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군사정권이 지난 63년 복수노조를 금지한 지 반세기 만인 이달 1일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에 복수노조가 허용됐다. 노동계는 단결권 보장 차원에서 복수노조를 요구해 왔다. 하지만 우려가 적지 않다. 복수노조 허용과 함께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위헌소송이 제기됐고, 제도 자체가 복잡하다는 불만도 나온다. <매일노동뉴스>가 8회에 걸쳐 복수노조 제도의 모든 것을 해부한다.

[게재순서] 1. 복수노조 시대, 약일까 독일까 2. 기득권 인정하고 소수노조 권리 제한 3. 과반수 확보경쟁 불붙어 4. 정규직·비정규직, 사무직·영업직 분화 5. 부실한 법적기준, 부실한 노사관계로 6. 파업 어려워지고, 부당노동행위 쉬워지고 7. '헤쳐 모여', 양대 노총 구도 재편되나 8. 노조법 개정 논란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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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급단체를 한국노총으로 변경하면 7월1일 복수노조가 시행되더라도 사무·관리직 노조를 만들지 않겠다.”
지난 4월11일 경남 창원 소재 자동차부품업체인 (주)센트랄의 한아무개 부회장은 사내에 이 같은 내용의 ‘확약서’를 붙였다. 고용보장과 노조 와해행위 중단을 약속할 테니 민주노총 금속노조를 탈퇴하라는 주문이었다.
확약서가 붙은 다음날 금속노조 센트랄지회 소속 일부 조합원들은 유인물을 내고 “새로 부임한 한○○ 부회장님께서 창원공장 살리기 계획을 발표했다”며 “전체 조합원의 미래가 걸린 이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기 위해 임시총회를 열자”고 주장했다. 조합원 총회를 열어 상급단체 변경 여부를 결정하자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총회가 열렸고, 민주노총 탈퇴 안건이 다뤄졌다. 투표 참석 조합원 73.6%의 반대로 안건은 부결됐다.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창원지청은 회사측에 대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 혐의를 인정했다.
확약서 논란이 있고 석 달이 흐른 현재. 센트랄에는 2개의 노조가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밟고 있다. 민주노총 탈퇴를 주도하다 금속노조 센트랄지회에서 제명된 조합원들이 주축이 돼 신규노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새 노조인 ‘센트랄노동조합’은 이달 8일 설립신고를 하고 11일 설립신고증을 받았다. 새 노조는 한국노총에 가입했다.
지회 조합원은 234명이고, 신규노조 조합원은 12명이다. 이민귀 센트랄지회장은 “회사 주도로 노조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회사가 지회를 약화시키겠다는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라며 “당장은 지회가 교섭권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없지만, 앞으로 지회 조합원들을 상대로 한 회사측의 회유와 협박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양대 노총 조직경쟁, 누가 조장하나

센트랄의 사례는 기존 민주노총 사업장에서 노조가 분화한 경우다. 복수노조 시행 열흘 만인 이달 11일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은 정부과천청사에서 기자브리핑을 열고 이렇게 말했다.
“복수노조 허용 이후 민주노총 사업장에서 분화된 노조가 많고 상급단체를 선택하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 점차 정치투쟁에서 현장근로자 중심의 합리적 노동운동으로 변화 조짐이 보이고, 노사관계 지형 변화가 예상된다.”

이 장관은 제3 노총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지난 4일 새 노총이 실체적으로 발족했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기존의 양대 노총과는 다른 접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상당한 기대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의 이러한 발언은 노동계의 반발을 샀다. 민주노총은 “노동부가 현장의 혼란을 왜곡하고 성과를 부풀려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한국노총도 “복수노조·창구단일화 강제가 결국 노동계를 분열시키고 친정부적인 새 노총을 만들기 위한 것임을 스스로 실토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복수노조가 시행되고 신규노조가 등장하자 노동계는 신규노조 설립을 배후조종한 세력이 누구냐에 관심을 쏟고 있다. 상급단체가 어디냐는 그 다음 문제다. 상급단체 어디든 간에, 회사 지원을 받는 노조의 설립은 필연적으로 노조 간 조직경쟁과 갈등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양대 노총의 ‘페어플레이 선언’으로 나타나고 있다. 노동계 내부의 이른바 ‘땅따먹기’를 최소화해 혼란을 줄여 보자는 취지다. 민주노총 울산본부와 한국노총 울산본부는 13일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복수노조 시대를 맞아 소모적인 조직경쟁을 자제하고, 무노조 사업장 노조설립이나 비정규직 조직화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노조설립 봇물 터진 운수업계, 이합집산 늘 듯

노동부 집계에 따르면 이달 11일 현재 167개 노조가 설립신고를 했다. 이 중 82%(137곳)는 양대 노총에서 분화했다. 한국노총 사업장이 65곳, 민주노총 사업장이 64곳이다. 신규노조의 규모는 작은 편이다. 46.1%(77곳)는 조합원 10명 미만 소수노조이고, 조합원이 100명 이상이라고 신고한 노조는 4.2%(7곳)에 불과했다.

이러한 수치는 작은 규모의 노조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지만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버스·택시 같은 운수업종이 대표적이다. 복수노조 시행 첫날인 1일 하루에만 44개의 운수업종 신규노조가 설립신고를 했다.

‘한 지붕 두 가족’을 넘어 ‘한 지붕 세 가족’을 이룬 다수노조 사업장까지 등장하고 있다. 경북 경주 소재 버스업체인 천년미소에는 이달 들어 2개의 신규노조가 만들어졌다. 기존 민주노총 소속 민주버스본부 천년미소지회를 포함해 3개의 노조가 경합을 벌이는 중이다. 민주노총 소속 기존 노조의 조합원은 113명, 상급단체가 없는 천년미소노조의 조합원은 104명, 마찬가지로 상급단체가 없는 경주시내버스노조의 조합원이 29명이다. 신규노조 2곳이 손을 잡을 경우 기존 민주노총 노조의 교섭권이 흔들릴 수 있다. 노조 사이에 다양한 형태의 이합집산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인수합병보다 복잡한 노사교섭

기업의 인수합병이 노사교섭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경남 창원의 중장비용 유압기기 생산업체인 옛 동명모트롤은 2008년 두산그룹에 인수됐고, 얼마 뒤 (주)두산으로 합병됐다. (주)두산에는 모트롤BG(Business Group)와 전자BG·글로넷BG, 정보통신BU(Business Unit) 등 4개 사업부문이 운영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사업을 운영하는 기업의 경우 각 사업부문 간 노조설립이나 교섭권 확보를 둘러싼 복잡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두산에는 모트롤BG와 전자BG에 기존 노조가 있다. 두 노조는 사업내용이 다르고 사업장도 분리돼 있어 교섭창구 단일화 대상이 아니다. 문제는 신규노조가 설립된 모트롤BG다. 회사측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신규노조(두산모트롤노조)는 기존노조인 금속노조 두산모트롤지회보다 조합원수가 많다. 게다가 기존노조는 3년째 임금·단체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다. ‘2010년 1월1일 이전부터 교섭을 해 온 노조에게 교섭대표노조의 지위가 부여된다’는 고용노동부의 해석에 따라 지금은 기존노조가 교섭권을 갖고 있지만 전세가 역전될 날도 머지않았다.

노조 합병시 재산권과 단체협약 적용의 문제
Q. 두 개의 노조가 합병했는데요. 재산권 승계와 단체협약 적용 문제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A. 노조와 노조가 합병할 때는 재산권과 단체협약은 권리의무가 존속하는 노조 쪽에 포괄적으로 승계됩니다. 단협과 같은 권리의무 관계가 포괄적으로 승계되는 근거는 합병 전후 노조의 실질적인 동일성이 인정되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합병에도 불구하고 권리관계가 포괄적으로 승계되지 않는다면 노조는 합병이 아닌 노조 해산과 개별 조합원들의 다른 노조 가입이라는 매우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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