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 시대 개막이 초기업단위 노조인 산별노조에 긍정적 영향보다는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단위 복수노조 허용이 산별노조의 조직화로 바로 이어지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과도기를 겪고 있는 우리나라 산별노조들이 특정 사업장에 대해 실시해 온 ‘대각선 교섭’도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복수노조 시행에 대한 내용을 담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교섭창구 단일화 대상에 산별노조까지 일괄적으로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업장 단위에 한정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산별노조들의 교섭권 행사를 부정하고, 그동안 산별노조들이 구축해 온 지역집단교섭이나 특성화교섭과 같은 교섭구조를 형해화할 가능성이 높다. 요컨대 기업별 교섭구조로의 회귀가 예상된다. 복수노조의 시대를 맞아 산별노조 위기론이 대두되는 이유다.

3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 국내 주요 산별노조 관계자들이 모였다. 한국노총 소속 금융노조와 민주노총 소속 공공운수노조·금속노조·보건의료노조, 정동영·이미경·홍영표 민주당 의원,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 유원일 창조한국당 의원,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공동주최로 열린 ‘산별노조의 사회적 역할과 산별교섭 제도화 방안을 위한 대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는 이종래 한국노동운동연구소 부소장·송영섭 금속노조 법률원 원장·우환섭 금속노조 정책국장이 발제자로 참여했다. 토론자로는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박준형 공공운수노조 정책실장·문상환 금속노조 정책실장·공광규 금융노조 정책실장·신쌍식 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 부회장·임상훈 한양대 교수(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위원장)·전운배 고용노동부 노사정책국장이 참석했다.


 
노동계 산별노조 재편노력 물거품 되나

‘복수노조 시대, 산업별 노조운동의 전략적 선택’에 대해 발표한 이종래 한국노동운동연구소 부소장은 “교섭창구 단일화에 초점이 맞춰진 개정 노조법이 등장하는 주요한 논리적 근거는 노사관계 안정화와 교섭비용의 감소로 보인다”며 “결국 개정 노조법은 ‘산별교섭이 중복교섭 등의 문제로 시간적·경제적 손실을 초래한다’는 사용자단체의 주장을 수용하면서 교섭단위의 일원화를 지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상황에서 초기업단위의 산별노조가 교섭권을 요구하더라도 사용자 동의조항으로 인해 노조의 교섭권이 무력화되거나 실질적으로 거부당할 가능성이 높다. 산별노조가 지향하는 초기업단위 교섭의 존재조차 의문시되는 상황이 벌어질 개연성도 크다.

이 부소장은 “산별노조의 교섭권이 약화되면 노사관계가 안정화되기보다는 노사갈등이 첨예해지면서 교섭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기업단위에서도 복수노조 상황으로 인해 다수노조와 소수노조의 갈등이 일상화되면서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노-노 갈등이 기업에게 추가적인 비용을 지불하게 할 개연성이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정부나 사용자들의 경우 비용 감소의 측면을 기대하며 교섭창구의 일원화를 추진해 왔지만, 복수노조라는 변화된 환경이 새로운 갈등과 비용을 창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산별노조, 차별성 부각시켜야"

수년간 산별노조로의 재편을 추진해 온 노동계의 노력도 물거품이 될 여지가 커졌다. 이 부소장은 “이런 구조적 난맥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산별노조 스스로 자신들의 방향과 지향을 더욱 뚜렷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산별노조와 기업별 노조가 단체교섭에서 경합을 벌여야 하는 현재의 상황에서 산별노조의 존재이유가 더욱 뚜렷해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부소장은 “산별노조들은 기업별 노조의 연합체와 같은 현재의 과도기적 형태에서 벗어나 조직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직화 전술을 채택해야 한다”며 “이러한 선택을 회피할 경우 지금의 산별노조는 조직구조와 교섭구조의 불일치 문제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지거나, 기업별 교섭에서도 대표성을 상실하는 현실에 봉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산별협약 효력 확장, 노조법 취지에 부합"

산별노조운동을 보장하기 위한 법·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날 토론회에서 ‘산업별 교섭과 협약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화 방안’에 대해 발표한 송영섭 금속노조 법률원 원장은 △근로자 개념과 사용자 개념 확대 △복수노조 자율교섭 보장 △산별교섭에 대응하는 교섭의무자 제도화 △초기업단위노조 단협 효력확장 조항 신설 △단협 지역적 구속력 완화 및 산업별 구속력 조항 신설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 폐지 및 전임자임금 노사자율원칙 규정 등을 법·제도 개선의 방향으로 제시했다.

송 원장은 “산업별 노동조합은 동일 또는 유사한 근로조건의 근로자들로 조직되고 또 사용자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동일 또는 유사한 사회·경제적 지위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산별노조의 단결활동을 보장하고 산별노조 형태에서 진행되는 단체교섭 구조를 제도하고 산별협약의 효력 적용범위를 확대시키는 것은 노조법이 목표로 삼고 있는 ‘근로조건의 유지·개선과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하는 데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산별노조, 내실 키워야"

산별노조와 사용자단체가 동일산업 노동자들의 권익개선을 위해 공동사업을 추진하고 실행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산별노조가 내실을 강화하면서 위기론을 극복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 5월 금속노조와 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는 퇴직연금 운용사 4곳을 공동으로 결정하고, 퇴직연금 운용사들과 업무준수협약서 체결까지 마쳤다. 이와 함께 표준퇴직연금규약도 마련했다. 노사는 운용사를 선정하면서 △기금운영의 안정성과 전문성 △조합원에 대한 친화적 접근성 △대주주가 외국투기자본인지 여부 △노사관계의 안정 등을 주요하게 살폈다. 국내 산별노조와 사용자단체가 퇴직연금 운용에 체계적으로 개입한 첫 사례다.

우환섭 금속노조 정책국장은 “퇴직연금제도의 도입과 실행 과정은 사용자들을 상대로 한 설득의 과정이었고, 이제 막 4곳의 퇴직연금 사업자들이 지역의 사업장을 방문하고 있는 단계”라며 “노동조합이 사용자단체와 최초로 합의해 하나의 제도를 만들고 사업을 시행하기로 합의했다는 데 의미가 있고, 이런 미약한 시도가 축적되면 산업별 단위의 사업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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