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세계경제의 가장 큰 이슈는 유럽 재정위기다. 그리스를 시작으로 아일랜드 부도사태에 이른 유럽 재정위기는 현재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조만간 집어 삼킬 분위기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5년 만기 국채의 신용부도스왑 프리미엄(국가 부도에 대비한 채권 보험의 가산 금리)은 지난해 동기 대비 각각 두 배와 세 배 상승했다. 금융시장에서는 특별한 전환점이 없으면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부도 사태까지 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비관론까지 등장하고 있다.

스페인의 경제위기는 기존 두 국가와는 차원이 다른 규모라는데 문제가 있다. 스페인은 그리스에 비해 경제규모가 네 배 이상 크며, 스페인과 같은 경제 범위에 있는 포르투갈까지 합하면 다섯 배가 넘는다. 두 국가가 유로권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에 이른다.

두 국가에서 재정위기가 관리 가능한 수준 이상으로 발전하게 되면 다음 문제는 이들 국가의 채권을 대규모로 보유하고 있는 유럽의 다른 국가들이 된다. 최근 무디스는 프랑스가 유로권에서 스페인, 포트투갈 등의 재정위기 국가의 채권을 다량 보유하고 있다며 프랑스 국채에 대한 신용등급 강등을 경고하기도 했다. 그리고 프랑스의 가장 큰 채권자는 독일과 영국이다. 프랑스에 문제가 생기면 독일과 영국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독일은 경제가 튼튼해 견딜 수 있다 해도, 영국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영국은 이미 자국의 금융기관에 대한 대규모 구제금융과 세계 금융시장 침체로 숨이 목 끝까지 차있는 상태다.

유럽 재정위기로 인한 두 번째 세계경제위기의 2막1장이라면 2막2장은 유럽은행들의 위기다. 국가 재정위기로 신용경색이 발생하고, 유로화 표시 자산가격이 하락하면 이미 작년 재작년에 큰 위기를 겪은 유럽 은행들이 고꾸라질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2009년 세계통화기금 조사에 따르면 유럽계 은행들의 부실 자산은 미국계 은행들의 두 배가 넘는다. 이러한 평가도 당시 유로화가 어느 정도 제 값을 한다는 가정 하에 분석된 것이다. 유로화가 문제가 발생하면 부실 자산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한편 유럽은행들은 미국계 은행들보다도 위기에 더욱 취약한데 무엇보다 정부가 이들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계 은행들이 아무리 덩치가 크다고 하더라도 주요 은행들의 자산 합계가 미국 국내총생산의 40% 정도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기축 통화를 소유한 미국은 통화량을 증가시켜 이들의 부실자산을 처리하는데도 부담이 덜했다. 하지만 유럽계 은행들은 상황이 정반대다. 이들의 규모는 대부분 한 국가의 국내총생산보다 크다.
 
예를 들면 스페인의 산탄더은행 자산은 스페인 총생산의 132%, 프랑스의 BNP 파리바의 자산은 프랑스 총생산의 108%, 영국 스코틀랜드왕립은행의 자산은 영국 총생산의 126%에 달한다. 유럽계 대형 은행들의 자산 총계는 유로권 국가들의 총생산 합계보다 두 배 이상 크다. 여기에 유로화는 미국 달러처럼 각국이 자의적으로 통화량을 늘릴 수도 없다. 정부가 은행들을 구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은행들은 미국 은행들과 같은 대마불사(too big to fail)가 아니라 대마필사(too big to save)라고 불리기도 한다.

유럽은행들까지 문제가 발생하면 국제적 신용경색과 금융자본의 안전자산으로의 도피, 일부 국가들의 도미노 부도, 실업 급증과 소비 급감 등등 지난 2년간 겪었던 일들이 다시 반복될 것이다. 물론 그 규모는 더욱 크게 말이다.

세계 금융시장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국 경제는 다시 외환위기에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자본 중에 절반은 유럽계 자본이다. 2009년 초에 증권시장에 들어와 있던 외국계 자본들이 썰물 빠지듯이 빠지며 환율이 1천600원 선까지 치솟고 국제적으로 한국 외환위기설이 나돌았던 상황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런 상황을 대비해 외환보유고를 충분히 보유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2009년에도 외환보유고가 적어서 외환위기 가능성까지 이야기된 것이 아니었다. 단적인 예로 한국자산시장에서 신용위기는 당장 한국 가계의 파산 도미노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 가계의 부동산 관련 부채는 미국보다도 크다. 또한 외환보유고를 아무리 늘린다 해도 외국계 금융 자본 주도의 금융이 장악한 금융 시장에서 한국은 대외자산보다 외국인이 소유한 국내자산이 많을 수밖에 없다.

유럽과 한국의 노동자들은 올해 초부터 이러한 상황을 우려해 정부가 금융자본의 부실을 떠안을 것이 아니라 금융자본에게 책임을 지워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유럽의 정부들은 막대한 금융부실을 정부로 이전시키는 일에만 열중했고, 그 결과 금융자본은 금융위기 이후에도 부실을 키웠다. 정부는 재정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학생들의 등록금까지 인상하는 벼랑 끝에 내몰리게 됐다. 이명박 정부는 금융통제와 건전한 경제성장보다는 재벌 중심 수출 증대와 외자 유치만 이야기해 왔고, 2011년 경제정책 역시 토목사업을 통해 다시 부동산 경기를 살리겠다는 내용밖에 제시하고 있지 않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이 변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유럽발 세계 경제위기와 이에 따른 한국 경제위기에 대한 대비책은 2011년 노동자 시민들이 운동으로 만들어 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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