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동차기업들은 다른 나라 기업과 비교해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는 경제위기에 유독 강하다는 것이다. 경제위기가 닥쳐 소비가 줄고 매출이 줄면 대부분 나라의 기업들은 순익이 급감하는데 한국 기업들은 자신의 이윤을 지켜 내거나 또는 오히려 상승시킨다.

한국 기업들의 비용전가 구조 증 하나인 유연한 장시간 노동체제 때문이다. 한국의 기업들은 주당 40시간 노동에 개의치 않고 마음대로 잔업과 특근을 통해 노동시간을 늘이고 줄일 수 있는데, 기본급 비중이 낮은 노동자들이 수입보전을 위해 잔업·특근 수당에 목을 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동시간 체제를 유지시키는 핵심은 산업의 꼭대기에 위치해 있는 재벌 대기업들이다. 재벌 대기업들에 적시에 필요한 부품을 공급해야 하는 부품사들은 재벌 대기업의 생산방식에 자신들의 생산방식을 맞출 수밖에 없다.

현대자동차의 예를 보자. 현대차는 핵심 부품을 직서열(JIS) 방식으로 부품을 공급받는다. 직서열 방식이란 현대차가 도요타의 적시공급(JIT)을 확장한 것으로 시간뿐만 아니라 부품의 공급순서(Sequence)까지 관리한다는 개념이다. 현대차는 다양한 차종, 다양한 옵션으로 출하되는 자동차를 시장수요에 따라 재고 없이 최소비용으로 유연하게 생산하기 위해 차종과 옵션에 따라 필요한 부품을 순서에 따라 공급하도록 부품사에 요구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자동차산업 내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연간 2천500시간 이상을 일하는 현대차의 생산방식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 재고 없는 생산방식이 완성차만이 아니라 부품사에도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현대차는 이제 산업 내 모든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현대차 자본의 전략에 종속시켰다.

이러한 생산 방식은 기업에게 매우 큰 혜택을 준다. 생산량을 늘려야 할 경우 설비투자 대신 노동시간을 늘려 자본투자를 줄일 수 있고, 반대로 생산량을 줄여야 하는 경우 잔업·특근을 없애 노동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생산량이 늘면 노동자는 장시간 노동으로 자신의 육체를 임금증가분 이상으로 소모해야 하고, 생산량이 줄면 낮게 책정돼 있는 기본급으로 인해 실제 지출한 노동시간보다 적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산업구조의 꼭대기에 있는 재벌 대기업에 가장 많은 혜택을 주고 동시에 부품사 자본에게 역시 적지 않게 혜택을 준다.

다른 나라와 비교한 한국 자동차산업의 노동소득분배율 추이는 이러한 유연한 장시간 노동체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 OECD STAN(Structural Analysis) 통계에 따르면 주요국 자동차산업의 노동소득분배율은 경제위기 이전 한국 65%, 미국 77%, 이탈리아 74%, 독일 79%였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한국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다. 그런데 경제위기가 발발하자 다른 나라들은 자본의 이윤이 낮아지고 노동자 소득이 상대적으로 유지되며 노동소득분배율이 상승하는 데 반해 한국은 오히려 노동자 소득이 급감하며 노동소득분배율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경제위기 발발 직후 노동소득분배율은 한국이 4%포인트 낮아졌지만, 미국·이탈리아·독일은 각각 4%·2%·1%포인트씩 상승했다.

앞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이러한 결과는 한국의 노동자들의 임금이 다른 나라에 비해 초과 노동시간에 더 의존하기 때문이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노동자들은 미국보다 400시간, 이탈리아보다 700시간, 독일보다는 1천시간 넘게 더 일을 하고 있으며, 이 시간만큼 더 초과근로수당에 의존한다. 그리고 자본 투자 대신 유연한 노동시간 증감으로 생산을 유지하는 현대차는 다른 어떤 자동차기업보다도 경제위기 기간에 많은 돈을 벌었다. 경제위기로 인한 모든 부담을 노동이 짊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5월18일부터 시작된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이 4주 넘게 계속되고 있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는 장시간 노동 대신, 초과근로수당에 의존하는 임금 대신, 주간연속 2교대제와 월급제를 하자고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고 장시간노동을 통해 배를 불려온 현대차와 유성기업 자본은 공격적 직장폐쇄와 경찰력 투입으로 노동자들을 공장에서 내쫓았다.

유연한 장시간 노동체제는 기회는 자본이, 희생은 노동자가 짊어지는 구조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투쟁에 다시금 민주노조운동 진영이 힘을 모을 때다. 아무리 원·하청 불공정 거래를 개선한다 하더라도, 아무리 여러 복지제도를 도입한다 하더라도 자본의 장시간 노동체제를 넘어서지 않고서는 노동은 위기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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