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 조선부문의 영업이익률은 2009년과 지난해 각각 15.5%와 13.7%를 기록했다. 국내 빅3 조선소로 불리는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보다 높은 수준이다. 같은 기간 한진중 내 또 다른 한 축인 건설부문의 영업이익률은 각각 5.0%와 0.1%에 그쳤다. 이 같은 수치는 정리해고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진중 영도조선소가 높은 영업이익에도 불구하고 사업주의 경영실패와 조선을 제외한 나머지 사업부문의 부실화로 인해 희생양이 됐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은 한진중 정리해고 관련 5대 의혹을 제기하고, 18일 열리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청문회에서 의혹을 해소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5대 의혹은 △2007년 지주회사 전환과정에서 조 회장의 지분율 급등 △필리핀 수빅조선소 관련 조세 피난 의혹 △부당불법 정리해고 △수빅조선소의 부도덕한 노동탄압 및 산업재해 의혹 △조남호 회장의 도피성 행적 등이다.

청문회를 이틀 앞둔 16일 오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한진중공업 사태 해법 모색 토론회’에서는 경영실패로 인해 한진중 조선부문 노동자들이 희생양으로 전락한 과정에 대한 집중검토가 이뤄졌다. 이날 토론회는 학술단체협의회·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전국교수노조와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정동영 민주당 의원이 공동주최했다.



재벌총수 탈법적 경영권 획득, 한진중만 문제일까

한진중은 2000년대 초 필리핀 수빅만에 1조1천억원대의 초대형 해외투자를 추진했다. 하지만 숙련된 노동력과 설계력 등 인프라가 부족한 상태에서 수빅조선소는 저부가가치 선박을 수주하는 수준에 머물렀고, 매년 수백억원의 적자가 쌓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세계 조선시장의 붕괴는 수빅조선소의 경영부담을 가중시켰다. 이 시기 국내 조선업체들은 물량을 줄이거나(삼성중·대우조선) 신규투자를 축소해(현대중) 국내 조선부문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했다.

이때 한진중은 타 업체와는 다른 전략적 선택을 했다. 허민영 경성대 교수(경제학)는 “한진중은 수빅에 수주 물량 몰아주기를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대신 영도조선소의 구조조정을 감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무리한 해외투자가 금융위기를 만나 경영실패가 가시화했다는 주장이다.

당초 건설부문을 주력으로 삼았던 한진중은 89년 대한조선공사를 인수하면서 조선업에 뛰어들었다. 이때부터 조남호 회장의 지분이 확대되기 시작한다. 98년만 해도 0.2%에 불과했던 조 회장의 한진중 지분은 현재 50.1%로 급증했다. 이후 합병과 지분교환, 기업 분할과 유상증자 등이 진행됐다. 특히 2007년 한진중이 지주회사인 한진중공업홀딩스로 분할되는 과정에서 조 회장의 지분은 46.5%로 껑충 뛰어올랐다. 이는 기업 분할로 대주주가 받은 한진중 주식 약 800만주를 홀딩스 주식 약 1천200만주로 교환하면서 가능했다.

이처럼 조 회장이 야금야금 자기지분을 확대하는 사이 한진중은 점점 껍데기뿐인 회사로 변해 갔다. 자산 분할 과정에서 홀딩스는 현금을 상대적으로 많이 가져가고 부채는 적게 가져갔다. 반면 한진중은 현금은 적게, 부채는 많이 가져갔다. 허민영 교수는 “조 회장은 한진중의 부채구조를 악화시키는 방식을 반복적으로 행사해 왔다”며 “이 같은 탈법적인 경영권 획득 방식은 SK·농심 등 몇몇 재벌총수의 경영권 승계 과정과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한진중의 부실화 과정이 언제든 국내 재벌기업에서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조 회장은 탈세 의혹도 받고 있다. 한진중의 수빅조선소 투자 지분은 100%인데, 홍콩법인·사이프러스법인·덴마크법인 등 3개 해외법인을 거쳐 투자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들 지역 중 홍콩과 사이프러스는 탈세의 온상인 조세피난처로 알려져 있다. 한진중의 모그룹인 한진그룹은 99년에도 1조395억원 탈세가 적발돼 국세청으로부터 5천416억원의 추징금을 부과받은 바 있다. 당시 한진그룹의 탈세수법 중 하나가 조세회피지역인 아일랜드 더불린에 현지법인 KA사를 설립해 800억원 이상의 세금을 포탈한 것이었다.

'긴박한 경영상 이유' 경영자가 입증해야

이에 따라 한진중의 정리해고가 과연 불가피했는가 하는 의문이 계속되고 있다. ‘고액 배당 논란’이 이 같은 의문을 증폭시키고 있다. 한진중은 2009년 말 1차 정리해고를 추진하는 시점에서 약 119억원의 현금배당을 실시했고, 지난해 말 2차 정리해고를 실시하면서 170억원을 현금배당했다.

신원철 부산대 교수(사회학)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는 경영자가 단순히 효율적 기업경영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 그 요건이 충족되는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며 “고용안정이 노사가 추구해야할 최고의 가치라면, 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객관적 필요성의 존재를 경영자가 입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조선대기업의 해외진출 자체를 반대할 수는 없지만, 국내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고려한다면 그 속도와 규모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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