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현재 임금·단체협상 중인 A사 노조는 다음달 1일 복수노조와 교섭창구 단일화 시행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밟을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단일화 절차를 무시하면 그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돼 온 교섭권이 흔들릴까 걱정이고, 단일화 절차를 밟으면 자율교섭을 강조해 온 노동계의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현실과 원칙 사이에서 갈등하던 A사 노조는 최근 “회사에 교섭요구를 먼저 하지는 않겠지만, 회사가 교섭요청 사실공고를 붙이는 것도 막지 않겠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회사 주도의 창구단일화 절차를 묵인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교섭대표노조의 지위를 지키겠다는 의도다. 당장 신규노조가 설립될 가능성이 낮고, 이미 조합 가입대상의 50% 이상을 조합원으로 가입시킨 A사 노조가 달라진 법 제도를 ‘암묵적으로’ 받아들인 셈이다.

이러한 고민은 A사 노조만의 몫은 아니다. 양대 노총은 “노조법상 복수노조 시행일은 2011년 7월1일이므로 이 법 시행일 이전에 교섭 중인 노조는 무조건 교섭대표노조”라는 원칙을 견지하고 있지만, 제도 시행일이 다가오면서 단위 노조들은 여기저기서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한국노총 산하 B노련과 C노련은 최근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참여하라는 내용의 지침을 단위노조에 내려보냈다. 이들 조직은 “창구단일화를 강행규정으로 정한 노동부의 매뉴얼은 문제가 있다”면서도 “차선책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단일화 절차에 불참함으로써 교섭권이 박탈되는 상황은 피해 보자는 것이다.

이렇게 교섭권 유지에 중점을 둘 경우 A사 노조처럼 회사의 창구단일화 절차를 묵인하는 사례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조합원 과반수를 점하고 있는 노조일수록 이런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여기서 A사 노조의 선택이 편법이냐 합법이냐를 두고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현실론을 앞세운 단위노조들의 선택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교섭권만 놓고 보면 노동부 매뉴얼을 따라야겠지만, 이런 식으로 매뉴얼을 수용하기 시작하면 노사관계를 심각하게 교란하는 복수노조 제도 전체를 수용하는 셈이 된다”고 우려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