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잖아?"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며 시네마키드로 15년을 살았다. 고된 노동이 힘들어 누군가에게 하소연을 할 때면 어김없이 이 같은 질책이 이어졌다. '꿈만 좇는 배부른 철부지'라는 냉소와 함께.

20대 시절 영화계 언저리를 맴돌며 스크립터·영상편집 등 다양한 일을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점심을 먹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임금조차 받아 본 적이 없다. 영화를 하지 않으면 살지 못할 것만 같았던 시절. 상업 영화계에 먼저 진출한 선배들이 생활고 등으로 자살을 하거나, 건강상의 문제로 폐인이 되는 모습을 수없이 지켜보며 꿈을 접었다.

그게 10년 전이었다. 그리고 지난 8일 32살의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가 10년 전 선배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죽었다. ‘달빛요정 역전만루홈런’의 보컬이었던 젊은 예술가 이진원씨가 죽은 지 채 석 달도 지나지 않은 때였다.

빈곤한 복지체계와 가난한 예술가의 삶…. 10년 전이나 3개월 전이나 똑같은 논란이 '반복'만 되고 있다. '안타까움'과 동시에 '철부지'로 보는 인식 또한 여전하다.
대중들은 예술가를 노동자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실제 최씨의 죽음에 대해 일부 누리꾼들은 댓글을 통해 "재능이 없으면 포기해야 한다. 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라도 했어야 했다"는 질책을 하기도 했다. 예술가를 '철없고 게으른 몽상가'로 보는 전제가 깔려 있다.

사람들이 예술가를 바라보는 시선은 두 가지다. '천재' 아니면 '철부지'다. 성공을 하기까지 이르는 예술과정을 정당한 노동으로 보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내놓는 작품들은 상업적으로 실패할 가능성이 더 높다. 상업성을 지향하지 않는 예술가들도 많다.

그렇다면 성공하지 못한 혹은 성공을 지향하지 않는 예술가들의 노동은 무엇으로 보상받아야 할까. 최씨의 죽음 이후 최고은 법안 발의 등 예술인 복지체계 마련을 위한 논의가 한창이다. 하지만 먼저 해야 할 게 있다. 예술인도 사회구성원으로서 기본 생계를 보장받아야 하는 노동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회적 합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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