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31일 오후 서울 정동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복수노조 시행이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미칠 영향과 그 대응’을 주제로 월례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김철희 공인노무사(법률사무소 참터)는 복수노조 시행이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률을 높이는 데 긍정적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고, 부정적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복수노조 시스템이 비정규직 노조 조직화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은 크게 세 가지다. 전반적으로 노조 설립이 자유로워지면서 조직화가 촉진될 수 있다. 또 조합원 과반수를 목적으로 하는 노조들 사이의 조직화 경쟁을 통해 비정규직 조직화가 이뤄질 수 있다. 김 노무사는 “기존 단일노조가 비정규직의 가입을 허용하지 않았더라도, 앞으로는 노조 내부 세력분리를 추진하는 집단이 사업장 내 조합원 과반수 지위를 얻기 위해 비정규직 조직화를 내걸 수 있다”고 내다봤다. 비정규 노동자들이 대형 노조 사이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이 밖에 교섭창구 단일화를 통해 비정규직노조가 독자적인 교섭권을 획득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반면에 복수노조 시스템이 도입되더라도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인 고용불안이 해소되지 않으면 비정규직 노조 조직화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부정적 전망도 나왔다. 김 노무사는 “지금까지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률이 저조했던 이유는 고용불안 때문”이라며 “비정규직 스스로 노조활동이 고용유지에 미치는 득실을 따졌고, 그 결과 노조 조직률이 낮아졌던 것”이라고 말했다. 복수노조가 허용되더라도 비정규직 조직화는 본질적인 한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물론 비정규직 조직화에 성공하더라도 창구단일화 제도로 인해 독자적인 교섭을 벌이기는 쉽지 않다. 김 노무사는 “실질적으로 정규직노조가 교섭을 전담하고 비정규직노조는 스스로 무언가를 해결할 수 없는 상태에 봉착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한편 복수노조의 시행이 비정규노조의 단체교섭권과 단체협약 체결권을 박탈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김미영 건설노조 법규부장은 “건설현장의 경우 신규 건설현장에 조합원이 투입된 뒤에야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된다”며 “그런데 앞으로는 전문건설업체가 여러 개의 공사현장을 갖고 있더라도, 교섭 당시 조합원이 건설현장에 들어가지 못하면 단체교섭 요구조차 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현재와 같은 건설현장별 단협 체결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소속 타워크레인 노조들이 서로 먼저 건설현장에 들어가려고 노-노 갈등을 벌이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