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군사정권이 지난 63년 복수노조를 금지한 지 반세기 만인 이달 1일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에 복수노조가 허용됐다. 노동계는 단결권 보장 차원에서 복수노조를 요구해 왔다. 하지만 우려가 적지 않다. 복수노조 허용과 함께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위헌소송이 제기됐고, 제도 자체가 복잡하다는 불만도 나온다. <매일노동뉴스>가 8회에 걸쳐 복수노조 제도의 모든 것을 해부한다.

[게재순서] 1. 복수노조 시대, 약일까 독일까 2. 기득권 인정하고 소수노조 권리 제한 3. 과반수 확보경쟁 불붙어 4. 정규직·비정규직, 사무직·영업직 분화 5. 부실한 법적기준, 부실한 노사관계로 6. 파업 어려워지고, 부당노동행위 쉬워지고 7. '헤쳐 모여', 양대 노총 구도 재편되나 8. 노조법 개정 논란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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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에서 떨어져 나와 새 노조 설립한 사업장 이름 좀 알 수 있을까요?”
“택시업종에서 노조를 만든 데가 어디죠?”
복수노조 허용 첫날인 지난 1일 76개 노조가 설립신고를 했다. 기업별노조에서 산별노조로 개별가입한 조합원들은 파악조차 되지 않기 때문에 실제 복수노조에 따른 파장은 예상보다 클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들은 복수노조 신고현황이 발표되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노동계도 놀란 표정이다. 노사 모두 노조가 설립된 사업장과 조합원수를 확인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반면에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복수노조 첫날 효과'라며 "괜한 호들갑"이라고 일축하는 분위기가 존재한다. 이들은 “신규노조 가운데 2년 후에도 살아남을 조직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반문한다.

복수노조 시행 첫 주에 모든 것이 결정된다

4일 노동부에 따르면 1일 설립된 신규노조의 경우 10곳 중 8곳은 조합원이 10명 미만이었다. 기존노조의 조합원수가 각각 1만8천여명, 1만5천여명을 헤아리는 KB국민은행과 농협에 만들어진 신규노조는 신고된 조합원수가 단 2명이었다.

직원수가 3천여명이 넘는 대우증권에서 새로 설립한 노조의 조합원수도 6명에 불과하다. 조합원수가 2천100명인 기존 대우증권노조는 1일 회사에 임금교섭 요구 공문을 보냈고, 회사는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따라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했다. 대우증권노조가 교섭을 요구했으니 교섭의사가 있는 노조는 8일까지 참여하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1일 설립신고한 대우증권지점노조(위원장 손화성)는 지난 사흘간(1~3일) 교섭에 참여할 수 없었다. 손화성 위원장은 “노조설립 신고증을 4일에야 받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며 “조만간 회사에 교섭참가 의사를 밝히겠다”고 말했다.

신규노조인 대우증권지점노조가 교섭 참가의사를 밝히더라도 교섭권 확보는 ‘하늘의 별따기’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따라 과반수 노조가 교섭대표노조가 되기 때문에 조합원이 6명밖에 안 되는 대우증권지점노조는 그저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한다.

손 위원장은 “애초에 올해 교섭권은 포기하고 노조를 설립했다”며 “다만 교섭참가 의사를 밝혀야 임금·단체협약을 적용받을 수 있기 때문에 창구단일화 절차에는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기존노조인 대우증권노조와 회사가 대우증권지점노조에 불리한 임금협약을 맺더라도 대우증권지점노조 조합원들은 파업을 벌일 수 없다. 교섭권이 없기 때문이다.

손 위원장은 “교섭이나 파업을 할 수는 없지만 사업장의 부당노동행위나 근로기준법 위반 문제를 지적하며 상대적으로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한 지점(영업점)의 노동자의 권익향상에 힘쓸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대우증권지점노조가 결성돼 기존노조가 지점노동자 문제를 등한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추측뿐이다.

2013년 7월까지 2년간 신규노조 생존율은?

복수노조 허용과 창구단일화 제도에 따라 노조 설립은 쉬워졌지만 노조 유지는 더욱 어려워졌다. 노조법에 따라 새로 등장한 개념인 ‘교섭대표노조’ 탓이다. 노조법에서 보장하는 교섭대표노조의 지위는 그야말로 막강하다.

노동부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의 취지상 단체교섭이나 쟁의행위는 개별노조가 아닌 교섭대표노조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교섭대표노조는 독립적으로 단체교섭을 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하며 쟁의행위를 주도하는 등 노조법상 권한과 의무를 가진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교섭대표노조가 아닌 노조는 교섭대표노조가 체결한 단체협약의 적용을 거부하거나 독자적으로 파업에 돌입하는 등의 행위를 일체 못한다. 교섭대표노조가 행사할 수 있는 노조법상 권리는 △제2조제5호 노동관계 당사자 정의 △제29조제3항·제4항 교섭권 위임 △제30조 교섭 등의 원칙 △제37조제2항 쟁의행위 등 11개 조항에 달한다.

노조법은 단협 유효기간이 1년인 경우에도 교섭대표 지위를 2년까지 보장하고 있다. 올해 7월 복수노조 허용과 함께 출발한 신규노조가 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2년간 식물노조로 전락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때 기존노조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노조의 성장을 방해할 가능성이 크다. 사용자의 교섭비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필연적으로 노노 간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구조로 설계돼 있는 셈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현행 노조법은 과반수 노조에 독점적 지위를 부여하고 승자독식이 가능하도록 보장해 주고 있다”며 “소수노조가 얼마나 지속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구조”라고 우려했다.

기본권 침해 노조법, 개정되거나 위헌결정 받거나

"공동교섭대표단에서 배제된 소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 종료 후 새로이 조직된 신설노조 조합원의 노동3권은 심각하게 침해받습니다. 헌법상 보장받은 단체교섭권이나 단체행동권을 박탈당하고 결과적으로 단결권 자체를 무의미하게 합니다. 교섭대표에게만 교섭당사자의 지위를 부여하고 집단적 노사관계 및 채무적 부분에 대한 권리 일체를 부여한 결과 법률상 권리인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구제신청권조차도 행사할 수 없습니다."

소수노조의 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제약하고 있는 노조법의 운명은 일단 헌법재판소에서 가려질 전망이다. 한국노총은 지난달 창구단일화를 명시한 노조법 제29조제5항과 제29조의5가 헌법상 권리를 침해한다며 위헌소송을 냈다. 이번 소송을 담당한 김형동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는 “노조법은 소수노조와 산별노조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개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되든, 위헌결정이 나오든 간에 현행 노조법은 존속될 수 없다는 얘기다.

소수노조 창구단일화 참여 여부
Q> 전 직원이 300명인 우리 회사에 3개의 노조가 있습니다. A노조의 조합원수는 100명, B노조는 80명, C노조는 2명입니다. 조합원수가 2명인 C노조도 교섭창구 단일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나요.


A>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동교섭대표단에는 참여할 수 없습니다. 현행 노조법은 여러 개의 노조가 있으면 조합원수와 관계없이 모든 노조가 창구단일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과반수 노조가 없다면 공동교섭대표단을 구성해야 합니다. 조합원 10% 미만의 소수노조는 참여할 권리를 제한받습니다. 물론 공동교섭대표단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해서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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