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러다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술 먹다가 간신히 잠이 들면 늘 사장을 죽이는 꿈을 꾸다가 깹니다. 직접 당하지 않으면 그 심정 몰라요."
덤프노동자 김성환(50·가명)씨는 지난 9월부터 밀린 기계임대료 900만원만 생각하면 울화통이 치민다. 김씨는 7월부터 대전의 한 공사장에서 일했는데, 공사를 맡은 전문업체 사장이 10월에 자취를 감췄다. 원청사는 하청업체에게 공사비를 지급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지난 14일 고용노동부는 김씨 같은 사례를 막기 위해 '체불·유보임금 최소화를 위한 건설근로자 고용개선안’을 발표했다. 개선안은 건설업자가 임금을 체불할 경우 공공공사의 참여 제한을 뼈대로 하고 있다. 노동부는 입찰에 참여하는 기업이 공공공사 입찰시 체불업체와 하도급계약을 맺을 경우 감점을 주겠다고 설명했다. 하도급업체 임금지급에 대한 원청의 관리 책임을 물은 것이다. 개선안에는 적정임금 체계를 만든다는 내용도 들어갔다.

이 같은 발표에 김씨는 “실현 가능성이 있겠느냐”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김씨는 "정부가 시공참여자 제도를 폐지해 미등록자(일명 십장)에게 하도급을 주지 못하게 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십장이 불법 하도급을 준다"며 "야반도주한 체불업체 건설업자도 간판만 바꿔 다른 곳에서 버젓이 공사를 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이어 “원청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된 건 다행”이라면서도 “실제로 체불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등 정부가 대책을 실행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그간 노동계는 유보임금을 발생시키는 근본적 원인인 다단계 구조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게 힘들다면 단기적으로 유보임금 일수라도 줄이자고 주장했다.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르면 하도급 대금은 15일 이내 지급하게 돼 있다. 그러나 건설노동자들의 유보임금 평균일수는 41일에 달한다.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대한건설기계협회 자료에 따르면 체불건수가 민간공사보다 관급공사에서 오히려 10.8%나 더 높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정부가 감독을 하지 않다 보니 일부 대형 건설현장에서는 하청업체가 임금이 포함된 선급금을 공사 전에 미리 받아 챙긴 뒤 임금만 관행적으로 늦게 지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씨는 “남들처럼 12월에 일한 임금을 12월에 받아 보면 원이 없겠다”고 했다. 이미 20세기에 사회상식으로 정착된 내용이 21세기를 사는 건설노동자 김씨에게는 평생 소원인 셈이다. 김씨가 남은 삶을 밤마다 악몽에 시달릴지, 평생 한을 풀지는 정부의 의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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