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매일노동뉴스>가 확인한 결과 지난달 20일 삼성에버랜드에 기업별노조가 신설된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에 설립됐던 삼성화재해상보험노조는 최근 조직대상 범위를 본점 직원에서 전국지점 직원으로 확대했다. 이달 1일 복수노조 시행을 계기로 ‘무노조 삼성’도 옛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신규로 설립된 삼성에버랜드노조는 이변이 없는 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밟아 교섭대표노조의 지위를 획득할 것으로 보인다. 조직대상을 확대한 삼성화재해상보험노조 역시 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쳐 본점과 전국지점에 대한 교섭권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이 이른바 회사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회사 노조’(Company Union)를 통해 교섭권 선점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삼성의 비조합주의=“삼성재벌의 노사 철학은 ‘노조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경영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삼성종합연수원이 지난 87년 10월 발간한 ‘노사관리’에 등장하는 대목이다. 삼성그룹은 80년대부터 ‘종업원주의’·‘비조합주의’를 표방해 왔다.

삼성인력개발원이 펴낸 ‘노사관계의 기본원리’를 보면 무노조 경영에 대한 삼성의 시각을 읽을 수 있다. 무노조를 통해 △산업민주화 전개에 있어서 노조의 횡포를 막을 수 있고 △노사분규나 산업분규로 인한 노동손실과 산업불안을 제거하고 산업평화를 유지하는 데 비조합주의가 유리하고 △노조의 병폐와 역기능을 견제할 수 있고 △노사공존경영을 위한 노사공동체 형성과 인간성 회복에 비조합주의가 유리하고 △노조 내 권력다툼 등 노사분규로 인한 불안이나 외부세력의 개입으로 인한 종업원 권익박탈을 견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의 이 같은 경영방침은 노조설립을 시도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인권탄압 논란을 동반했다. 노동자 납치·회유 사건이나 휴대폰 불법도청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은 “삼성은 이미 98년부터 휴대폰을 이용해 노동자들의 위치를 추적하는 등 노조설립을 철저하게 막았다”며 “이러한 무노조 방침이 삼성전자 백혈병 노동자들과 같은 무고한 피해자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삼성 기존노조 9곳, 조직규모는 열악=삼성에 노조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삼성그룹 산하 78개 계열사 가운데 삼성생명·삼성증권·삼성화재해상보험·삼성정밀화학·삼성메디슨·삼성카드·삼성중공업·호텔신라·에스원 등 9곳에 노조가 설립돼 활동하고 있다.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과정에서 이미 설립된 노조(삼성생명·삼성정밀화학·삼성증권·삼성카드)가 그대로 유지된 경우도 있다.

회사측 주도로 설립된 이른바 페이퍼 노조(유령노조)가 새로운 노조의 등장을 견제해 온 것도 사실이다. 고용노동부의 2009년 노조조직현황에 따르면 호텔신라노조의 조합원은 2명, 삼성중공업노조는 37명, 삼성에스원노조는 3명, 삼성화재노조는 11명에 불과하다. 노동계는 이들 노조에 대해 “대표적인 유령노조”라고 비난해 왔다.

◇삼성, 노무관리 전략 바뀌나=삼성은 지난 2월 국제노동기구(ILO)에 ‘노조가 아닌 근로자 대표제’의 요건에 대해 공식질의한 바 있다. 복수노조 시행에 앞서 일종의 출구전략을 모색한 것이다. 노조가 아닌 임의적 노동자단체를 노조 대체기구로 활용할 수 있느냐 여부가 질의의 핵심이다.

이런 가운데 나온 삼성에버랜드노조 설립 소식은 삼성의 노무관리 전략의 변화를 예감케 한다. 무노조 방침이 실효성을 상실한 상황에서 삼성의 측면지원을 받는 노조가 설립되고, 이렇게 설립된 노조가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획득할 경우 최소 2년간은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아직까지 노동계 주도로 삼성계열사에 노조가 설립됐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는 점도 이러한 예상에 무게를 싣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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