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도서관에 따르면 지난달 국회의원실 최다 대출도서는 장광근 한나라당 의원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서인석 보좌관이 쓴 ‘국정감사 실무 매뉴얼’이었다. 9월부터 두 달간 1위를 내주지 않은 이 책은 ‘피감기관에서 제출을 꺼리는 자료 받아내기 노하우’ 같은 실전경험들이 들어 있어 국정감사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고 한다.

국회는 8일부터 새해 예산안 심의에 들어간다. 그렇다면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이 펴낸 ‘대한민국 금고를 열다’가 국회의원실 최다 대출도서가 돼야 한다. 그래야 정부가 뻔뻔스럽게도 ‘올해 복지 분야 예산은 사상 최대’라고 거짓말하는 일따위는 없어질 테니까.

이 책은 진보의 눈으로 들여다본 국가재정 분석 보고서다. 국가재정의 기본구성부터 주요 논점과 해법까지 담고 있는 입문서다. 국가재정은 일반회계와 특별회계 그리고 기금으로 구성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지끈해지고 이 책을 펴기가 두려운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진보진영 싱크탱크 내에서 꼼꼼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저자가 2004년 심상정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의 보좌관을 하면서 일일이 몸으로 부딪쳐 얻은 지식들이 쉽게 설명돼 있다. 덕분에 친절한 과외선생님을 만난 것 같다.

방대하고 복잡한 숫자놀음, 진보의 눈으로 파헤치다

노동계가 정부지출 가운데 가장 눈여겨보는 대목은 복지 분야다. 실업급여나 산재보험 등 고용노동부가 관할하는 예산도 대부분 복지 분야에서 나온다. 그런데 신문이나 정부보고서에서조차 내년 복지 분야 정부예산 규모는 제각각이다. 왜 그럴까.
이 책에 따르면 2006년 국가재정법 제정으로 예산과 기금이 통합되고 분야별 프로그램 예산제도가 도입됐지만 여전히 낯설고, 우리 정부의 복지지출 산정방식이 국제비교에 사용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방식과 다르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예산제도에 따른 올해 복지 지출은 81조원이다. 정부총지출 16개 분야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크다. 이유는 국민연금이나 고용보험기금 같은 사회보장성기금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정부예산안에서 복지 분야 지출은 9개 부처 159개 사업으로 구성돼 있다.

이러한 복지 분야는 2005년만 해도 정부총지출의 18.2%(38조원)에 불과했으나 올해는 27.8%에 이른다. 이 기간 복지 지출 증가율은 17.4%로, 정부총지출 증가율 7.1%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았다. 그런 가운데 이명박 정부 들어 복지지출 증가율은 6.8%로 낮아졌다. 그런데도 내년에는 정부가 홍보하듯 정부총지출 대비 복지비중은 ‘역대 최고’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두 가지 비밀이 있다.

우선 저자는 ‘복지지출이 역대 최고’라는 홍보 문구가 매년 되풀이될 것이라고 말한다. 복지 분야 지출이 다른 분야와 달리 자연적으로 늘어나는 제도적 증가분을 갖고 있어 발생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수급자가 늘면 자동으로 연금 지출도 증가한다. 지난해 우리나라 복지지출을 OECD 계산방법으로 재산정하면 GDP의 9%대(약 100조원)에 머문다. OECD 평균은 GDP의 약 20%다. 평균 미달도 한참 미달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012년 대통령선거 이전에 국가재정 건전성 회복이라는 중차대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강력한 지출통제에 나서고 있다. 2010년 예산안으로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역을 보면 정부총지출규모는 2009년보다 10조원(3.3%) 감소했다. 그런데 정부는 당시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복지예산이 전년도 본예산보다 8.6%(6조4천억원) 증가했다고 밝혔다. 정부총지출에서 복지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도 27.8%로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저자는 “복지비중이 높게 보이는 것은 실제 복지 지출은 큰 변화가 없는데 분모인 정부총지출이 10조원 줄어들어 발생한 착시현상”이라고 말한다.

국가재정을 알면 나라가 보인다

저자가 이 책을 펴낸 이유는 ‘노동운동이 국가재정을 본격적으로 다뤄야 할 때’가 왔기 때문이다. 임금인상을 위해 기업경영 분석을 하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지축이 달라졌다. 노동운동이 다뤄야 할 의제는 개별기업의 시장임금에서 한발 나아가, 전체 노동자의 사회임금이다. 사회임금은 세금과 보험료로 공적 재원을 마련한다. 재원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 누구에게 지급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결국은 국가재정을 어떻게 마련하고, 어떤 식으로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가 된다. 이 책은 훌륭한 길잡이이자 잘 벼린 무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대한민국 금고를 열다/ 오건호 지음/ 레디앙 펴냄/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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