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의 정리해고 사태가 27일 전격적인 노사합의로 사실상 일단락됐다. 이날 오후 8시 현재 “끝까지 투쟁하겠다”며 85호 지브크레인에 오른 정리해고 조합원 30여명과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노사합의에 반대하는 비해고 조합원 40여명이 지회사무실에 머무르며 조선소를 지키고 있다. 조선소로 통하는 각 정문은 회사측이 고용한 사설경비용역과 경찰에 의해 봉쇄됐다.

◇전격적 노사합의, 배경에 관심집중=한진중 노사의 이날 합의는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한 의결절차 없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노사합의가 나오면 그 내용에 대해 조합원 찬반 의견을 묻는 일반적인 절차가 생략된 것이다.

이를 두고 노사가 서둘러 합의에 이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노사협의이행합의서에 ‘정리해고 철회’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는 점을 감안하면, 지회가 합의서에 서명한 이유가 석연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지회는 “2번의 여름과 3번의 겨울이 지나는 동안 한진 조합원들은 안 해 본 투쟁이 없을 만큼 모든 투쟁을 전개해 왔다”며 “조합원들의 생활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으며 점점 죽음의 공장으로 변해 가는 영도조선소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장복귀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회 관계자는 “경찰력 투입으로 생산현장이 유린되는 것을 방지하고, 비해고 조합원의 업무복귀를 통해 지회의 조직력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고 조합원들은 지회의 이러한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한 해고 조합원은 “노사 간에 어떤 물밑 교감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지회는 조합원들이 반대하자 회사측을 몰래 만나 노사합의서에 서명했다”고 비판했다. 조합원들은 특히 29일 국회 청문회를 앞둔 데다 지난 11일 ‘희망의 버스’ 행사를 계기로 한진중 사태에 대한 여론이 노조쪽에 호의적인 상황에서, 지회가 서둘러 합의서에 서명한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영도조선소 정상화될까=노사는 이날 합의를 계기로 조선소 정상화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러나 회사측은 영도조선소 발전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부산 영도가 아닌 필리핀 수빅조선소를 거점 전략사업소로 육성하겠다는 경영방침이 확고하기 때문에 제2, 제3의 구조조정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계기로 한때 ‘강성노조’의 대명사로 통했던 한진중지회의 무력화 수순도 예상된다. 최근 전국의 구조조정 사업장에서 민주노총 탈퇴와 조합원 대량징계 등의 갈등이 이어졌던 점을 감안하면, 한진중의 경우도 정리해고 후폭풍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85호 크레인의 운명은=노사합의가 도출된 상황에서 조선소 내 조합원들의 마지막 저항이 계속되고 있다. 85호 크레인 위 농성자들은 구호를 외치거나 투쟁가를 부르며 결의를 다지는 모습이다. 크레인 아래쪽에 배치된 사설경비용역원과 크레인 위 농성 조합원 간 물리적 마찰도 계속되고 있다.

노동계는 크레인 위 조합원들과 김진숙 지도위원의 동태를 살피는 데 주력하고 있다.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르는 불행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크레인이 보이는 한 아파트 계단에는 공장에서 쫓겨난 해고 조합원들과 가족·부산시민들이 모여 농성자들을 상대로 “힘내라”며 성원을 보내고 있다. 8차선 대로를 마주하고 크레인 위 조합원들도 반대편 노동자들도 긴 밤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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