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률단체 전문가들은 복수노조 제도와 함께 도입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보장’이라는 입법취지를 퇴색시키고, ‘1사1교섭’이라는 원칙하에 사용자들의 교섭부담을 줄여 주는 데 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복잡한 창구단일화 절차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지 장담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민주주의 법학연구회·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법률위원회 등 4개 노동법률단체는 22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노동3권과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를 주제로 공동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사용자 편의 위한 교섭창구 단일화절차

기존 복수노조 금지시대에 단결권 침해 논란이 노동계의 주요 관심사였다면, 지난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이 개정되고 교섭창구 단일화방안이 도입되면서 노동계의 주요 관심사가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 침해 여부로 옮겨 가고 있다.

헌법 33조에서 독자적인 권리로 보장되는 단결권은 ‘근로자가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자주적으로 단결체를 조직하거나 그 단결체를 운영할 권리’를 의미한다. 따라서 복수노조가 도입되더라도 사용자는 현재 존재하고 있는 노조를 그 자체로 승인해야 할 의무를 부담하고, 복수노조의 경쟁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복수노조의 경쟁관계를 악용하지 않아야 할 의무를 진다. 이를 위반할 경우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

하지만 사용자가 복수노조 간의 경쟁관계를 악용할 여지가 크다는 지적이다. 조상균 전남대 교수(민주주의 법학연구회)는 “노조측 교섭대표만을 공정대표의무 준수자로 설정하고 있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 개정 노조법은 사용자까지 공정대표의무의 준수자로 규정하고 있고, 이 의무는 ‘교섭창구 단일화절차에 참여한 노동조합 또는 조합원 간의 차별’만을 금지하고 있다”며 “결국 사용자가 일방의 조합을 우대하고 다른 조합을 차별할 경우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가 되는데, 의무의 대상인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참여한 노동조합 또는 조합원간의 차별’이 노조법 제81조 부당노동행위 조항이 아닌 노조법 제29조의4에 별도로 규정돼 있어 조합 간 차별의 문제가 헌법 위반에서 법률 위반으로 격하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공정대표의무 준수의무자에서 사용자를 제외하고, 부당노동행위의 내용을 복수노조의 시대에 걸맞게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명의 노동자가 여러 노조에 동시에 가입할 수 있도록 노조법이 과연 노동자의 단결권을 보호하느냐도 논란거리다. 조 교수는 “조합원수가 교섭대표의 결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구조하에서 노조 이중가입을 허용하는 것은 단결권 보장이라는 명목하에 조합 간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현행 노조법은 특히 소수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노조법에 따르면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 복수노조가 병존하는 경우 법에서 정한 절차를 거쳐 교섭대표노조를 정해야 한다. 노조들이 이러한 절차를 거치지 않을 경우 사용자가 각 노조의 교섭요구를 거부해도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노조법은 또 교섭대표노조를 결정하는 방법과 관련해 공동교섭대표단을 구성하는 경우 조합원수가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참여한 노동조합의 전체 100분의 10 미만인 소수노조는 공동교섭대표단에 참여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금까지 개별적인 단체교섭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초기업별 노조나 조직대상이 중복되지 않았던 노조도 개별적인 단체교섭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는 등 기존에 보장됐던 단체교섭권까지 제한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조 교수는 “교섭비용 증가나 노-노 간의 분쟁 방지 등 사용자의 편의가 교섭창구 단일화의 목적이라면 단체교섭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초기업별 노동조합이나 조직대상이 중복되지 않는 노조의 단체교섭권까지 부인되는 결과를 야기한다는 점에서 ‘필요최소한의 제한의 법리’에 위반돼 위헌성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권영국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는 “다수노조가 다른 노조원들을 대표하는 근거가 불명확한 점, 창구단일화가 결과적으로 교섭당사자의 단일화를 초래하는 점, 노조 자율에 의한 단일화는 사용자에게 단체교섭을 거부할 수 있는 명분을 준다는 점에 비춰 볼 때 교섭창구 단일화방안은 현행 법질서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노조 간 조직침탈, 조합비 인하 부작용 우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노조활동을 어떻게 제약하느냐에 대한 검토도 이뤄졌다. 당장 노조 간 조합원 확보 경쟁의 과열양상이 예상된다. 양현 공인노무사(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는 “현행 노조법은 사업 또는 사업장 전체 ‘근로자의 과반수’가 아니라, 전체 ‘조합원의 과반수’가 되면 교섭대표노조의 지위를 부여하기 때문에 다른 노조에서 조합원을 빼앗아 오는 것이 조합원을 신규로 가입시키는 것보다 효과적”이라며 “다른 노조에서 조합원을 빼앗아 오는 조직침탈이 극심해질 수 있고, 이런 이유로 전체 노조 조직률이 정체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손쉽게 조합원을 늘리는 방안으로는 ‘조합비 인하’가 있다. 양 노무사는 “노조 간 조합비 인하 경쟁은 노조활동의 위축을 불러오고, 노조가 기존에 일상적으로 행한 사업들이 축소될 것”이라며 “상급단체의 활동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단체교섭의 내용 역시 철저한 실리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노조가 조합원의 직접적 이익에 관련된 사항에 집중하면서, 노조의 사회적 역할에 따른 의제가 점차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양 노무사는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이나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차별하는 내용의 단협을 체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위력적인 쟁의행위도 점차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노조법에 따르면 창구단일화에 참여한 전체 조합원의 과반수 찬성으로 쟁의행위를 의결해야 한다. 양 노무사는 “압도적인 과반수노조가 아닌 이상 쟁의행위에 돌입하기 위해서는 다른 노조의 협조나 지지가 필요하게 된다”며 “설령 쟁의행위 돌입하더라도 경쟁노조가 쟁의행위를 반대해 파업을 파괴할 경우 이를 제재할 방법이 없고, 이른바 ‘무임승차’ 문제도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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