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해 7월부터 8월까지 한 달 사이 부산지역에서만 4건의 산업재해가 발생해 9명이 숨지고 1명이 중상을 당했다. 그보다 석 달 앞선 같은해 4월에는 부산 북구 화명동 롯데캐슬카이저 공사장 매몰사고로 1명 사망하고 6명이 크게 다쳤다. 민주노총 부산본부는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노동자들이 억울하게 삶을 마감했다"며 "근로감독관이 산재사고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시정명령)을 하는 관행이 억울한 희생을 불렀다"고 비판했다.

#2. 지난해 9월 충남 당진소재 환영철강에서 김아무개(29)씨가 용해로에 떨어져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김씨는 용해로가 제대로 닫히지 않아 이를 막기 위해 고정 철판에 올라갔다가 변을 당했다. 고철을 끄집어내려다 발을 헛디뎌 용해로에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가 작업했던 용해로 위 고정철판에는 난간이나 가드레일 등 안전펜스조차 설치되지 않았다. 그런데 환영철강은 사고가 발생하기 불과 보름 전에 고용노동부 천안지청로부터 공정안전 실태점검을 받았다. 노동부는 당시 14건의 시정지시를 내렸지만, 용해로 주변은 점검대상에 포함되지도 않아 젊은 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을 막지 못했다.

사업주는 산업안전보건법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 정부는 사업주가 법과 원칙을 이행하고 있는지 철저히 관리·감독해야 한다. 산업안전은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에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재왕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은 있으나 마나다. 사업주가 법을 지키지 않아도 대개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탓이다.
이런 가운데 노동부가 솜방망이 처벌을 바로잡겠다며 산업안전보건 감독제도를 확 바꿨다. 노동자의 생명 경시 풍조를 조장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업주 봐주기 관행을 개선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점검 사라지고 정기·수시·특별감독 체제 도입

22일 노동부에 따르면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할 경우 기존에는 시정기회를 한 번 주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했는데, 지난 19일부터는 시행령 개정에 따라 시정기회 없이 즉시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산업안전보건 업무담당 근로감독관 집무규정도 전면 개편됐다.

달라진 집무규정에 따르면 사업장 점검업무가 사라지고 대신 정기·수시·특별감독 체제가 도입된다. 종전 집무규정(노동부 훈령 679호)은 지방관서장이 노동부 본부의 업무계획 또는 자체계획에 따라 선정된 사업장에 대해 법령 위반사항을 점검하도록 했다. 점검에서 법 위반사항이 적발될 경우 즉시입건 대상 등 일부를 제외하면 보통 시정지시 조치로 끝났다.

앞으로는 노동부가 매년 초 수립하는 감독계획에 따라 정기감독이 실시되고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에는 한 달 내 수시감독이 시행된다. 또 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관이나 지방고용노동청장이 대형사고 발생 사업장에 대해 필요시 특별감독을 할 수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그동안 근로감독과 달리 산업안전보건 감독은 명확한 구분이 없었다"며 "감독대상을 명확히 하고 감독결과에 대한 조치사항을 엄격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정기감독은 전년도 사고 성 휴업재해가 2명 이상 발생하고, 재해율이 동종 업종의 1.5배 이상인 사업장에서 실시된다. 또 전년 환산재해율이 규모별 하위 10% 이하인 건설업체가 시공 중인 건설공사도 정기감독 대상이다. 이 밖에도 유해물질로 인해 발생한 직업병 유소견자가 2명(상시근로자 1천명 이상 사업장은 3명)이상 발생한 사업장도 정기감독을 받아야 한다.

수시감독은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에 실시된다. 최근 1년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 기인한 중대재해가 2회 이상 또는 동시에 2명 이상 사망한 경우, 최근 1년간 사고상 사망만인율이 평균을 초과한 경우 등이 해당한다. 특별감독은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 의무를 소홀히 해 대형 사망사고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다.

되레 느슨해진 원청사용자 처벌

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해도 솜방망이 처벌로 규범력이 약화됐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다"며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에 직결되는 법인만큼 산업현장에서 이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확고해질 필요가 있다"고 집무규정 개정배경을 설명했다. 감독 결과에 따른 조치사항이 대폭 강화됐다는 것이 노동부의 주장이다.

실제로 종전에는 사업주가 안전·보건상의 조치(법 제23조 및 24조)를 위반해 적발될 경우 즉시 입건대상이 되는 관련 조항이 93개밖에 되지 않았는데, 개정 집무규정에서는 227개로 두 배 이상 늘었다.

그러나 원청사업주에 대한 감독은 일부 느슨해진 측면이 있다. 법에서는 원청사업주에게 하청노동자가 참여하는 안전·보건협의체를 구성하고, 안전보건교육에 대한 지원 등을 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제29조제1항). 이와 함께 원청사업주는 하청노동자와 함께 정기적으로 작업장에 대한 안전·보건 점검을 해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그러나 노동부는 집무규정을 통해 최근 2년 이내 이와 관련한 법 위반으로 행정·사법조치를 받은 사업장에 한해서만 사법처리를 하도록 했다. 법에서 정한 사항을 노동부 훈령으로 제한한 것이다. 월권 논란이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안전부터 '법과 원칙' 바로 서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시 즉시 과태료가 부과되고 감독대상이 명확해졌다고 해도 노동부의 주장처럼 산업현장에서 안전보건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질지는 두고 봐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사망사고의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하지만 실제 징역형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통 벌금형으로 마무리된다. 노동자가 수십 명 사망해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사업주가 구속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개 벌금형이나 무혐의 처분을 받는 것으로 사건이 종결되고 있다.<상자기사 참조> 벌금 액수도 너무 적어 사용자들이 안전·보건의식을 강화하는 데 역부족이라는 비판이 높다.

반면 외국의 경우 사업주가 안전·보건관리를 소홀히 해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면 어마어마한 액수의 벌금형이 선고된다. 때문에 안전관리와 안전교육이 철저하게 이뤄질 수밖에 없다. 독일이나 호주는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이를 사업주 과실로 판단해 기업에 막대한 벌금을 물리고 있다. 영국은 지난 2008년 4월부터 기업살인법(Corporate Killing Law)을 시행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필수적인 안전조치를 시행하지 않아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기업주를 과실치사 혐의로 처벌하도록 돼 있다.


 

'구속수사 0.1%' 솜방망이 처벌
검찰송치자 중 96% 정식재판에 안 받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 대한 제재가 솜방망이 수준이어서 현장감독의 실효성이 크게 떨어지고, 산업안전 실태가 개선되지 않는다는 지적은 매년 나오는 고질적인 문제였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노동부는 2009년 1∼8월 1만7천188곳을 지도·감독해 93%인 1만6천곳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적발했다. 하지만 위반건수의 7.8%에 불과한 1천475건만 사법처리됐을 뿐 구속수사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매우 높은 위반율은 수년 전부터 지속되고, 가벼운 제재도 관행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2007년 점검이 이뤄진 5만713곳 가운데 89%인 4만5천299곳이 적발됐다. 2008년에도 3만3천872곳 중 93%인 3만2천391곳이 단속됐다. 그런데 2007년부터 2009년 8월까지 단속된 불법행위의 95%는 행정처분이었다. 그마저도 82%가 시정지시나 경고수준에 머물렀다. 과태료 처분도 3.7%에 불과했다. 사법처리는 5%였으며, 그중 구속사건은 0.1%인 5건에 그쳤다.
솜방망이 제재는 산업안전보건공단이 대검찰청에서 입수한 2006년 범죄자 처벌결과에서도 드러난다.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해 검찰에 사건이 송치된 범죄자 4천496명 가운데 기소된 경우는 3천368명이었다. 기소율은 높았지만 정식재판에 넘겨지지 않고 약식기소된 이들이 3천249명으로 전체의 96.5%를 차지했다.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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