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이어 이번주도 물가 문제에 관한 칼럼이다. 물가 문제에 대해 두 차례에 걸쳐 쓰는 이유는 현재 물가상승에 대한 관점이 노동운동이 신자유주의 체제를 넘어서는 싸움을 조직하는 데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 80년대 케인즈주의 경제정책을 뒤집을 때 시장근본주의자들이 내세운 핵심 근거가 바로 물가 문제였고, 90년대 국제통화기금(IMF)이 개발도상국에 신자유주의 경제시스템을 이식할 때 내세운 핵심 정책 역시 물가정책이었다. 노동자들의 직접적 이해에도, 경제정책의 방향에도 물가 문제는 핵심 중 하나다. 그런데 최근 진보개혁진영 일부에서 현 물가상승을 시장근본주의적 방식, IMF가 98년 한국에서 취했던 방식으로 해결하자고 하고 있는 터라 매우 우려스럽다. 이들의 주장은 정책 각론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정부가 인위적으로 통화시장에 개입해 환율을 높게 유지한 것이 문제이니 이를 다시 자연스러운 상태(시장이 결정하는 상태)로 되돌려 환율을 낮춰야 한다는 분석과 대안을 공유한다.

먼저 상황부터 직시하자. 현재 물가상승 수준이 그렇게 심각한 것일까. 아니다. 국제적으로 비교해 보자. 93년부터 97년까지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7.9%였고 물가상승률은 연평균 5.1%였다. 당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경제성장률이 연 2.7%에 물가상승률은 한국보다 높은 연 5.3%였으니, 한국은 OECD에서도 가장 엄격하게 물가를 관리해 온 셈이다. IMF 경제위기 시기인 1998~2001년을 제외하면 2002년부터 경제위기 전인 2007년까지도 마찬가지였다. 6년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연 4.8%였고, 물가인상률은 2.9%였다. 같은 기간 OECD 평균은 연 2.6% 성장에 연 2.6% 물가인상이었다. OECD보다 두 배 가까운 성장을 하면서도 OECD 평균과 크게 차이가 없는 수준으로 물가를 관리해 온 것이다. 지난해 한국은 6.2%의 경제성장을 했고, 올해 1분기에도 전년 동기 대비 3% 이상의 성장이 예상되니 4% 내외의 물가상승이 엄청난 상승은 아닌 셈이다. 현재 OECD 평균보다 물가상승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나 한국은 OECD에서 지난해 가장 크게 경제성장을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국은 OECD 가입을 계기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93년부터 현재까지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매우 엄격하게 물가를 관리해 왔다.
그렇다면 한국은 왜 이렇게 물가관리에 온 힘을 쏟았을까.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금융 세계화와 노동 유연화인데, 물가정책은 이 둘을 관리하는 핵심 정책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금융자본이 자산가격을 안정적으로 높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안정적 통화가치, 다시 말하면 인플레이션을 막는 것이다. 그리고 금융적으로 팽창한 국가에서 물가인상은 자본유출로 이어지기 때문에 ‘물가안정’에 대한 절대적 신념이 만들어지고 이는 비용 측면의 물가인상 요인 중 하나인 노동자 임금에 대한 철저한 관리 정책으로 기능한다.

착취에 관련된 직종의 피고용자(관리직·금융기관 딜러 등)들은 ‘이윤’에 대한 ‘보상’으로 큰 소득을 올리기도 하지만 부가가치 생산과 관련한 다수의 노동자들은 저임금 노동으로 이러한 물가시스템을 유지시킨다. 한국은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해 이러한 저임금 노동을 통해 수출 대기업들의 곳간까지 채워 준다. 수출 주도 성장 국가이자 세계에서 가장 개방된 금융시장을 가지고 있는 한국은 이러한 이유로 OECD 국가 중에서도 가장 엄격한 수준의 물가관리 정책을 유지했다.

이러한 점에서 현재 수준의 물가상승, 정확히 이야기하면 한국은행이 설정한 3%의 물가관리 목표를 넘어섰다고 물가안정을 위해 통화정책을 사용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매우 정치적인 행위다. 정부가 물가에 대응하는 정책 수단은 몇 가지 없는데 중앙은행 기준 금리를 높여 시중 통화를 흡수하고, 정부 지출을 줄여 통화 공급을 줄이고, 노동자 임금상승을 억제해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인한 상품가격 인상을 상쇄하며, 외환 시장에서 달러 표시 자산을 팔아 원화를 사들이는 것이다. 이 경우 원화 가치가 상승할 수는 있지만 투자는 줄어 일자리가 사라지고, 서민들에 대한 정부 보조는 줄어들 것이며, 노조 조직률이 낮아 임금 억제가 손쉬운 중소기업 비정규 노동자 임금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현재와 같은 원·하청 관계가 그대로 유지되는 한 원화가치 상승으로 인한 비용 대부분은 대기업을 통해 중소기업에게 떠넘겨질 것이다. 이는 단지 추측이 아니라 IMF 외환위기 이후 이전보다 더욱 엄격한 물가관리 정책을 폈던 한국에서 지난 10년간 진행된 일이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의 대응방법은 무엇인가. 첫째, 이 정도 물가상승에도 허리가 휘어져야 하는 한국의 저임금 노동현실을 사회적으로 쟁점화하는 것이다. 물가상승 속도가 문제라기보다는 이 정도 물가상승도 못 견디는 한국의 노동현실이 문제인 것이다. 둘째, 정치적 임금 투쟁이다. 올해 임금 투쟁은 조직된 노동자들의 경제적 이해관계만을 건 임투여서는 안 된다.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더욱 확대될 노동자 임금격차에 대한 대응이어야 하며, 신자유주의 물가관리 정책을 비판하는 정치적 투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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