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대표하는 자동차기업 지엠(GM)은 지난해 파산보호신청을 하기 직전 자동차 제조업체보다는 금융회사에 좀 더 가까웠다. 2000년대 지엠은 전체 수익의 절반 이상을 계열 금융회사였던 지맥(GMAC)에서 얻었다. 자동차 할부금융을 담당하던 지맥은 90년대 후반부터 부동산담보대출 사업에 뛰어들어 큰돈을 벌었다. 소비자에게 모기지로 집을 사 시세차익을 얻게 하고, 다시 그 시세차익으로 자동차를 사도록 만드는 식이었다. 지엠에게 이런 장사는 모기지를 이용한 금융수익을 얻음과 동시에 자동차 판매도 늘리는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수익은 부동산시장이 계속 상승한다는 전제하에서만 지속가능한 것이었다. 2007년부터 부동산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서자 지맥은 부동산 담보대출을 회수할 수 없었다. 부동산 차익이 발생하지 않으니 자동차 할부금융도 회수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에는 모기지 파생금융상품들까지 문제가 발생했다. 지난해 초에는 아예 자동차 할부금융을 운영할 수 없게 됐고, 마침내 지엠그룹 전체가 파산해 버렸다. 세계 1위 자동차기업은 이렇게 금융화의 길을 걷다 미국 경제 전체를 휘청거리게 만들며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났다.

최근 현대차그룹의 현대건설 인수 문제를 보며 지엠을 떠올리는 사람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사실 현대차그룹은 이미 순수한 자동차기업이 아니다. 지난해 현대차그룹은 현대캐피탈·현대카드·현대커머셜 등 금융계열사에서만 8천5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여기에 현대·기아차의 이자수익·단기투자자산처분이익 등 금융수익을 합하면 1조원이 넘는다. 현대차 영업이익의 절반 규모이자 기아차 영업이익과 비슷한 수준이다. 현대차그룹 금융계열사들의 성장 속도도 상대적으로 자동차 관련 기업들보다 빠르다. 이들이 다루는 금융상품도 할부금융·주택담보대출·파생금융상품 등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수출이 늘어날수록 현대·기아차에서 외환 및 파생금융상품 관리가 더욱 중요해지고, 그에 따라 경영 전반에 금융 관련 부서의 역할이 더욱 커져 가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금융화는 이미 상당히 진행됐고, 아직 파산 직전의 지엠만큼은 아니지만 그 뒤를 따르는 것만은 분명하다.

현대차그룹의 현대건설 인수는 이런 현대차그룹의 금융화에 날개를 달아 줄 가능성이 크다. 현대건설이 현대차그룹의 금융네트워크와 결합될 경우 다양한 주택 관련 상품 개발이나 포트폴리오 투자가 가능해진다. 또한 건설산업이 필요로 하는 대규모 금융서비스를 내부 금융계열사를 통해 조달해 금융계열사들의 역할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점 또한 현대차그룹의 금융화를 촉진할 것이다. 예를 들면 현대건설이 자금 동원을 위해 자산담보부증권 등을 발행하고 금융계열사들이 이를 이용해 여러 금융 상품들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모기지 대출과 자동차할부금융에 직접 부동산 개발까지도 함께할 가능성도 있다.

제조기업이 금융화될수록 그 기업은 장기투자보다는 단기수익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투기적 성격 또한 극단적으로 발전한다. 고용이나 국민경제를 고려할 여지는 아예 없다. 지엠이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까지 한 일이란 국내 공장을 폐쇄하며 다른 한편에서는 싼값에 나온 국외 자동차회사들을 인수합병하고, 부동산투기와 할부금융을 확대한 것밖에 없었다는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얼마 전 금속노조가 기자회견을 통해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에 쓸 돈을 먼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사용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은 비단 비정규직 문제에만 한정된 쟁점은 아니다. 현대차그룹은 70년대부터 정부 도움으로 성장했고, 외환위기 시기 국민세금으로 부채를 털어냈으며, 최근 경제위기에는 각종 세제혜택까지 받았다. 따라서 현대차그룹의 발전방향은 범국민적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다. 국내총생산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한국 자동차산업의 미래에 관한 문제다. 정몽구 일가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현대건설 인수시 파산한 지엠의 길로 한 걸음 더 다가갈 것이다. 설비투자 축소와 비정규직 확대, 금융적 확장으로 인한 국민경제의 취약성 증가, 재벌 일가와 주주들만의 배당금 잔치 등 현대차그룹이 만들어 낼 비극을 막기 위해 이제 국민들과 함께 현대차 노동자들이 현대차그룹을 통제해야 한다.

참고로 필자가 그렇다고 현대차그룹과 인수경쟁을 펼치고 있는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공적자금 투입을 통해 회생한 현대건설을 재벌에게 넘겨줄 이유는 없다. 현대건설은 정부 소유 아래서 공공 이익을 위한 사업을 확대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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