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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경정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자 가족대책위원회 대표"세상이 우리 편인데 지회가 좀 더 지켜줄 줄 알았는데 원망스러워요."
구은회 기자 ⓒ 매일노동뉴스
며칠 뒤 첫돌을 맞는 성민이가 열에 들떠 울어댄다. 엄마 도경정(32)씨가 성민이를 안았다 업었다, 젖을 물렸다 달랬다 한다. 하기야 “우리 아빠 일하게 해 주세요” 알리겠다고 서울 국회의사당에도 다녀오고, 바로 전날에는 아빠 얼굴 보겠다며 도로변에서 진을 쳤으니 한 살배기 몸에 탈이 안 나면 그게 더 이상하다.

올해 2월 한진중공업에서 정리해고된 170명의 노동자 중 상당수가 30~40대 중장년층이다. 한 살배기부터 유치원생까지 어린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영유아의 아빠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당연히 가족대책위 회원들도 죄다 아기엄마들이다.

28일 오전 부산 영도구 봉래동 ㅅ아파트 103동 501호. 8차선 대로를 사이에 두고 한진중 영도조선소와 마주선 이곳은 가족대책위 회원들의 사랑방이 된 지 오래다. 성민이 엄마, 지원이 엄마, 효주 엄마는 이곳을 수시로 들락거리며 아기들 입에 유아식을 떠넣고, 조선소 안으로 들여보낼 주전부리나 국물 따위를 준비한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아기들은 생긋 웃다가도 어느새 숨이 넘어갈 듯 울어 젖힌다. 아기들은 아빠만 보면 무섭다고 운다. 구조조정과 총파업, 정리해고로 이어지는 '어둠의 자장가'는 아기들에게 아빠 얼굴 익힐 틈도 주지 않았다.

“아빠가 무서워” 우는 아기들

가대위 대표를 맡은 도경정씨가 한 손으로 성민이를 안은 채 전화를 받는다. “뭐라고요? 배터리를 뺏겼다고요? 아유 속상해.”

이날 아침 가대위 회원들은 ‘진숙이 이모’에게 올려 보낼 음식물을 회사에 보냈다. 그런데 회사에서 음식물 보따리를 풀어헤쳐, 그 안에 넣어둔 휴대전화 배터리를 압수해 갔다는 것이다. 전날 진행된 법원의 행정대집행에도 불구하고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이어 가고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트위터를 통해 조선소 소식을 외부로 알리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우리 아저씨는요. 속상해서 술 먹고 싸우고 그럴 때도 ‘진숙이 누나 없으면 나도 이 짓 안 한다’고 말하곤 했어요. 김 지도위원은 우리한텐 언니 같고 이모 같은 사람이에요. 그분을 자기 발로 내려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들 아시잖아요. ‘해고자 안 만든다’는 약속을 해야 하는데…. 어제 노사합의 내용을 보고 너무 속이 상했어요.”

전날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와 회사측은 △해고자 중 희망자에 한해 희망퇴직 처우기준을 적용하고 △형사 고소·고발과 진정건 노사 쌍방 취하, 징계 등 인사조치는 조합원에 한해 면제 노력, 지부 및 지회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최소화, 그리고 △김진숙의 퇴거는 노조에서 책임지고 △타임오프 및 현안 등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전향적으로 개선하도록 노사가 계속 협의한다는 데 합의했다.

파업의 장기화에 따른 지회 운영의 어려움을 십분 감안하더라도, 해고된 노동자와 그 가족들은 지회에 대한 원망을 숨기지 못했다. 도씨는 “지난주 금요일부턴가 지회가 업무복귀 선언을 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설마설마했죠. 국회에서 청문회도 연다고 하고, 희망의 버스도 다시 온다고 하고…. 여론이 우리 편이니 지회가 우리를 좀 더 지켜 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거겠죠.”

정리해고가 만든 ‘신파’

도씨는 이날 오후 아픈 성민이를 떼어 놓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발길을 재촉했다. 투쟁 중인 남편을 대신해 생계전선에 뛰어든 지 오래다. 남편은 지난해 10월 3만7천원이 찍힌 마지막 월급을 끝으로 더 이상 돈을 들고 오지 않았다. 파업 중 ‘무노동 무임금’ 상태로 몇 달, 그 뒤로는 정리해고 상태로 몇 달을 보냈다. 해고자의 아내들은 아이들을 재워 놓고 근처 스티로폼 공장에 나가 밤새 물량떼기 험한 일을 버텨 냈다. 낮에는 전선을 꼬는 부업을 하며 아이들과 씨름했다. 이렇게 번 돈으로 배추랑 무를 사다 김치를 담갔고, 남편들이 싸우는 공장으로 날랐다. 신파가 아닌 현실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도씨는 “아직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29일 열리는 국회 청문회에 가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노사합의 다 됐는데 몇 안 되는 강성 노조원들이 크레인 잡고 떼쓴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마음이 갈팡질팡한다. 다음달 9일로 예정된 2차 ‘희망의 버스’는 또 어떻게 되는 건지…. 도씨는 “아무래도 손님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며 다시 발길을 재촉했다.

부산=구은회 기자  press79@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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