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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사과박스 속에 잠자는 ‘노동의 기록’을 사수하라‘자료 보관’ 넘어 ‘자료 이용’ 고민해야
“지저분하니까 신발 신고 들어오세요.”
괜한 말이 아니었다. 방 두 칸에 화장실 하나 달린 반지하방은 어둡고 습했다. 책장 사이로 발을 들이니 여기도 책, 저기도 책이다. 책상과 컴퓨터, 두 대의 스캐너와 책을 낱장으로 분리하기 위한 재단기 한 대가 책들 사이로 비죽이 자리하고 있다. 자신을 ‘혁명적 사회주의 노동운동을 지향하는 철도노동자’라고 소개한 이진영(44)씨는 매일 여기서 100권이 넘는 책을 ‘스캔질’ 한다.

가내수공업으로 만들어진 ‘노동자의 책’

여름장마를 재촉하는 이슬비가 날리던 지난 22일 저녁. 연두색 티셔츠에 슬리퍼를 끌고 나온 이씨를 따라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현재 병가를 내고 쉬고 있다는 그는 하루의 대부분을 반지하 작업실에서 보낸다. 재떨이에 수북하게 쌓인 꽁초만 봐도, 그의 생활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딱 봐도 단순 노동의 반복이다. 책을 낱장으로 분리한 뒤 팩스기계처럼 생긴 고속스캐너에 한 장씩 넣는다. 구식 평면 스캐너를 쓸 때는 하루종일 책 두 권 스캔하기도 힘들었는데, 중고 고속스캐너를 구입한 뒤에는 하루 수십 권도 거뜬하다. 낱장으로 분리된 책은 손수 본드칠을 해 다시 붙인다. 한 번 재단을 했던 책은, 잘라낸 만큼 폭이 좁아진다.

종이책은 스캔작업을 거쳐 전자책으로 탈바꿈한다. 피디에프 파일로 전환돼 ‘노동자의 책’ 홈페이지(laborbooks.org)에 올라간다. 이씨는 자신을 포함해 운영자가 두 명 뿐인 노동자의 책 대표를 맡고 있다. 가족이 사는 다세대주택 건물의 지하방을 작업실로 만들었으니, 가내수공업이라 할만하다.

노동자의 책은 ‘인터넷 노동 아카이브’(archive 기록보관소)를 지향하며 만들어졌다. 2002년 11월 석사과정을 밟던 대학원생 4명이 홈페이지를 구축하고 운영에 들어갔다. 90년대 초반 대학가에 유행했던 생활도서관 운동이 ‘인터넷판’으로 계승된 셈이다. 우연한 기회에 이런 사이트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씨는 노동자의 책 초기 운영진을 찾아갔고, 초기 운영진들이 떠나간 지금까지도 사이트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노동자의 책 홈페이지에 가입된 회원은 약 1만2천600여명. 이씨는 최근 회원들에게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다. 구구절절한 사연이 담겼지만 내용은 간단하다. 홈페이지 운영을 위해 이리저리 애쓰고 있지만 운영비 부족에 허덕이는 실정이라는 것. 매달 5천원 이상 자발적 후원비를 보내주면 홈페이지 운영에 숨통이 트일 것 같다는 호소다.

“어려운 철학서나 사회과학서적 말고도 노동자의 육필수기, 노동자의 시, 노동자 투쟁을 묘사한 소설들,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분투했던 사회주의조직들의 기관지 등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되풀이되게 마련이고, 지금 갈피를 못 잡고 헤매는 노동운동진영을 위한 해법 역시 여기 노동자 투쟁의 기록에 있다고 믿습니다.”

한내 소속 활동가가 사진필름을 살피고 있다. 정기훈 기자 ⓒ 매일노동뉴스


전노협 후예들의 “노동 기록을 사수하라”

“아무 것도 건들지 말고 몸만 나가세요.”
95년 12월 서울 숭인동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사무실. 민주노총 전신인 전노협이 해산하고 난 며칠 뒤, 활동가들이 썼던 철제책상과 컴퓨터, 각종 회의자료에 대한 대대적인 수거작전이 거행됐다. 탈탈 털어 사과박스 600개 분량의 자료가 모였다. 1년7개월 뒤 ‘전노협백서’의 탄생을 가능케 한 자양분이다.

문제는 백서를 만들고 난 뒤 벌어졌다. 사과박스 600개 분량의 자료를 어디에 맡길 것인가. 전노협 백서팀은 민주노총에 자료를 이관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헌데 이럴 수가. 자료가 마구잡이로 버려졌다. 전노협신문 합본호나 각종 자료의 복사본이 폐지 취급을 받으며 사라졌다. 민주노총에 자료를 맡기려던 계획은 없던 일이 됐다.

사과박스들의 기구한 운명이 시작됐다. 자료들은 지인이 내준 경기도 안산의 한 사무실에서 몇 년을 묵었다. 그러던 중 전노협 백서팀 팀장을 맡았던 김종배 전 공공연맹 교육국장이 99년 8월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다. 유족들은 고인의 뜻을 이어달라며 사고보험금 중 5천만원을 추모사업회에 내놓았다. 이 돈으로 ‘노동운동역사자료실’이 만들어졌다. 안산으로 유배 갔던 사과상자들은 이곳에서 몸을 풀었다. 여기서 전노협백서가 재발간되고, 한국통신계약직노동자 투쟁백서 ‘517일간의 외침’과 발전노조 투쟁백서 ‘가자 총파업으로’가 만들어졌다. 자료실팀은 백서를 만들기 위해 당시 전국에서 유일하게 서울대 사범대에 딱 한 과목 개설돼 있던 ‘구술(口述)’ 과목을 청강하는 열성을 보였다. 다수가 외면하는 소수의 역사는 노동자들의 입을 통해 복원됐다.

아마추어리즘을 넘어 ‘한내’가 흐른다

사과박스의 시련이 다시 시작됐다. 돈의 벽을 넘지 못한 노동운동역사자료실은 2003년 12월 문을 닫았다. 사과박스들은 뿔뿔이 흩어져 이사를 갔다. 일부는 충남 당진의 한 농가로, 일부는 경기도 일산에 사는 누군가의 집으로, 일부는 성공회대 민주자료관으로 옮겨졌다.

어둠의 시기는 3년이 넘도록 계속됐다. 마냥 시간을 보내다간 자료들이 사장될지도 모를 일. 2007년 8월 자료실을 복원하자는 제안이 나왔고, 이듬해 1월22일(전노협 창립일) 150명의 발기인이 모여 ‘노동자역사 한내 준비위원회’를 발족했다. 발기인들은 1인당 100만원씩 설립자금을 내놨다. 어떤 비정규 노동자는 대출을 받아 기금에 보탰다.

“그맘때 민주노총 임원의 배임횡령을 비롯해 노동계 비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어요. 노동운동이 어려운 때일수록 과거를 돌아보고 스스로를 반성하자, 반성을 토대로 전망을 밝혀야 한다는 공감대가 컸어요. 이런 문제의식이 ‘한내’를 만들었죠.”

정경원 한내 자료실장의 말이다. 그는 전노협 백서팀과 노동운동역사자료실을 거쳐 한내에 이른 이 방면 베테랑이다.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노동운동자료실 연구위원까지 지냈으니 할 말이 많을 터.

“2004년 민주노총 자료실에 갔는데 책꽂이는 조립도 안 된 상태고, 책들은 바닥에 누워 있더라고요. 책꽂이 세우고 책 꽂는 일부터 했죠. 조직운영이 체계적이지 못한 데다 자료실 운영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없었어요. 자료실 연구위원으로 채용됐지만, 다른 연구프로젝트를 겸하거나 집회에 나가거나 하는 식으로 업무가 늘기도 했고요. 예산 배정도 늘 후순위로 밀렸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예요.”

어떤 면에서 보면, 민주노총 같은 내셔널센터가 살뜰히 챙기지 못한 노동자료의 수집·관리 업무를 한내가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2008년 8월 한내(hannae.org)가 공식 출범하고, 뿔뿔이 흩어졌던 사과박스 속 자료들도 마침내 안식처를 찾았다.

한내는 문서자료를 전산화 하고, 노동조합의 자료를 위탁받아 관리하는 일을 주요 업무로 하고 있다. 민주노총 소속 금속노조와 공공운수노조가 한내에 자료를 맡긴 상태다. 노동자 투쟁의 기록을 남기기 위한 구술채록도 한내의 주요 사업이다.

문서화된 자료 말고도 사진과 필름, 투쟁복과 깃발, 기념 배지 같은 박물자료도 수집하고 있다. 지난 23일 오전 찾아간 서울 영등포동의 한내 사무실 한 쪽에는 올 초 인천 부평 한국지엠 공장 정문 앞에서 사내하청 노동자 2명이 고공농성을 벌일 때 농성장을 함께 지켰던 지름 2미터 남짓의 대형 탈바가지도 보관돼 있었다.

정경원 실장은 “일본의 오오하라사회문제연구소 같은 외국의 유명한 노동자료 수집단체들도 한내에 찾아와 노동자료 통합관리 시스템을 둘러보고 가는데, 정작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이런 프로그램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노동자의 책’대표 이진영씨의 반지하 작업실. 컴퓨터 모니터 앞에 놓인 기계가 고속스캐너다. 구은회기자 ⓒ 매일노동뉴스
노동자료의 생명력은 노동자로부터

양대 노총도 자료실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도서관리학 전공자를 상근간부로 채용해 자료실 관리를 전담토록 했고, 민주노총은 정책연구원 산하 기관으로 자료실을 운영 중이다. 한국노총은 자료구입비 등의 명목으로 연간 1천만원 정도의 예산을 투입하고, 민주노총은 400만원 정도를 쓴다. 사업보고서와 주요 회의자료, 단행본과 간행물을 관리하고 있다. 돈과 사람을 얼만큼 쓰느냐가 자료실의 수준을 좌우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양 노총 모두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김정아 민주노총 총무실장은 “전문적인 자료관리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는 단체들에 대한 답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자료실 관리를 위한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료실의 관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료를 열람하느냐다. 자료의 생명력은 열람자로부터 나온다. 하지만 노동자의 책이나 한내, 양 노총의 자료실 모두 이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들 단체를 찾는 사람 중 상당수는 논문에 필요한 자료를 찾는 연구자나 학생들이다. 노동자나 노조간부들의 발길이 뜸하다. 임욱영 한국노총 정책차장은 “외국의 노동단체나 유학생들이 자료를 찾으러 오는 일은 있지만, 조합원들이 자료실을 찾는 일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원인은 여러 가지다. 자료의 접근성이라는 물리적 한계가 존재하고, 굳이 옛날자료를 찾아보겠다는 열성적인 노동자나 노조간부도 별로 없다. 불과 20년 전 활활 타올랐던 ‘노동’이라는 의제가 변방의 관심사로 격하되면서, 당장 핏물이 뚝뚝 떨어질 것처럼 생생하다 못해 생경한 투쟁의 기록들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을 겪은 우리나라 민주노조운동 1세대에 속하는 석치순 국제노동자교류센터 사무국장은 “후배 노동자들에게는 87년도, 박종철도 생소하기만한 존재”라며 “노동의 역사가 박제화 되는 것을 막고, 노동자 세대 간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도 노동자료 이용의 대중화 방안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아카이브’를 해법으로 제시한다. 전명혁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겸임교수(정보기록관리학과)는 “국내에서 노동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는 곳으로 한내·성공회대 민주자료관·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등을 꼽을 수 있는데, 각각의 단체가 ‘진공청소기식’ 중복 수집을 피하고 특화된 부문에 대한 자료수집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이렇게 모인 자료는 피디에프 파일로 전환해 온라인 검색과 출력이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이용자들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구은회 기자  press79@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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