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사업주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하도급 계약을 장기간으로 하거나 갱신을 보장함으로써 사내하도급 근로자의 고용안정을 도모하도록 노력한다.”

지난 27일 공개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노동시장선진화위원회의 ‘사내하도급 근로자의 근로조건 보호가이드라인 공익위원(안)’ 내용 중 일부다. 공익위원들은 하도급계약 연장을 통해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실현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공익안에는 중요한 내용이 빠져 있다. 원청업체의 사업장 안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원청업체의 지휘·감독을 금지·제한하는 내용은 공익안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지난해 대법원은 현대자동차가 지휘·감독권을 행사해 왔다는 것을 근거로 현대차의 사내하청 활용에 대해 도급계약관계가 아닌 파견계약관계라고 판단했다. 동일한 사업장에서 원청업체 정규직과 섞여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현대차의 지휘·감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 인정된 것이다. 대법원은 또 옛 파견법의 고용간주 조항을 적용해 2년 이상 일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의 지위를 갖는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원청업체의 지휘·감독 여부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고용상 지위를 판단하는 결정적인 지표다. 따라서 공익안의 내용처럼 원청업체가 하도급계약을 장기화하려면, 원청업체 관리자들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지휘·감독 권한을 포기해야 한다.

노사정위가 사내하청 노동자의 고용안정과 근로조건 개선을 표방하며 가이드라인 제정에 나섰지만, 정작 핵심적인 내용은 빠진 셈이다. 심지어 공익안에는 유사한 근무에 종사하는 원-하청 노동자 간 근로조건 격차를 개선하라는 언급도 없다. 노동계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노동계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근로조건 개선방안으로 노조활동 보장을 요구해 왔다. 이와 관련해 공익안은 원청사업주에게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정당한 노조활동을 존중하고, 노조활동을 이유로 사내하도급 계약을 해지하거나 계약갱신을 거부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그렇다면 이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일터이기도 한 원청업체 사업장 안에서 하청노동자들의 쟁의행위가 가능해지는 것일까. 하지만 공익안은 “사내하도급 근로자도 원청사업주의 시설관리권 등 경영권을 존중하라”고 선을 그었다.

공익안은 또 원청업체 노사가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하청업체 노동자대표가 원청업체 노사의 노사협의회나 간담회에 참여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권고했다. 지난해 12월 금속노조·현대차지부·현대차비정직지회와 현대차·협력업체 사용자들은 특별교섭을 통해 사내하청 노동자의 처우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이어 현대차 노사는 노사협의회 주요 안건 중 하나로 하청노동자의 고용 문제를 다루기도 했다. 공익안은 이런 현실조차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공익안에는 원청업체 사용주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하청노동자들의 사용자 지위에 있다고 판단하고, 원청 사업주가 사내하청 노동자의 교섭요청에 응해야 한다고 본 대법원의 판결도 반영되지 않았다.

이정호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장은 “공익안은 최저임금 준수, 4대 보험 적용, 산업재해로부터의 보호 등 사업주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내용을 열거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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