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예상했던 것처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는 말잔치 속에서 별 성과 없이 끝났다. 이번 정상회의의 뜨거운 쟁점이었던 미국과 중국의 환율 갈등은 임시 봉합됐고, 글로벌 금융규제 방안도 구체적 내용 없이 기존 논의를 반복했다.
미국의 경제침체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환율 문제는 앞으로 더욱 갈등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큰 무역수지 흑자국가인 한국 역시 이 갈등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한국은 2008~2009년 금융위기 과정에서, 세계에서 가장 환율 변동 폭이 컸던 나라였을 정도로 미국 경제와 국제 금융자본 이동에 취약하다.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이후 2008년 3분기부터 2009년 1분기까지 한국을 빠져 나간 외국자본은 1천600억달러에 이른다. 국내총생산의 20%에 육박하는 액수다. 이에 따라 원달러 환율은 순식간에 1천570원 선까지 치솟았고 외환위기 가능성까지 이야기됐다.

이러한 환율 급변은 금융투기 자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다. 물론 외환 금융상품들은 한쪽이 이득을 얻으면 반드시 반대쪽이 손해를 봐야 한다는 점에서 누군가에게는 재앙이었다. 지난해 사회적 쟁점이 된 외환파생금융상품 키코(KIKO)는 홍콩계 투기자본과 국내 은행들이 함께 중소기업들을 털어먹은 대표적 사례다. 키코를 구매한 중소기업 일부는 흑자부도에 내몰렸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해고와 임금삭감을 감수해야 했다. 지엠대우는 2008~2009년 외환파생상품으로 2조원 가까운 손실을 기록해 부도 직전까지 몰렸었다.
 
지엠대우는 환율 상승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환율 하락을 대비한 선물환 계약을 대규모로 했는데, 세계에서 80년 넘게 가장 많은 수출거래를 했던 지엠(GM)이 환율 변동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미국 본사로 자본을 유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손실을 내버려 뒀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 지엠은 비슷한 시기 외환파생상품으로 2조원 규모의 이익을 봤다. 외환 손실로 위기에 빠진 지엠대우는 1천명이 넘는 비정규직을 해고했다. 지금까지도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하고 있다.

위와 같은 극단적 사례가 아니더라도 재벌 대기업의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경제 구조에서 환율 변동으로 인한 피해는 노동자들과 하청업체들이 부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환율 상승으로 수출이 급증했던 지난해 삼성·현대와 같은 수출 대기업들은 막대한 이익을 얻었지만 이들의 이익이 국내에 분배되지는 않았다. 환율 상승으로 원재료가격이 크게 상승했지만 재벌 대기업들은 하청업체에게 오히려 경제위기를 명분으로 단가인하를 강요했다. 환율 상승으로 생필품 물가는 크게 올랐지만 노동자들의 임금은 동결 또는 삭감됐다. 재벌 대기업들이 벌어들인 이익 중 상당수는 당시 상대적으로 안전했던 달러 표시 자산으로 재벌 대기업 내부에 축적됐다.

환율이 하락하는 경우도 비슷하다. 환율 하락으로 수출가격 상승 압박이 발생하면 재벌 대기업들은 비용절감을 이유로 하청 업체에 대한 납품단가 인하와 노동자에 대한 임금삭감을 강요한다. 비용절감이 쉽지 않은 경우는 생산물량을 국외로 이전한다. 현대차는 이미 제품의 절반 가까이를 미국·중국·인도·동유럽 공장에서 생산하고 부품 역시 상당수를 현지에서 조달한다. 환율 하락시 한국 수출량을 줄이고 현지생산을 늘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역수입을 할 수도 있다. 국외 공장과 비용 경쟁이 늘어날수록 원화가치 상승으로 인한 구매력 증가는 줄어든다.

한편 한국 경제의 환율 급변 위험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최근 아일랜드는 국제통화기금(IMF)과 구제금융을 논의하고 있고, 스페인·그리스 등의 국가들은 경제성장 정체로 재정 적자를 해결할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유럽의 경제위기와 유로화 가치에 대한 신뢰 하락은 한국에서 외국자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유럽계 자본의 급격한 유출을 가져올 수 있다.

한국 주식시장의 거품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계 핫머니들도 문제다. 미국의 양적 완화 조치로 만들어진 이들은 조금이라도 시장에 문제가 발생하면 언제든 한국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한국의 재벌들은 이번 경제위기를 계기로 더욱 강한 수직적 하청구조를 만들었고, 노조 탄압 등으로 노동자들에 대한 통제도 강화했다.

환차익을 노린 국제 금융자본에서부터 환율 변동으로 인한 비용 모두를 외부로 이전하는 재벌 대기업까지 이래저래 손해를 보는 것은 노동자들뿐이다. 앞으로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와 재벌 대기업에 대한 사회적 통제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노동자들은 더욱 심각한 피해를 감당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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