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금융산업노조가 지난 6일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을 신청했다. 금융노조가 교섭석상에서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와 대면한 것은 상견례 자리였던 5월12일 단 한 번이었다. 이후 교섭에는 금융노조만 참석했다.
 
사용자협의회는 5월에는 “새 교섭위원 임기가 6월에 시작하니 그 뒤에 교섭을 하자”고 했고, 이후에는 “노조가 일방적으로 교섭위원의 일정을 고려하지 않고 교섭날짜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이달 1일 교섭결렬을 선언했다. 회피했든,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든 간에 금융산별의 교섭결렬은 되돌릴 수 없는 사실이 됐다. 2000년부터 11년째인 데다, 지난해에는 사용자단체인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가 설립등기를 했을 정도로 자리를 잡아 가던 산별교섭이 삐걱거리고 있는 것이다.

쟁의조정 신청을 받은 중노위는 어떤 입장일까. 중노위의 조정회의는 14일 열린다. 상황은 노조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중노위 관계자는 “조정회의에서 노사의 의견을 들어볼 것”이라면서도 “조정은 노사 쌍방 간 이견을 좁히기 위한 것인데, 단 한 차례 교섭으로 이견이 있다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치지 않아 절차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산별파업·산별교섭 어려워져

금융노조가 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치려면 중앙교섭에 참여하고 있는 34개 사업장에서 교섭대표권을 확보해야 한다. 사용자가 교섭요구 사실과 참여노조 확정 공고, 자율적 단일화 과정 등 법적으로 규정된 절차만 한 달 넘게 걸린다. 사업장에서 과반수 노조 자리를 두고 다툼이 있다면 복잡한 상황이 연출된다. 금융노조는 중앙교섭 참여단위가 34곳이지만 금속노조는 85곳이나 된다.

다시 금융노조의 교섭으로 돌아가 보자. 조정을 할 만큼의 금융 노사 간 이견이 있는지 여부는 중노위 조정위원들이 판단할 몫이다. 하지만 "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치지 않아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중노위의 주장은 되짚어 봐야 한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위반이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결국 중노위에서 조정회의를 해 봤자 조정중지 결정이 날 공산이 크다. 현행 노조법은 쟁의행위 전에 반드시 조정을 거치도록 한 조정전치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금융노조는 한 달 넘게 걸릴 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치거나, 그냥 불법으로 밀고 가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교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9월에 산별파업을 벌이겠다고 예고한 금융노조로서는 난감한 상황이다.

하던 파업도 "일단 중지"

그간 수차례 산별노조의 파업을 "쟁의행위 목적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불법"이라고 주장해 왔던 고용노동부는 덕분에 편해졌다. 노조의 쟁의행위가 목적에 부합한지 여부를 따질 필요도 없이 절차 위반만으로 불법파업을 얘기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금융노조는 “복수노조가 시행되기 전에 교섭을 했는데 왜 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쳐야 하느냐”고 항변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부의 창구단일화 관련 해석은 훨씬 강경하다. 하던 파업도 멈추게 할 정도다. 노동부는 쟁의행위 중인 사업장에서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가 허용된 이달 1일 이후 제2 노조가 생겼을 경우 단체교섭을 다시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파업 중이라도 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쳐야 하고,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획득한 뒤에 쟁의행위를 벌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200일 넘게 파업을 벌이고 있는 공공운수노조 전북고속지회에서 이런 일이 실제로 발생했다. 12일 전북고속은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가 성실교섭을 촉구하는 공문을 보내자 뜬금없이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참여하라고 회신했다. 복수노조 허용 전에 교섭을 벌였던 회사에서 창구단일화 절차를 이유로 교섭을 중단하는 사태가 빚어지는 현상과 같은 맥락이다.

파업하기 더 어려워져

단결권과 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설립된 노조가 교섭할 권한이 없다면 존재이유가 사라지는 것이고, 쟁의행위를 할 수 없는 노조는 교섭에서 힘을 쓰지 못한다. 그런데 노조법은 단결권을 허용하면서도 나머지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
노동부의 복수노조 매뉴얼에 따르면 단체교섭과 쟁의행위는 교섭대표노조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교섭을 해야 쟁의행위를 할 수 있다.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교섭에 참여할 길이 막혀 있는 소수노조들은 난감해한다. 창구단일화 절차에 참여하지 못한 노조도 파업을 할 수 없다.

교섭대표노조라고 해서 쟁의행위를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쟁의행위를 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절차는 더욱 복잡해졌다. 파업을 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쟁의행위 찬반투표부터 쉽지 않다. 노조법에는 조합원 과반수가 파업에 찬성해야 파업에 돌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단일노조라면 간단하겠지만 설립된 노조들이 모두 참여하는 복수노조 상황에서는 파업절차가 간단치 않다. 예컨대 기존 노조와 신규 노조가 대립관계에 있다면 투표 자체가 혼탁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파업을 하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어려워진다.

만약 교섭 도중 회사가 특정 노조에 유리한 안건을 제안한다면 더욱 그렇다. 교섭대표노조인 A노조에 불리하지만 B노조에 유리한 제안일 경우 B노조가 파업에 흔쾌히 동의할 리도, 동의했다 하더라도 최선을 다할 리 만무하다. 회사에서 노조 내부 분열을 노리고 이를 활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파업시 대체근로 투입 가능성도

노조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용자들의 숙원을 해결할 비책도 담겨 있다. 파업시 대체근로 투입 가능성이다. 노조법은 "쟁의행위 기간중 그 쟁의행위로 중단된 업무의 수행을 위하여 당해 사업과 관계없는 자를 채용 또는 대체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한국경총·대한상공회의소 등 사용자 단체들은 대체근로 불허를 기업규제의 대표적인 사례로 지목하며 노조법에서 이 조항을 개정하라고 요구해 왔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을 듯하다. 노조법은 교섭단위가 분리됐을 경우 교섭단위별로 쟁의행위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A사업장의 비정규직노조가 노동위원회에 교섭단위 분리를 신청해 이를 승인받았다면 비정규직노조는 사용자와 별도의 교섭과 쟁의행위를 할 수 있다. 즉 정규직이 파업을 하고 있더라도 비정규직은 파업을 하지 않는 상황이 생긴다. 사용자가 비정규직을 대체인력으로 투입할 수 있게 된다. 사용자들에게는 기회이지만 반대로 노조에게는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는 일’이다. 회사노조 설립가능성이 높아지고, 교섭단위 분리제도를 활용할 수도 있는 데다, 대체근로 가능성까지 감안하면 사용자들의 선택의 폭이 넓어졌고, 노조 운신의 폭은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부당노동행위 우려도 커졌다.

창구단일화 후 단체교섭 결렬과 쟁의행위
 Q. 교섭창구를 단일화한 뒤 사용자와 단체교섭을 벌였는데 끝내 결렬됐습니다. 각 노조가 쟁의행위를 준비하고 있는데요. 쟁의행위를 의결하려면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합니까.


A. 노조법상 쟁의행위 찬반투표는 교섭창구 단일화에 참여한 전체 조합원의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해야 합니다. 전체 직원이 500명인 회사에서 A노조가 300명, B노조가 100명을 조직하고 있다면 전체 조합원 400명의 과반인 201명의 찬성을 얻어야 쟁의행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섭을 벌이던 중 조합원 20명인 C노조가 생겼다면, C노조는 창구단일화에는 불참했지만 쟁의행위에는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전체 조합원은 420명이 되고, 전체 조합원의 과반수인 211명이 찬성해야 쟁의행위가 가능합니다. 쟁의행위 찬반투표는 직접·비밀·무기명으로 해야 하고, 찬반투표가 끝나면 투표자명부·투표용지를 상당기간 보존해야 합니다. 분쟁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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