경찰청장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이를 신고하지 않은 경찰관을 징계한 것이 진술거부권을 침해하므로 부당징계”라는 판결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 말하고자 하는 진술거부권이란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아니라, 자기에게는 유리하지만 동지에게 불리한 진술을 거부하는 상황에 관한 것이다. 또 그러한 진술거부를 했던 한 노동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최근 대법원이 견해를 일부 변경했지만, 법원은 여전히 “파업=범죄”라는 등식에서 벗어나 있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형사처벌의 위험 속에서 파업을 하게 된다. 단순히 파업만 한 것이 아니라 각종 물리적 충돌이 동반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수사의 대상에 오르며 진술을 강요받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법률적으로 보장돼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유리하지만 동지에게는 불리한 진술의 경우는 어떨까. 법률적으로 보면 파업 및 그에 수반된 각종 행위를 법원이 “범죄”라고 판단한 이상 위 행위를 같이 계획한 동지들은 법률적으로 “공범”에 해당한다. 그런데 다른 공범의 진술은 상당히 신빙성 높은 진술 증거의 지위를 점하게 되며, 증인으로서 공범에 대해 허위 진술을 하면 위증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또한 공범의 행위에 대해 알 것으로 충분히 추정되는 상황에서의 진술거부는 형량을 높이는 요소가 될 수 있고 구속영장 발부의 주요 고려사유가 된다.

즉 자신에게 유리하나 동지들에게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권리란 없는 것이고, 거부할 경우 불리한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렇다면 심리적으로는 어떨까. 여러 문학작품에서 자기에게는 유리하지만 동료에게는 불리한 진술을 하는 상황, 그 상황에서 갈등하고 괴로워하는 인물의 모습이 그려진다. 법률적으로 “공범”으로 분류된 “동지”에 대한 불리한 진술, 하지만 자신에게는 유리할 수 있는 진술을 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에 관한 고민은 그로 인한 결과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매우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법률원에서 일한 3년의 재직기간 동안 많은 구속노동자 사건을 담당했다. 대부분의 구속 사건들이 혼자 행하는 사건들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위와 같은 갈등상황이 발생한다. 이러한 갈등은 그(녀)가 노조의 주요간부이든 아니든 정도차이만 있을 뿐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특히 위 진술여하에 따라 실형 혹은 구속여부가 달라질 상황이라면 이러한 갈등은 그 사람의 영혼마저도 좀먹게 만든다.

자신에게 유리하지만 동지에게 불리한 진술로 배신을 했다는 생각이, 반대로 그 진술을 하지 않으면 출소를 기다리는 가족들 생각, 이후 닥쳐올 법률적 불이익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휘감을 것이다. 이러한 갈등상황에서 변호사는 각각의 경우 어떻게 되는지 조언을 해줄 수 있을 뿐이다. 어쨌든 그로 인한 이익과 불이익을 입을 당사자가 스스로 결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조언을 해주고 이를 옆에서 지켜보는 마음 또한 괴롭다.

2년 전 쌍용자동차 투쟁 당시 수많은 노동자들이 구속됐다. 쌍용자동차지부 조합원도 있고 금속조합원도 있고, 다른 노조 조합원, 일반시민까지 다양했다. 오늘 말하고자 하는 노동자는 일반 조합원인 노동자 C씨이다. C는 그 스스로가 문제된 행위의 직접행위자여서 구속되기도 했지만 공범으로 지목돼 구속된 다른 간부 L의 역할에 대한 진술 때문에 특히 집중적인 수사의 대상이 됐다.
 
그런데 L은 그 역할을 인정하면 실형 선고의 위험이 있는 상황이었고, C도 전과관계상 집행유예를 자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담당 변호사로서 괴로운 마음을 가지고 L과 C에게 상황을 얘기했다. 물론 2명 다 구속 중이어서 서로 직접 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여러 번의 접견 과정에서 많은 고민을 하던 C는 진술 거부를 하겠다고 했고, C는 자신의 종전 진술을 일부 번복해가면서까지 자신에게 유리하지만 L에게 불리한 진술을 끝까지 거부했다. 결과적으로 C와 L 모두 집행유예로 나오게 되었다. 당시 상황을 다시 생각하면, 파업 및 그에 수반된 행위를 “범죄”로 보는 법원, 그로 인해 “동지”가 "공범“이 돼버리는 상황, 자신이냐 동지냐를 선택해야하는 갈등적 상황이 C와 L 모두를 괴롭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의연하게 대처해준 C가 고맙고, 결과적으로도 C와 L 모두에게 큰 불이익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현재와 같은 기업위주의 사회가 지속되면 될수록, 동지가 공범이 되는 상황은 생길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유리하지만 동지에게 불리한 진술을 둘러싼 심적 갈등을 생각하면 다시 마음이 답답해지지만, 노동자들의 연대와 단결의 마음으로 구체적인 상황을 극복해나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접촉금지대상이었던 사행성 업자와 통화한 경찰의 진술거부권과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동지에게 불리한 진술을 거부한 노동자C의 진술거부권을 생각하면서, 씁쓸한 마음과 함께 당시 그 상황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며 연대와 단결이라는 선택을 해준 노동자 C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다시금 교차하는 순간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