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정리해고 파업이 끝난 지 2년이 지났지만, 해고자들과 무급휴직자들의 고통이 계속되고 있다.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에 따른 쌍용차 노사의 출혈에도 불구하고, 정리해고의 행렬은 끝을 모르고 계속되고 있다. 부산의 한진중공업에서, 천안의 발레오공조코리아에서, 광주의 금호타이어에서 유사한 패턴의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 정치권이 정리해고 문제 해결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지만, 그 누구도 실효성 있는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쌍용차 정리해고 2년. <매일노동뉴스>가 그들의 얘기를 다시 들었다.

매달 25일 싸우는 부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 김세훈(41·가명)씨. 그는 매달 25일 아내와 싸운다. 25일은 쌍용차 월급날이다. 급여일에 카드값과 각종 공과금을 빠져 나가게 해 둔 것이 끝나지 않는 싸움의 근원이다. 해고된 뒤에도 25일이면 어김없이 통장에서 돈이 빠져 나간다. 그는 매번 아내에게 사정한다. “해고 3년이 되는 해까지만 기다려 보자. 회사가 좋아질지도 모르잖아.”

김씨는 지난 6월부터 공공근로를 나간다. 한 달 90만원 정도 받는다. 집에서 살림만 했던 아내도 회사에 다니기 시작했다. 둘이 번 돈을 합치면 190만원이다. 이 돈으로 자식 둘을 키운다. 큰애는 중학교 3학년, 작은애는 초등학교 5학년이다. 해고되기 전 그의 연봉은 5천만원 정도였다. 그때는 외식도 하고 놀러도 다니면서 사람 사는 것처럼 살았다. 꿈같은 얘기다.

새로 직장을 잡아 보려고 여러 차레 시도했지만 결과는 신통찮았다. 취직하기에 나이가 너무 많았다. 쌍용차에서 해고된 사람들에게 ‘낙오자’ 낙인을 찍는 분위기도 여전하다. “여태 취직 못했냐”는 친척들의 한마디는 그를 너무 힘들게 한다. 얼마 전 작은 회사에 들어갔다가 그만두고 나온 일도 있다. 월급도 형편없이 적은 데다, 새파랗게 어린 관리직들이 “쌍용차 출신이라며?” 라며 반말로 비꼬는 통에 참기 힘들었다고 했다.

지난 2년간 평택시로부터 지원받은 것은 1년에 한 번 애들 앞으로 나오는 장학금이 전부다. 중학생 자녀에게는 1년에 40만원, 고등학생 자녀에게는 1년에 60만원이 나온다. “먹고살 만할 땐 몰랐는데, 해고돼 보니 알겠더라고요. 우리나라 복지제도가 얼마나 후진지.”



허허벌판에서 보년 2년 무급휴직

정승진(38)는 쌍용차 무급휴직자다. 평택공장에만 300여명, 구로와 창원공장을 합쳐 450여명이 무급휴직자다. 엄연히 회사에 적을 둔 쌍용차 직원이다. 회사가 이들을 위해 해 주는 일은 4대 보험료 납부뿐이다. 2년이 되도록 복직 얘기가 없다. “당연히 1년만 쉬면 복직되는 줄 알았죠. 이렇게 천년만년 기다리는 거였으면 합의서에 서명을 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회사는 묵묵부답이고 정말 답답합니다.”

2009년 8월6일 쌍용차 노사는 최종 정리해고 대상자였던 노동자 974명 중 48%(468명)를 무급휴직 등의 방식으로 구제하고, 나머지 52%(506명)를 해고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르면 무급휴직 대상자 468명은 지난해 8월6일부터 업무에 복귀했어야 했다.

그런데 회사가 말을 바꿨다. 당시 합의문의 문구는 ‘무급휴직자에 대해서는 1년 경과 후 생산물량에 따라 순환근무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며, 실질적 방안으로 주간연속 2교대를 실시한다’였다. 이에 대해 회사측은 생산물량이 적어 무급휴직자들을 불러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회사측 관계자는 “생산물량에 따라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시행할 수 있을 때 무급휴직자들을 복귀시키기로 합의한 것”이라며 “물량 회복속도가 더뎌 무급휴직자들을 복귀시키더라도 재휴업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시급한 정리해고 해법 찾기

정씨는 회사측의 이러한 말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회사는 올해 기본급 7만1천원 인상에 합의했다”며 “그 돈이면 전체 무급자들 복직시켜도 남는 돈”이라고 주장했다. 회사가 무급자들을 복직시킬 의사가 없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무급휴직자들은 해고자 못지않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용관계가 유지되기 때문에 실업급여 수급대상에서 제외됐고, 퇴직금도 해당사항이 없었다. 금속노조가 지급하는 장기투쟁사업장 지원기금은 해고자만을 대상으로 한다. 사실상 아무런 지원 없이 2년을 버텨 온 셈이다. 정씨는 “무급휴직자들은 낮에는 막노동, 밤에는 대리운전으로 일당벌이를 하고 있다”며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쌍용차의 정리해고는 ‘한 번 밀려나면 다시는 진입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각인시켰다. 쌍용차 정리해고를 피한 ‘산 자’와 희망퇴직과 정리해고를 당한 ‘죽은 자’로 갈라지고, 이는 다시 1차 노동시장에 남은 정규직과 2차 노동시장으로 떨어진 비정규직으로 갈라진다. 해법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획실장은 “노사 간 힘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서, 언젠가부터 노동계의 주요 구호가 ‘약속을 지켜라’, ‘합의사항을 이행하라’가 됐다”며 “정리해고 문제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해법은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고통을 줄여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신준 동아대 교수(경제학)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강 교수는 “산업구조 변화에 따라 정리해고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선의 해법은 초기업 단위의 사회안전망을 확대하는 것”이라며 “정리해고 문제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은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정리해고는 한마디로 ‘너는 낙오자다’라는 무능의 낙인이다. 해고됐다는 이유로 불필요한 존재, 제거돼야 할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창근(38·사)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획실장의 말이다. 2009년 정리해고된 그는 2년째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다. 4일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이 실장은 “정리해고 문제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해법은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고통을 줄여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 쌍용차 정리해고 반대파업이 종료된 지 2년이 됐다. 당시 노사는 정리해고와 함께 무급휴직 도입에 합의했다. 무급휴직이 정리해고 문제에 대한 유력한 해법이 될 수 있나.
“무급휴직은 한마디로 ‘희망고문’이다. 아직까지 복직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당시 합의내용은 무급자들을 1년 뒤부터 순차적으로 복직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회사는 딴소리를 하고 있다. 약속을 지키라고 회사를 강제할 수단도 없다.”

- 노사 합의내용에 문제가 있었던 것인가.
“합의문구는 문제가 없다. 그보다는 회사측의 억지해석이 문제다. 그때 나온 신문기사들을 보라. 1년 뒤 복직이 핵심이었다. 회사가 '생산물량' 운운하며 합의를 뒤집었을 뿐이다.”

- 한진중 정리해고 사태와 관련해 노사교섭이 재개되면 쌍용차의 무급휴직 모델이 대안 중 하나로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쌍용차는 결코 모델이 될 수 없다. 2009년 파업기간에 5명, 파업 이후 10명이 죽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무급휴직은 자본의 폐해를 가리는 방식에 불과하다. 정리해고가 워낙 무분별하게 이뤄지다 보니 기준과 원칙이 사라졌다. 정리해고를 보는 사회적 합리성도 결여됐다. 얼마 전 한 일간지에 전문가 인터뷰가 실렸는데, 한진중 정리해고 규모를 합리적으로 다시 따져 보자는 주장이 실렸다. 한숨이 나온다. 정리해고 문제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해법은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고통을 줄여 주는 것이다. 정리해고는 철회돼야 마땅하다.”

- 대부분의 정리해고 사업장에서 어떤 형태로든 노사합의가 도출된다. 합의 이행을 강제할 수단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인 것 같다.
“노사 간 힘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서 나온 합의서는 그 자체로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내용이다. 그런데 그마저도 안 지켜진다. 언젠가부터 노동계의 주요 구호가 ‘약속을 지켜라’, ‘합의사항을 이행하라’가 됐다. 자본은 자신감이 넘친다. 노동자가 죽든 말든, 국회의원들이 압력을 가하든 말든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 재벌이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것이 시민, 곧 소비자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진행되는 ‘희망버스’에 자본은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 한진중 문제와 관련해 정치권이 열을 올리고 있다. 제도권에서 해결할 지점은 뭔가.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경영상 해고’ 요건은 엄격하게 준수돼야 한다. 사실 그것도 부족하다. 현실에서는 곳간에 사내 유보금을 쌓아 둔 재벌들이 정리해고를 한다고 해도 막을 도리가 없다. 재벌들의 경영상태에 대한 면밀한 감시가 이뤄져야 한다.”

- 정리해고를 당해 본 당사자의 입장에서 말해 달라. 정리해고는 무엇인가.
“관계의 파괴다. 완전한 고립이다. 해고자는 투명인간이 된다. 사회적 존재감이 없어진다는 뜻이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구매력의 상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리해고는 한마디로 ‘너는 낙오자다’라는 무능의 낙인이다. 해고됐다는 이유로 이 사회에서 불필요한 존재, 제거돼야 할 대상이 되는 것이다. 쌍용차만 해도 정리해고자와 무급휴직자들이 대단히 힘들어한다. 체념하고 좌절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희미해졌다.”
 
“무능력자가 된 개별 사업주에게 ‘해고하지 말라’고 애원해 봤자 소용 없다. 정리해고 문제의 해결사는 정부가 돼야 한다.”
강신준(57·사진) 동아대 교수(경제학)의 말이다. 정리해고 문제가 꼬리를 잇고 있지만, 그 누구도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생계의 벼랑에 놓인 노동자들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4일 강 교수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정리해고 문제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 정리해고 문제를 대하는 이명박 정부의 일관된 입장은 “노사가 알아서 해결하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본은 노동자를 쉽게 자르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부의 원천인 돈을 벌어 주기 때문이다. 어느 산업이든 주력인력인 정규직을 쉽게 포기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해고를 한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쌍용차의 경우 자동차산업 내 경쟁력에서 뒤떨어진 측면이 있다. 한진중의 경우 필리핀 수빅만에 조선소를 건립하기 시작하면서 정리해고는 예견됐다. 산업 환경의 변화가 대규모 정리해고를 촉발하고 있는 것이다. 개별 사업장 노사가 정리해고 문제를 돌파할 수 없는 이유다.”

- 정부의 중재 역할이 중요하다는 말인가.
“경영사정이 나아질 여지가 없을 때 정리해고가 단행된다. 자본가가 무능력자가 됐을 때다. 능력이 없는 사람한테 해결하라고 해 봤자 무슨 수용이 있나. 정리해고 문제의 해법은 이미 나와 있다. 초기업 단위의 사회안전망을 확대하는 것이다. 해고자들에게 기본급 정도의 급여를 지급하면서 직업훈련을 시키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해고자들의 숙련도가 저하되는 것을 막고, 전직을 유도할 수도 있다. 소요되는 비용은 정부와 지자체·회사가 나눠서 부담하고, 산별노조가 노동자들을 관리할 수도 있다. 이는 86년 독일 함부르크 지역에서 발생한 조선소 정리해고 때 사용된 방식이기도 하다.”
- 정리해고는 불가피한가.
“세계의 공장이 중국으로 동남아로 옮겨 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지금 잘나가고 있는 산업들도 곧 침체기에 들어설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리해고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에 대비한 연착륙 방안이 필요하다. 산업구조 변화는 고용구조 변화를 동반한다. 산별노조의 참여가 보장되는 업종별 논의기구가 필요하다.”
-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노동계의 요구가 계속되고 있는데.
“사업장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노동계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결국 사업주에게 매달리는 꼴이 됐다. 심하게 말하면, 한진중의 경우 조남호 회장에게 구걸하고 있는 모양새 아닌가. 제발 자르지 말아 달라고…. 이런 식은 너무 비참하다. 노동계도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IMF 이후 정리해고가 계속됐는데 그동안 노조는 무엇을 했나.”
-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진중은 정리해고를 유보하고, 무급휴직이나 직업훈련을 실시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쌍용차의 사례를 보면, 무급휴직자들은 정리해고자들보다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 나의 의견은 해고 대상자들에게 유급휴가를 주되 그 기간 동안 직업훈련을 실시하자는 것이다. 깊어질 대로 깊어진 사용자와 해고자 간 갈등을 조정하는 데 무급휴직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급휴직은 해법이 될 수 없다.”

 

누가 이들을 ‘와락’ 껴안을 것인가
“자살충동을 느낀다. 꿈속에서도 자살을 반복한다. 낮에도 그렇다.”(정리해고자 A씨)
“넥타이로 목을 매려는 부인을 발견해 겨우 막았다.”(정리해고자 B씨)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려는 남편을 말린 적이 있다.”(정리해고자 부인 C씨)
2009년 대규모 정리해고를 경험한 쌍용차 정리해고자와 그 가족들이 심리적 취약상태에 놓여 있다. 쌍용차 해고자들의 자살률은 일반인 자살률의 3.74배에 달한다. 외상후 스트레스장해 유병률도 52.3%나 된다.
대인관계에 따른 문제도 심각하다. 이른바 ‘산 자’(정리해고 미대상자)에 대한 배신감으로 파업이 종료된 지 2년이 된 지금까지 외출을 꺼리는 해고자들이가 적지 않다.
심리적 면역력이 약한 해고자 자녀들이 받은 충격은 더욱 크다. 특히 파업현장에서 목격한 경비용역과 경찰의 폭력에 대한 공포가 이들의 내면에 뿌리박혀 있다. 생계난에 대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가족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해고자도 있다.
이들에 대한 심리치료를 해 온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는 “이들의 우울증세는 인간 한계로 통제가 불가능한 압도적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며 “자살충동과 내면의 분노·공격성 등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면서 대인관계가 파괴되고, 일상생활이 무척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쌍용차 해고자 중 이혼을 하거나 별거 중인 사람이 적지 않고, 약물이나 알콜에 의존해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자기 파괴적인 상황에 처한 쌍용차 해고자와 무급휴직자, 그들의 가족들을 위한 심리치유센터 ‘와락’ 설립이 추진되고 있어 주목된다. 현재 평택에 사무실을 구하는 중이고, 상근인력과 치유프로그램을 완비해 오는 12월 정식으로 개원할 예정이다. 와락 운영을 위한 자금모금도 진행되고 있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 속에 1개월여 만에 약 2천만원의 기금과 물품이 쌓였다. 와락은 ‘편안하게 누워서 즐기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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