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2 지방선거 이후로 무상급식은 복지 문제 중 가장 큰 화두가 됐다. 최근에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반대입장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무상급식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아이들에게 질 좋은 음식을 먹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맛있고 질 좋은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몸과 마음도 건강해야 하지 않을까. 학교에서 급식을 담당하는 조리노동자들은 과연 어떤 조건에서 일을 하고 있을까. 지난 21일 오후 <매일노동뉴스>가 3명의 조리사를 만났다. 학교에서 근무하는 조리사는 공무원이지만 조리사와 함께 실무를 하는 조리원들은 대부분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이다.

조리사의 군대 ‘삼식학교’

“처음 1년 동안 정말 열심히 일했죠. 그런데 어느날부터인가 ‘열중쉬어’가 안 되더라고요. 어깨가 왜 이러나 하고 병원을 찾아갔더니 벌써 오십견이 왔다는 거예요. 그때가 30대 초반이었는데.”

조리사 10년차인 정경숙(40·가명)씨는 ‘삼식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삼식학교란 말 그대로 조식·중식·석식을 주는 학교다. 주로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나 합숙을 하는 체육고등학교에서 삼식을 제공한다. 정씨는 보통 새벽 5시에서 5시30분 사이에 출근한다. 오전 6시50분에서 7시10분 사이에 오전 배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침 배식이 끝나면 바로 오전 8시부터 중식 준비를 해야 한다. 정씨의 하루 평균 초과근무는 5시간30분이나 된다. 조리사의 경우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른 학교로 발령이 나는데, 삼식학교는 조리사들에게 ‘군대’처럼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작업현장이다. 보통 삼식학교에서 2년을 근무하면 다른 학교로 발령이 난다. 정씨는 “군대 왔다고 생각하고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삼식학교는 조리사들에게 기피대상이지만 여기에 근무한다고 해서 가산점을 준다거나 승진 인센티브를 받는 것은 아니다. 정씨가 다니는 학교의 학생수는 1천560명. 급식 메뉴에 감자탕이 들어간 날은 드럼통 3개 분량으로 등뼈가 들어온다. 반찬 메뉴에 전이 포함되는 날이면 학생들이 먹기 좋은 크기로 무려 3천개의 전을 부친다. 정씨는 “철판 앞에서 전 3천장을 부치다 보면 배가 불에 익어 빨간 줄이 다 생긴다”며 “그래도 분을 발라가며 일한다”고 말했다.

초·중·고 급식량 달라도 인력기준 같아

초등학생과 중·고등학생은 먹는 양에서 당연히 차이가 난다. 가령 기장밥을 기준으로 했을 때 초등학생의 경우 1인 당 60.14그램을 배식한다. 고등학생은 두 배에 가까운 123.07그램을 배식한다. 고등학생이 먹는 양이 두 배 정도 많은 것이다. 그럼에도 학교급식 조리실무자를 배치하는 교육청의 인력기준은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나 같다.

정씨는 “현장 여건을 무시한 이런 조치 때문에 항상 시간에 쫓기며 일한다”며 “학교급식 조리실은 마치 전쟁터와 같다”고 말했다. 학교급식 조리사와 조리원들에게 학기 중에 휴가를 내는 일은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대체인력이 없기 때문이다. 조리사 경력 17년차인 김경선(52·가명)씨는 “교사들은 기간제 교사가 수업을 보강할 수 있지만 조리사들은 대체인력이 없어 집안에 일이 생겨도 휴가를 낼 수 없다”며 “몸이 아파도 현장에 나와서 누워 있어야 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최근에는 오븐기 등 급식장비가 현대화되면서 조리인력도 줄고 있는 상황이다. 김씨는 “한쪽에서는 일자리 창출을 외치고 있지만 조리원은 점점 줄고 있다”며 “단시간에 대량 조리를 하다 보니 중노동이 가중된다”고 힘들어했다. 조리원 대체인력은 학교에서 예산을 세워 쓸 수 있다. 하루 4만7천원 정도의 일당을 지급하는데, 일자리가 안정된 것이 아니어서 대체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김씨는 각 시·도 교육청이 대체인력풀을 만들어 일정한 수입을 보장해 주고, 어느 학교의 조리노동자가 휴가나 병가 등을 냈을 때 투입해 주는 방안을 제안했다.

김씨는 “대체인력이 매번 바뀌면 손발이 안 맞아 일을 하기도 힘들다”며 “대체인력도 한 달 평균 20일 정도의 임금은 보장해 줘야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학생수만을 기준으로 인력을 편성하는 것도 문제다. 같은 학교에서 학생수가 줄었다해도 조리장비와 청소를 해야 하는 식당 크기는 여전히 똑같다. 학생수가 얼마 안 되는 시골초등학교의 경우 2명의 조리 인력이 조리에서 배식·청소까지 모든 업무를 도맡아야 한다.

조리노동자 10명 중 3명은 사고 경험

2004년 노동건강연대가 실시한 ‘학교급식 조리노동자의 건강실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학교급식 조리노동자의 34.2%가 일하면서 사고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근골격계 자각증상 호소자는 54.3%, 근골격계질환 의심자는 26.2%, 피부질환은 47.2%가 호소했다. 학교급식 조리노동자는 전업주부에 비해 사고는 7.86배, 근골격계질환은 4.89배, 피부질환은 3.22배 위험성이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표 참조>
 
 


사고유형으로는 화상이 45.4%로 가장 많았다. 이어 등·허리를 삐끗하는 사고(16.8%)와 바닥에 미끄러지는 사고(12.6%)가 뒤를 이었다. 응답자의 75% 이상은 소음·고열·다습한 환경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압력을 이용한 취사기구와 가스를 이용한 조리기구도 위험한 작업환경이다.
이처럼 학교급식 조리현장은 온갖 위험한 요소를 다 갖추고 있지만 현장 노동자들에게는 위험수당이 별도로 지급되지 않는다.

비정규직 처우개선 시급한 과제

조리사 경력 17년차인 조미숙(54·가명)씨는 “공무원 정년이 연장됐지만 일이 힘들어 정년을 다 채울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그나마 공무원은 호봉이 올라가지만 비정규직은 그런 혜택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학교에서 근무하는 1명의 조리사는 공무원, 조리사의 지휘에 따라 일하는 조리원들은 보통 50대 이상의 여성 비정규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최근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결성을 추진하고 있다.

조리사의 경우 경력에 따라 호봉이 쌓이지만 조리원으로 일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은 1년차나 17년차나 임금이 똑같다. 호봉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조씨는 “근무경력이 높은 비정규 노동자들이 책임감을 갖고 일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처우를 개선해 주고 위험수당도 함께 신설해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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