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에 번진 구제역 방역작업을 하다가 지난 1일 뇌출혈로 쓰러진 안동시 소속 공무원 금아무개씨(52)가 7일 끝내 숨졌다. 금씨는 지난달 29일 안동지역에 구제역이 발생한 후 방역작업에 동원돼 휴식을 제대로 취하지 못한 채 밤샘근무를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북지역 구제역에 이어 최근 전라북도 지역에 조류인플루엔자가 발견되면서 공무원들이 대거 방역작업에 동원되고 있다. 방역을 위해서는 초소를 설치하고 24시간 대기해야 한다. 밤에는 추위와도 싸워야 하기 때문에 경북지역 공무원들은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사망한 안동시 공무원 금씨와 같은 사례가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순직으로 인정받으면 다행

금씨는 순직처리가될 예정이다. 순직처리가 되면 유족들은 급여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만약 고인이 순직처리되지 않는다면 공무상질병으로 인정받는 것은 가능할까. 현행 공무원연금법 등에 따르면 방역활동을 하다 쓰러졌다는 이유만으로 공무상재해로 인정받지는 못한다. 평소 공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과로를 했는지, 평소에 지병이 있었는지, 지병이 있다면 공무상과로로 인한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금씨처럼 뇌출혈로 사망했지만, 공무상재해로 인정받지 못한 최근 사례가 있다. 환경부 소속 공무원으로 일하다 지난해 10월 사망한 이아무개씨. 그는 같은해 6월부터 환경부 물환경정책국 수생태보전과에서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담당하던 중 뇌출혈로 쓰러져 숨졌다.
 
유족은 이씨가 4대강 사업을 담당하며 받은 과도한 스트레스로 사망했다며 보상금 지급을 청구했다. 하지만 공무원연금공단은 업무상과로가 공무와 인과관계가 없다며 거절했다. 행정법원도 마찬가지 결정을 내렸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는 이달 1일 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보상금 부지급처분취소 청구소송에서 “스트레스는 수량화할 수 없고 반응에 대한 개인적인 차이가 있다”며 “스트레스가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개연성만으로 망인의 사망과 공무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단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망인은 고혈압이 없었고 혈압이 급격하게 상승할 만한 업무내용도 확인되지 않았다”며 “선천적 질환인 뇌동맥류가 체질적인 요인에 의해 파열돼 망인이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공무에 따른 과로나 스트레스를 인정받으려면 평소에 건강하다가 질환이 발생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올해 8월 대법원은 과도한 업무로 우울증을 앓다가 2007년 자살한 안동시 공무원 유아무개씨에 대해 공무상재해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재산세 담당 공무원으로 근무한 유씨는 지방세 표준전산화 작업 등을 처리하던 중 과로와 스트레스를 호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족의 보상금 청구에 대해 공무원연금공단과 행정법원·고등법원은 유씨의 우울증과 공무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대법원 제1부는 “유씨가 정신과 진료를 받은 적이 없지만 사망하기 전 우울증 증세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의학적 소견이 있는 점을 미뤄, 유씨의 직무상 과도한 업무가 우울증을 유발했고 그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공무상 질환 인정, 38%에 그쳐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공무원들이 재해급여를 신청하는 질환을 보면 뇌혈관질환이 35.2%로 가장 많고, 심혈관(15.4%)·악성종양(13.7%) 등이 뒤를 잇고 있다. 공무원들 역시 과로나 스트레스에 노출돼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금씨의 사망원인인 뇌출혈의 경우 과로․스트레스와의 인과관계가 높기 때문에 공무상재해로 인정받는 비율이 다른 질환보다 상대적으로 높다. 실제로 뇌혈관질환은 절반이 넘는 58.6%, 심혈관질환은 48.5%가 공무상재해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전체 공무상재해 중에서 질환이 재해로 인정받는 비율은 그보다 훨씬 낮다. 2005년부터 올해 6월까지 공무원이 신청한 재해급여 청구건의 가결률은 79%인데, 공무수행중 사고가 재해로 인정받는 비율은 85%로 높은 편이다. 반면에 질환의 경우 38%에 그쳤다. 민간의 산업재해 업무상질병과 마찬가지로 공무수행과의 인과관계를 입증해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재해보상기금, 별도로 운영해야”

공무상재해 급여는 공무원연금에서 지급된다. 그런데 공무원연금 기금은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무상재해를 인정하는 기준을 까다롭게 적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게다가 공무원연금이 퇴직급여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재해보상 급여가 뒷전으로 밀리는 경향도 있다. 지난해 공무원연금 지급추이를 보면 전체 지급액 7조6천848억1천600만원 중 재해보상 급여는 0.8%에 불과한 611억6천200만원에 불과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005년 공직사회에 선택적복지 제도가 시행된 뒤 복지기금을 활용해 민간보험에 저렴하게 가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전국공무원노조에 따르면 전체 공직사회의 50% 이상이 이런 제도를 운영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노조는 “공무원들의 경우 순직으로 인정받지 않으면 재해보상을 받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고육지책으로 민간보험에 가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공무원연금 기금 중 일부를 떼내 민간 분야 산재보험기금처럼 별도로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라일하 노조 사무처장은 “연금부담액 인상이 논의될 때마다 공무상재해 기금을 따로 운영하는 방안이 제기됐지만, 부담액 인상을 결정하면 없던 일이 돼 버렸다”며 “조속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 84시간 근무, 노조업무 스트레스도 재해인정
현행 공무원연금법 시행규칙에는 공무상질병에 대해 "공무수행과 그 질병의 발생·악화사유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한 업무특성·성별·연령·체질·평소의 건강상태·기존의 질병유무·병가·휴직·퇴직 등을 참작해 질병을 인정하도록 돼 있다. 판례를 보더라도, 급격한 업무변화나 과도한 업무량 등 근거가 있어야 한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8월 업무성격이 전혀 다른 부서로 발령나 일하다 뇌출혈 진단을 받고 사망한 공무원에 대해 공무상재해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고인이 종전과 다른 성격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법률지식이나 경험부족 때문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주치의 의학적 소견 등을 고려하면 고인의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고 밝혔다.
주 84시간을 근무하다 뇌출혈로 사망한 20대 소방공무원도 공무상재해를 인정받은 바 있다. 서울고법은 올 4월 24시간씩 격일제 근무를 4년간 일하다 2008년 뇌출혈로 사망한 소방공무원 김아무개씨에 대해 “뇌출혈 발생원인은 구급업무 자체의 특성상 과로와 스트레스가 많고 장시간의 교대근무로 인한 면역력 저하 등으로 인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평소 건강에 이상이 없는 20대의 젊은 소방공무원이 과로로 인한 뇌출혈로 사망한 것은 공무상재해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공무원노조 업무에 따른 스트레스가 공무상재해로 인정받은 판결도 나왔다. 서울고법은 9월 행정부공무원노조 초대 위원장 출신인 조아무개씨가 상대로 낸 공무상요양불승인처분취소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노조 업무의 과중에 따른 과로·스트레스가 뇌경색을 유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조씨가 고혈압과 고지혈증 등 기존 질환을 다소 가지고 있었고 음주나 흡연습관이 있었다는 점만으로 조씨 업무와 뇌경색 사이의 인과관계를 부인하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김학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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