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군사정권이 지난 63년 복수노조를 금지한 지 반세기 만인 이달 1일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에 복수노조가 허용됐다. 노동계는 단결권 보장 차원에서 복수노조를 요구해 왔다. 하지만 우려가 적지 않다. 복수노조 허용과 함께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위헌소송이 제기됐고, 제도 자체가 복잡하다는 불만도 나온다. <매일노동뉴스>가 8회에 걸쳐 복수노조 제도의 모든 것을 해부한다.

[게재순서] 1. 복수노조 시대, 약일까 독일까 2. 기득권 인정하고 소수노조 권리 제한 3. 과반수 확보경쟁 불붙어 4. 정규직·비정규직, 사무직·영업직 분화 5. 부실한 법적기준, 부실한 노사관계로 6. 파업 어려워지고, 부당노동행위 쉬워지고 7. '헤쳐 모여', 양대 노총 구도 재편되나 8. 노조법 개정 논란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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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상반기에 한 대기업이 주최한 ‘복수노조 시대-기업의 대응과 준비’라는 제목의 정책특강에 김영배 경총 부회장이 연사로 나섰다. 지난해 1월 노동조합 및 노동조합법(노조법)이 개정되기 전이었는데, 2009년 12월31일 유예기간이 만료되는 경우를 상정한 특강이었다. 특강에서 강조된 원칙은 교섭창구 단일화였다. 물론 “전임자임금을 금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복수노조를 시행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도 들어갔다.

김영배 부회장의 말을 들어보자.
“지금 현재 기업들이 노동조합으로부터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는 것이다. 복수노조 허용을 통해 많은 노동조합이 생기게 되면 노조마다 기업에 많은 요구를 할 것이다. 전임자에 대한 요구, 사무실에 대한 요구 등 이와 같은 여러 요구 중에서도 제일 먼저 단체교섭을 요구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섭창구 단일화가 매우 중요한 부분이며, 이 부분에 대해 적어도 (2009년) 5월까지는 정부에서 초안이 만들어질 것이다.”

당시까지 노사정의 이견은 분명했다. 재계는 과반수를 보유한 노조가 있을 경우 그 노조를 대표로 창구를 일원화하고, 과반수 노조가 없으면 다수 노조와 협상하도록 하자고 주장했다. 노동계는 창구를 단일화하든, 하지 않든 간에 노사의 자율에 맡기자고 했다.

복수노조, 사측 감싸기?

고용노동부의 생각도 재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동부는 “복수노조 난립에 따른 교섭상의 혼란과 갈등, 중복교섭에 따르는 근로조건의 차이를 예방하기 위해 교섭창구 단일화가 필요하다”고 밝혀 왔다. 그러나 근저에는 노사관계 비용분석이 깔려 있었다. 노동부의 연구용역 보고서인 ‘복수노조 허용과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이 노사관계·기업경영에 미치는 영향 및 경제적 효과 분석’(조준모 성균관대 교수 등)에 따르면 자율교섭과 창구단일화 사이에는 다가설 수 없는 ‘노사관계 비용’ 격차가 발생한다.

과반수대표제·비례대표제·개별교섭제에 따라 노사관리 비용과 단체교섭 비용, 쟁의행위 비용을 분석한 이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과반수대표제를 채택했을 때 비용이 가장 저렴했다. 과반수대표제와 비교했을 때 비례대표제는 22.9%, 개별교섭제는 41.3%의 단체교섭비용이 증가한다는 식이다. 쟁의비용은 비례대표제가 과반수대표제 보다 3.3%(154억원), 개별교섭제가 과반수대표제보다 6.6%(261억원)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연구팀은 보고서에서 만약 개별교섭제를 도입했다가 순차적으로 파업이라도 하는 날에는 쟁의행위 비용이 과반수대표제보다 최대 113.4%(4천504억원)까지 증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비용격차는 보수학계와 재계·정부가 개별교섭제를 얼마나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지를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

단결권, 노동계 제 살 깎기?

이달 1일 복수노조가 전면 허용된 뒤 2주일 만에 기존노조가 있던 사업장에서 208개의 노조가 새로 생겼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소속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 설립된 신규노조가 166개나 됐다. 분리를 감행한 노조는 대부분 상급단체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미가맹 노조가 186개, 상급단체를 선택한 노조가 22개였다.

이를 두고 이채필 노동부장관은 “우려와 달리 소수노조의 난립이나 주요 대기업에서의 강성노조 출현은 아직까지 잘 보이지 않는다”며 “복수노조 허용으로 양대 노총 독점구도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새 노총이 상당한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하다”는 노골적인 발언도 했다.

하지만 그의 발언은 사실과 달랐다. 신규노조의 53.8%(112곳)는 해당 사업장 노동자의 10%에도 못 미치는 노조였다. 과반수를 차지한 노조는 26곳에 불과했다.
사실과 동떨어진 이 장관의 발언에서 확인되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 방향이다. 이른바 '노동계 선진화'에 대한 정부의 바람은 '양대 노총 독점구도 타파'로 요약된다. 그런 측면에서 설립신고 노조가 매일 줄어들고, 무노조 사업장에서 노조설립이 극히 드물다는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신규 조직화보다는 기존 노동계의 '땅따먹기' 경향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부작용 속출, 현장 ‘부글부글’

노사관계 비용을 줄이려고 일부 노조의 교섭권과 쟁의권을 박탈한 부작용은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사용자는 노조법의 허점을 분명하게 꿰뚫어 보고 있고, 정부는 이를 돕고 있다. 삼성에버랜드가 대표적인 사례다. 회사는 사실상 회사 노조(Company Union)를 설립해 교섭대표권을 선점했다. 지난달 설립된 삼성에버랜드노조는 이미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선점했다. 노조법은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2년간 인정하고 있다. 삼성에버랜드 사측은 적어도 2년간 안정적인 교섭라인을 확보했고, 그만큼 '노조 리스크'를 제거한 셈이다.

이달 들어 민주노총에서 삼성에버랜드에 삼성노조(조합원 4명)라는 초기업노조를 설립했지만 현재 존립에 위협을 받고 있는 형편이다. 교섭대표권을 확보하지 못한 삼성노조가 에버랜드측과 교섭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노조법의 허점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인천의 경진운수노조는 회사와 올해 4월부터 교섭을 진행했다. 그런데 회사측은 줄기차게 교섭을 회피하더니 이달 1일 복수노조가 허용되자마자 회사 주도의 새 노조를 만들었다. 이어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했고, 기존노조에 창구단일화 절차를 밟으라고 요구했다. 교섭기간 동안 조합원의 탈퇴가 잇따르면서 노조는 흔들릴 대로 흔들려 버렸다.

정부도 이러한 사용자측의 행태를 거들고 나섰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 14일 금융노조의 쟁의조정 신청에 대해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밟지 않아 교섭대표노동조합으로서의 지위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쟁의조정 신청 대상이 아니다”며 행정지도 처분을 내렸다. 금융노조는 이채필 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며 반발했다. 충북의 한 사업장은 지방노동위원회가 조정만료일인 7월1일 조정안 대신 행정지도 처분을 내려 빈축을 사기도 했다. 역시 창구단일화 절차를 다시 밟으라는 내용이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노조법 개정 요구

상황이 이러니 노조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노동계의 목소리가 높을 수밖에 없다. 현행 복수노조 제도가 단결권을 허용한 반면 교섭권과 쟁의권을 제약하고 있는 데다, 사용자에 지나치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야4당과 여당이 이미 노조법 개정안을 제출한 상태다. 따라서 노조법 개정논란의 불씨는 언제라도 살아오를 수 있다. 여당 일각에서도 노조법 개정에 공감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와 국제노동기구(ILO)의 최종 판단도 남아 있다. 한국노총은 "노조법의 창구단일화 강제조항이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위헌심판을 청구했다. ILO는 오는 11월 창구단일화 제도가 핵심협약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노조법 개정이 선거이슈로 떠오를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Q&A] 복수노조 설립일, 언제로 볼까
Q. 복수노조 설립시점은 설립신고서 제출일을 기준으로 합니까. 아니면 설립총회 개최일을 기준으로 합니까.


A. 노조법은 제12조(신고증의 교부) 제4항에서 "노조가 신고증을 교부받은 경우에는 설립신고서가 접수된 때에 설립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노조법에 따른 설립일은 설립신고일로 봐야 합니다. 설립신고일이 아니라 노조로서 실질적 요건을 갖추는 설립총회일로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노조설립에서 신고주의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초기업 단위노조에 가입하는 경우 언제부터 제2 노조가 설립된 것인지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현행 노조법은 ‘근로자가 설립하거나 가입한 노조가 2개 이상인 경우’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1명 이상의 근로자가 초기업 단위노조에 가입한 시점에 제2 노조가 설립된 것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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