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엔진품관부에서 일하며 노조 노동안전위원으로 활동해 온 박아무개(49)씨가 9일 오전 8시15분께 엔진개선반 옆 화장실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급작스런 비보가 전해진 뒤 이날 오후 2시30분께부터 쏘나타·그랜저 등을 생산하는 아산공장 전체 라인에서 생산이 중단됐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아산공장위원회에 따르면 고인은 이날 야간근무를 하다 새벽 6시께 공장 내 화장실에 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동료 직원이 화장실에 찾아가 안쪽에서 잠긴 화장실 문을 강제로 열어 보니 고인은 이미 목을 매 숨진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은 숨지기 전 평소 가깝게 지내던 노조 활동가들에게 “노동탄압을 분쇄하기 위해 이 한 목숨 바치겠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내 자신의 죽음을 암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유서에 “(회사는) 노안위원, 근골실행위원(이), 근골신청자(를) 면담하는 시간마저 무단이탈로 처리하고 있다”며 “근태협조 없으면 무단이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고 남겼다. 아산공장 엔진1부를 관할하는 노동안전위원이었던 고인은 평소 정상적으로 근무를 하며 짬짬이 조합원들의 건강 문제를 상담해 왔다. 산업재해업무 처리와 근골격계질환이 의심되는 조합원들에 대한 상담도 그의 몫이었다.

고인이 공장업무와 노동안전 활동 사이를 넘나들 수 있었던 것은 노안활동의 중요성에 대한 노사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 4월 현대차 전 사업장에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가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고인의 노동안전 활동에 제동이 걸렸다. 그동안 관행적으로 인정돼 온 노안활동에 대해 회사측은 “근태협조를 받지 않으면 무단이탈로 보고하겠다”며 고인을 압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달 8일 열린 임금·단체협상 상견례에 앞서 현대차 회사측이 지난달 27일 금속노조에 보내온 ‘회사 개정 요구안’에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명예산업안전감독관·안전보건교육·재해안정기준 등 노동안전 관련업무에 타임오프를 적용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를 그대로 적용할 경우 고인과 같은 노안위원을 비롯해 그동안 공장과 노조를 오가며 활동해 온 90여명의 비전임 활동가들은 근태협조를 받거나, 무급으로 노조활동을 하거나, 노조활동을 그만둬야 두거나 해야 한다.

이진희 아산공장위원회 교선부장은 “고인의 유서내용을 볼 때 고인은 번번이 근태 허락을 받으라는 회사 관리자들 때문에 참기 힘든 굴욕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이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극단적 선택을 하기에 이른 것으로 판단된다”며 “타임오프 제도가 성실히 일해 온 노조간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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