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 끝났다. 재협상의 주요 내용은 미국산 수입 자동차의 관세는 철폐하고 한국산 수출 자동차의 관세는 4년간 더 유지하되, 자동차 부품의 경우 관세를 즉시 철폐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한미 FTA 체결에 따라 한국 기업들의 대미 매출이 증가하고 국내총생산이 증가해 일자리도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대·기아차그룹과 자동차공업협회도 성명을 내고 한미 FTA가 한국산 자동차의 브랜드가치를 높여 주고 부품사들의 수출 경쟁력을 높일 것이라며 조속한 국회 인준을 요구하고 나섰다.

한미 FTA에 따른 국가적 득실은 전문가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재벌 대기업들이 손해 볼 일은 없다는 것이다. 한국 현대·기아차가 올해 미국에 수출한 자동차 중 60% 가까이가 미국 현지에서 생산됐다. 관세철폐 여부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현대·기아차 현지공장에서 한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는 자동차부품 가격이 관세 철폐로 낮아져 오히려 경쟁력이 높아진다.

정부는 자동차 수출이 늘어 국내총생산도 늘고 일자리도 늘어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 무엇보다 재벌대기업들의 수출 증가가 국민 전체의 이득으로 이어진다는 전제가 틀렸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예를 보자. 현대차는 2000년 18조원의 매출에 7조7천억원을 수출했고, 2009년에는 이보다 배가 늘어난 31조8천억원 매출에 15조8천억원을 수출했다. 그러나 정작 현대차가 고용한 노동자는 2000년 4만9천명에서 2009년 5만6천명으로 14% 증가하는 데 그쳤다. 현대차의 국내 투자수준을 볼 수 있는 유형자산 역시 2000년 8조4천억원에서 2009년 9조7천억원으로 15% 증가에 머물렀다. 반대로 고용과 크게 연계되지 않은 자산인 현금성 자산은 같은 기간 3조원에서 10조원으로 세 배 이상 늘어났다. 국내총생산 계산에 재벌 대기업들이 생산한 부가가치가 포함된다는 점에서 재벌의 매출이 늘어나면 국내총생산이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나 이는 재벌들의 부일 뿐 국민 모두가 함께 나누는 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한미 FTA는 재벌들의 국민경제와 분리된 성장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현대·기아차는 한미 FTA 체결 후 그나마 한국에서 생산하던 미국 수출품 중 일부마저 현지 공장에서 생산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에서 벌어들인 수익으로 현대차의 곳간은 더욱 커지겠지만 한국 내 고용과 투자는 전혀 늘 이유가 없다. 현지 생산이 강화될수록 기존 한국 공장의 수출물량은 미국 내 수요 증감을 보완하는 수준으로 맞춰지기 때문에 생산 신축성을 더욱 높여야 한다. 그리고 생산 신축성을 위해 현대차 경영진은 물량조절에 따라 해고와 재계약이 자유로운 비정규 노동자를 더욱 많이 고용할 것이다. 한미 FTA가 신규 일자리는 고사하고 기존의 일자리도 비정규직으로 바꿔 버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보다 15년 일찍 미국 멕시코와 FTA를 체결한 캐나다의 사례를 보면 이러한 양상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관세 철폐로 지역별 생산조정이 수월해지자 빅3(지엠·포드·크라이슬러)는 자유무역체결 후 설비투자를 대폭 줄이고 공장을 최소 수준에서 유지할 수 있는 만큼만 유지했다. 경기변동으로 물량이 모자라면 멕시코나 미국에서 물량을 수입해 오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자리 역시 신축적 생산조정에 적당한 비정규직을 확대했다. 이러한 결과로 FTA 체결 이후 캐나다 자동차산업에서 비정규직이 세 배 가까이 늘어났다.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한국 자동차 기업들 역시 캐나다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한미 FTA를 계기로 더욱 많은 비정규직을 고용하려 들 것이다. 현대차의 경우 이미 국외 공장 생산량이 전체 생산량의 절반에 육박하며 국내 생산이 국외 생산의 보조 역할로 바뀌어 가고 있는 중이다. 생산공장이 보조적 역할로 축소될수록 생산 신축성 요구가 커지고 그만큼 경영진에게 비정규직 고용 동인은 더욱 강해진다.

우연인지 역사적 필연인지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들은 한미 FTA 자동차 분야 재협상이 본격적으로 이야기되던 11월15일 정규직화 요구를 들고 점거파업에 돌입했다. 현대차 사측은 연 1천억원 미만의 추가 노무비만 더 들이면 되는데 굳이 위법성 파업손실을 감당하고 정규직화 요구에 귀를 막고 있다. 한미 FTA는 현대차 사측이 왜 이렇게도 강하게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거부하는 이유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 현대차 사측이 계획하는 것은 국외 공장의 보조적 역할로 축소될 한국 공장에서 정규직 대부분을 비정규직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미 FTA에 이어 곧 한-유럽연합 FTA도 체결될 것이니 사측의 이러한 욕구는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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