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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 유성기업 사태, 왜곡된 원-하청 납품구조 환기시켜노동계 숙원 "밤에 잠 좀 자자" 밤샘노동 폐지요구 전면화할 듯
24일 오후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경찰에 팔을 붙들린 채 순순히 끌려갔다. 특별한 저항은 없었다. “일은 낮에 하고, 밤에는 잠 좀 자자”고 주장하며 부분파업 2시간을 벌였을 뿐인 노동자들은 산업경제의 발목을 잡은 죄인이 돼 경찰차에 올랐다.

◇교섭중단 2시간 만에 경찰 투입=24일 오후 4시15분 충남 아산시 둔포면 유성기업 아산공장. 300여명의 노동자가 조업2과 공장 기계 틈에 끼어 앉아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끌려가지 않으려고 서로 팔짱을 껴 보지만, 경찰의 완력을 당해 내기는 역부족이었다. 공장 외부는 이미 경찰이 에워싼 상태. 이날 오후 4시께 개시된 경찰의 진압작전은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경찰은 조합원 200여명으로 구성된 ‘사수조’가 지키고 있는 공장 정문을 피해 정문 양쪽 옆 철망을 뜯어내고 공장 안으로 진입했다. 오후 2시께 재개됐던 노사 교섭이 별다른 성과 없이 중단된 지 2시간 만에 진압작전이 시작됐다. 공장 안 주요 건물이 경찰에 의해 포위됐고, 지회사무실에 대한 수색도 진행됐다. 수사관들은 지회 사무실 곳곳을 뒤졌고, 증거물품이 될 만한 각종 유인물과 현수막 등을 수거해 갔다. 이날 작전에는 경찰 31개 중대가 동원됐다.

경찰 투입은 의례적인 사전경고 뒤 곧바로 이뤄졌다. 경찰은 파업 조합원을 상대로 해산을 종용하는 선무방송을 연이어 내보낸 데 이어, 공장 주변을 헬기로 저공비행하며 “불법행위를 중단하지 않으면 처벌하겠다”는 내용의 유인물을 뿌렸다. 유인물은 허찬 아산경찰서장 명의로 작성됐다.

그러는 사이 “교섭이 중단됐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공장에 긴장감이 맴돌기 시작했다. 지난 18일 직장폐쇄가 단행된 뒤 두 번째로 진행된 이날 노사교섭에서 유시영 유성기업 대표이사는 “오늘 자리는 교섭이 아니다”고 밝힌 뒤 교섭 자리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직장폐쇄 중단과 조합원 업무복귀 여부가 논의될 것으로 예상됐던 교섭이 진전 없이 마무리되자, 공장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어 경찰의 진압 움직임이 포착됐고, 삼삼오오 휴식을 취하던 조합원들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일부 조합원들은 공장으로 들어오는 경찰을 향해 “들어오기만 해 봐. 죽어 버릴 거야”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30년 넘게 이 공장에서 근무했다는 김아무개씨는 “살다살다 별 꼴을 다 본다”며 씁쓸해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사업장 중에서도 노사관계가 원만해 모범사업장으로 거론되던 회사가 하루아침에 악질 분쟁사업장으로 변한 데 대한 회한의 표시다.

경찰 진압 당시 공장 안에는 LNG가스와 암모니아 같은 위험물질이 비치돼 있어 만일의 사태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조합원과 가족이 경찰의 진압작전을 막기 위해 정문을 지키고 있다. 아산=정기훈 기자 ⓒ 매일노동뉴스


◇경찰 속전속결, 왜?=경찰의 진압작전은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가 주간연속 2교대제와 월급제 도입을 요구하며 2시간 부분파업을 벌인 지 일주일 만에 이뤄졌다. 이날 작전이 개시되기까지 자동차업계는 지회에 대한 파상공세를 벌였다. “고연봉 근로자들이 국내 자동차산업을 볼모로 잡아 불법파업을 벌이고 있다”는 식의 보도가 언론의 주요면을 채웠다.

현대·기아·쌍용자동차 등 주요 완성차업체들은 연일 보도자료를 내고 근거가 불분명한 피해액수 발표에 열을 올렸다. 현대차는 심지어 진압작전이 마무리된 이날도 보도자료를 내고 “이달 말까지 정상화되지 않으면 현대·기아차와 협력업체의 피해가 2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주장했다. 한국경총·전경련·대한상의 등은 앞 다퉈 공식입장을 내고 “공권력을 투입하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측의 부당노동행위 혐의나 이번 사건을 부른 주간연속 2교대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회사가 지회의 2시간 부분파업에 대해 이례적으로 공격적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사설경비용역을 고용한 것이 이미 짜여진 각본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노동계를 제외한 그 누구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쟁의행위 개시시점을 거론하며 "불법파업"이라고 주장했던 고용노동부는 회사측의 부당노동행위 혐의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사정이 이러니 노동자들이 언론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아무개씨는 “기자들은 업체들이 하는 말만 받아적는 사람들이냐”며 “신문에 나온 대로 수천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치더라도, 그를 감수하고 상황을 여기까지 이끈 회사에도 문제가 있을텐데 왜 그런 얘기는 아무 데도 실리지 않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왜곡된 원-하청 납품구조 문제 환기=유성기업의 노사갈등은 역설적으로 국내 원-하청업체 납품구조에 대한 관심을 사회적 불러일으켰다. 일개 중소기업 노사갈등이 국내 산업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그 이면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완성차업체들이 부품 공급선을 최소화하면서 소수업체에 물량을 몰아주고, 그 대신 이른바 ‘납품단가 후려치기’(CR) 관행을 심화해 왔다는 사실이 여론의 재조명을 받았다.

완성차업체들이 하청업체의 노사 문제까지 깊숙하게 개입해 온 정황도 드러났다. 노동계가 공개한 유성기업의 파업 대응 시나리오 문건에는 이번 노사갈등을 촉발한 핵심 쟁점인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에 대한 회사측 입장을 대변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회사는 현대·기아차가 임금·단체협상과 연동해 주간연속 2교대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유성기업 노사가 주간연속 2교대제 시행에 합의할 경우 현대·기아차 본교섭에 일부 변수가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내다봤다.

회사는 또 주간연속 2교대제 논의를 최대한 지연시키는 방향으로 교섭전략을 세우고 해당 문건에 “현대·기아차 (주간연속 2교대제) 시행 前 ‘先 시행’ 노사합의 방지”라고 명시했다. 이와 관련해 노동계는 유성기업의 교대제 개편논의에 현대·기아차 등 국내 완성차업체들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생산과 물류체계 변화를 동반하는 협력업체의 교대제 개편에 원청업체가 민간하게 반응한 결과 이번 사태가 벌어졌다는 지적이다.

농성 끝에 연행된 한 조합원이 경찰 호송차량에서 손가락으로‘브이’를 그려 보이며 웃고 있다. 잘못한 게 없기 때문에 당당하다고 말했다. 아산=정기훈 기자 ⓒ 매일노동뉴스
◇노동계, 밤샘노동 폐지 요구 거세지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제조업 노동자들의 주간연속 2교대제 시행 요구가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될지도 주목된다. 밤샘노동 폐지를 뼈대로 한 주간연속 2교대제는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보호하고 노동자들이 가족과 함께할 시간을 늘리자는 취지의 생활 밀접형 요구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이 자동차 조립공정에서 일하는 주야 교대제 노동자에게 발생한 수면장애(수면·각성장애)가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놓은 뒤 맞교대 공정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가 주목받는 것과 무관치 않다. 장기간 반복된 주야 맞교대 노동은 심각한 수면장해를 유발하고, 맞교대에 따른 불규칙적인 생활은 가정파탄을 초래하기도 한다. 김관득 우성기업지회 대의원은 “야간근로자의 경우 우울증 등 정신과 치료를 받는 조합원이 적지 않고,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조합원도 있었다”며 “비용과 물량의 복잡한 함수관계를 따지기보다는 노동자들의 건강권 보호를 위해 반드시 교대제를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산=구은회 기자  press79@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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