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1일 개정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2011년 7월1일 사업 및 사업장 단위에서의 복수노조설립 시행을 약속했다. 가장 큰 골간은 복수노조를 시행하되 교섭창구를 단일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창구단일화는 노사 모두가 경계해야 한다. 이론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그간 복수노조에 대한 경험으로도 창구단일화 도입은 논리적 근거가 부족하다.

우선 창구단일화는 누가 원하는 제도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정작 법을 지키고 따라야 할 노사는 이에 대한 의견이 분명치 않다. 현재의 법은 정부안이 일방적으로 반영된 듯한 느낌이다. 솔직히 법 개정 당시 노사는 창구단일화에 대한 깊은 고민이나 일치된 의견이 없었다. 13년간 유예된 복수노조 시행과 전임자급여 지급금지를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렵다는 여론에 밀린 것이다. 무엇보다 전임자급여 지급금지를 무조건 시행하겠다는 정부의 일방통행을 막아 내기에 역부족이었다. 의회 또한 다수의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의 유예는 직무유기”라는 비판을 제도 도입의 최우선 명분으로 삼았다. 이후 노동현장에서는 개선할 여유가 없었다. 지난해 새해 벽두부터 발등에 떨어진 불(유급근로시간면제제도)을 끄기에 급급했다.

노조법 개정 과정에서 창구단일화에 대한 비판이 줄을 이었다. 창구단일화가 소수노조의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막기에 복수노조 설립을 허용하는 노조법 취지에 정면으로 반한다는 것이었다. 이론적으로 반론의 여지가 없다. 현실론만이 있을 뿐이다. 복수노조 시행으로 발생할 현장의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정도다. 그러나 현장의 혼란은 가정일 뿐 실증된 자료를 근거로 한 주장은 아니다. “사업장 및 사업 단위에서까지 복수노조가 설립된다면 노사관계에 혼란이 확대되고 교섭비용이 증가할 것”이라는 정도의 말만 있었을 뿐이다. 언론을 동원한 정부홍보에 익숙해진 다수 여론도 이에 동의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불안감은 창구단일화 입법에 크게 기여했다. 이는 “복수노조는 처음 도입되는 제도”라는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10년 넘게 사업 및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경험이 있다. 97년 노조법은 연맹 이상 단위에서만 복수노조 설립을 허용했지만 노동현장에서는 산업별 노조의 분회(또는 지부) 형태로 사업장 및 사업 단위에서의 복수노조가 줄을 이었다. 정부는 이와 같은 형태의 노조에 대해서도 복수노조금지에 해당한다며 설립을 불허했지만 법원은 달랐다. 법원은 “독립된 규약과 의사결정권한을 갖지 못한 분회(지부)는 복수노조 설립금지에서 정의하는 노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례를 낸 이래 지금껏 변함없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판례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사업 및 사업장 단위에서의 복수노조를 사실상 허용한 것이다. 사용자의 힘이 월등해 독립된 노조 설립이 어려운 다수의 영세 중소 사업장에서는 지역일반노조를 기반으로 분회를 설립하는 것이 현실적인 운용이기도 했다. 그 결과 현재 적지 않은 회사에서는 복수노조가 존재한다. 또한 97년 경제위기의 영향으로 기업 결합과 분할이 빈번해지면서 상급단체를 달리하는 복수의 단위노조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복수노조 사업장이 언제나 노사관계가 혼란에 빠져 경영이 어렵다는 통계는 들어본 적이 없다. 다수 노조의 단협에 준해 소수노조의 근로조건도 결정됐다. 더욱 중요한 것은 노사 힘의 대등이 가능한 산업별노조가 분회를 위해 직접 교섭에 나서는 등 헌법이 예정한 노동3권을 제대로 실현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 결론적으로 복수노조에 대한 경험은 이미 충분하다. 복수노조 사업장에서 각자 개별 교섭을 해 오면서 혼란이 가중됐다는 그 어떠한 증거도 없다. 그렇다면 노동현장의 혼란과 창구단일화는 필연적 인과관계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나아가 창구단일화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그동안 초기업별 단위노조가 행사한 단체교섭 권한을 정당한 이유 없이 제한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의회는 “단위노조와 초기업별 단위노조 분회 간 형평을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독자적인 인격을 갖지 못한다는 면에서 분회와 단위노조가 동일한 지위에 둘 수 없음은 분명하다. 단체교섭권은 일종의 자연권으로 제한 자체가 불가능하다. 제한하더라도 매우 엄격한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형평성’이라는 단순한 말로 제한될 성질의 기본권이 아니다. 그리고 더 이상 초기업별 단위 노조가 단체교섭을 할 수 없다면 그간 노사 대등한 교섭이 가능했던 힘의 균형이나 산업 단위에서의 차별해소와 같은 장점도 누릴 수 없게 된다.
결국 막연한 우려로 창구단일화를 받아들였지만 그 가정은 오류투성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조합에게 돌아온다.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은 산별노조 건설에 쏟은 노력이 허사가 되는 것이다.

경험은 소중하다. 생소한 유급근로시간면제제도의 갑작스런 시행과 탈법적인 정부의 집행은 노동현장에 많은 혼란을 가져왔다. 복수노조 시행에서는 동일한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10년 이상의 경험에 비춰 볼 때 남은 5개월은 제대로 된 복수노조 시행을 준비하는 데 충분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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